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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 Once Upon a Time in America 


늘 언제나 기다려야만 하는 입장에 서 있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확신이 없이는 더더욱.

 

 


마주한 시대 배경, 그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에서 생각과 마음이 복잡해졌던 것일까.

밖에서 문을 열어달라는 누들스의 절규에도 가만히 문을 걸어잠그고 있는 데보라와 같은 심정이라고 해야 할까.

정리될 듯 정리되지 않는 감정.

그리고 주체적인 삶을 산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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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후 데보라는 자신만의 삶을 주체적으로 묵묵히 살아냈다.

그럼에도 누들스와의 사랑을 이루기보다 누들스의 친구 맥스와 결혼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누들스와 같은 데이비드 라고 짓는다.

뭐.. 영화적 감성에서는 데보라의 이런 일이 무척 짠한 일인데 현실세계에서 보자면 좀 바보 같기도 하다. 누들스가 좋으면 누들스를 붙잡을 일이지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굳이 아들 이름을 옛 사랑의 이름으로 부르는건 또 뭐람😕

물론 미국 1900년대 후반의 시대 배경 상 물질과 명예, 성공이라는 것이 생존을 위해 필요했을 터... 내가 아직은 또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의 어찌할 수 없는 마음과 선택들이라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것이 더더욱 시대적 상황과 맞물려져서.


그래서 우리는 영화를 보나보다. 우리가 살아가는 짧은 인생, 인간의 모든 희노애락을 영화를 통해, 예술을 통해, 다른 사람의 삶에 투영하여 직간접적으로 경험의 폭을 넓혀나가는 것이다.

이런 인생 속에서 나는 얼마나 어느 정도의 경험을 한 것일까..? 얼마나 더 성숙되어야 하는 것일까?  어떤 상황에도 담담해지기엔 난 아직도 멀었나보다.

어찌할 수 없는 현실 속의 상황.
그리고 가진 자와 없는 자.

그 gap을 뛰어넘어 함께 하기란 무척 어려운 일 같다. 그래서 사람들이 비슷한 수준의 가문 사람이랑 결혼하나보다. 현실 세계의 이런 수많은 변수들과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 시간을 아끼기 위해서.

아마 데보라도 누들스를 사랑하지만 맥스와 결혼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일 수 있겠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타의가 자의의 선택이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배경적 차이를 극복하고 함께 하는 사람들이 갑자기 존경스러워진다. 아마도 환경보다는 서로를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이라는 것이, 같은 목표와 비전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 더 큰 요인으로, 행동의 기제로 작용했겠지.

어릴 때는 그냥 뭐든 다 할 수 있을것만 같았는데, 조금씩 어른들의 말들이 이해되어지는 것 보니까 나도 이제 적은 나이는 아닌가보다.

하지만 아직도 현실과 타협하여 살아가고 싶진 않은 마음이다.

영화 이야기며, 스토리며.. 그것들이 만들어내는 환상들.. 그건 그냥 그럴 수 있는 일들이다.

인간관계 역시 마찬가지이다. 수많은 스토리들과 사건들이 얼마든지 생겨날 수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내 안의 중심축.
그 인생의 방향 키만 잃지 않으면 된다.
신념. 확신..

22 Dec 2017

 

 

 

https://youtu.be/lFw062jAYR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