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영화 호텔 뭄바이(Hotel Mumbai, 2018)

 


2시간이 순식간에 훌쩍 흘렀다. 몰입감이 굉장히 좋은 영화였다. 감독은 너무 많은 상징들을 배치하지 않은 것 같다. 딱 보여주어야 할 시의적절한 타이밍에 카메라 앵글의 시선을 통해 장면의 상징성을 드러냈는데, 그것이 과하지 않고 담백해서 좋았다.

 


음악 역시, 내 기억엔 인도 음악은 하나도 나오지 않았다. 노래가 나왔다면 이슬람 기도 소리 하나. 그런데 그게 좋았다. '인도스러운' 느낌을 내려고, 굳이 구색을 갖추려고 하지 않은 것이 좋았다. 2008 Mumbai attack은 워낙 사건 그 자체가 충격이었던터라 많은 음악보다도 인물들의 연기와 스토리 전개를 통해 몰입감을 극대화했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이 영화는 한마디로 말하자면, My Name Is Khan(내 이름은 칸, 2010)과는 대조적인 영화라고 해야 할까. 그 영화는 미국 9.11 테러 이후 높아진 이슬람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기 위해 이슬람 역시 따뜻한 마음을 가진 형제애가 넘치는 사람들임을 강조하였지만, 이 영화는 이슬람이 알라의 이름으로 소위 기득권층에 대한 무차별 공격을 감행하는 내용이다.

사실 약간 뭐랄까, 불편하다고 하기에는 좀 뭐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조금 의문이기도 했다. 이 호주 감독은 이슬람에 대한 분노를 관객들이 동조해주기를 원했던 것일까..? 하지만 테러를 자행하는 집단 역시 알라의 이름으로, 종교와 신념 아래 이용당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가난한 그들을 짓밟고 부자들이 된 저들에게 무차별 테러를 가하는 일이 알라가 원하는 일이며, 심지어 테러 임무 완수 이후 죽음도 두렵지 않음은 알라가 예비한 천국이 기다리고 있음이며, 테러범 가족들에게는 금전적 지급 보장을 약속하며 뒤에서 이들을 조종하는 한 사람. 영화를 보다보니, 이슬람이 문제가 아니라 이슬람이라는 종교성과 신념, 또한 가족 중심주의 사회를 이용하여 선량한 사람들 이용하여 앞잡이로 삼아 테러를 일으켰다고밖에는... 그도 그럴 것이 테러를 자행하는 사람들 중 가족을 위한 일이라고 여기며 테러에 가담하긴 하지만 그들 내면의 갈등이 그려지는 장면을 통해, 이 호주 감독이 굳이 이슬람을 고발하고 있는 것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출연 배우들 중 외국인들이 꽤 나와서 이 외국인들이 어떤 역할로 어떤 스토리를 전개해갈까 싶었는데, 영화를 보니 사실상 이 영화는 영국계 인도 배우인 Dev Patel(데브 파텔)을 주연으로 인도인 배우들, 외국인 배우들을 조화롭게 배치한 영화였다.

개인적으로는 첫 장면부터 힌디어가 등장하여 무척 반가웠다. 그리고는 인도 뭄바이의 풍경들을 쭈욱 보여주는데 첫 장면부터 너무 가난한 장면들이 먼저 나와서 약간 불편해지긴 했는데 지금으로부터 10여 년 전 인도 뭄바이의 모습임을 감안하면 그럴 수 있겠다 싶어서 그냥 수긍을 했다. 사실 뭄바이는 인도의 financial city로 Bollywood(발리우드) 대규모 영화 산업을 비롯, 인도의 금융과 경제를 책임지고 있는 부유한 도시이다. 세계 어느 곳이나 그렇듯이, 부유한 곳의 이면에는 언제나 극을 이루는 사람들이 변두리로 밀려나 살아가고 있는 모습들이 공존하는데, 영화에는 너무 가난한 인도 사람들만 비추어지고 뭄바이의 초호화 호텔 역시 외국인들이 주로 방문하는 곳으로 그려져 아쉽긴 했다.

 


Taj Mahal Palace(타지 마할 팰리스) 호텔은 영화 속에서 불타고 있는 모습임에도 어찌나 아름답던지.. 인도의 초거대 기업인 TATA(타타) 그룹의 Jamsetji Tata(잠세치 타타)가 공들여 지어 1903년 12월 16일에 문을 연 호텔이다. 한 일례로 인도의 영국 식민시절 Tata가 당시 최고급 호텔을 찾았으나, 'whites only'로 호텔 출입을 거부당하고 이에 분노를 느껴 영국을 능가하는 가장 멋진 호텔을 짓겠다고 만든 호텔이 이 호텔이라는 설도 있다. 의견은 분분하지만 어찌되었든 역사적으로, 건축학적으로 여러모로 인도의 문화유산 같은 호텔이다.

 

Guest is god. 테러 발생 직후 아내와 가족의 곁을 지키기 위해 호텔 탈출을 시도하는 직원들이 있었던 반면, 고객은 신이라는 신념으로 당시 호텔을 떠나지 않고 남아 고객들을 안전한 곳으로 보호하고 탈출을 도왔던 사람들이 있다. 테러에서 살아남은 직원들 상당수가 아직도 이 호텔에서 근무하고 있고 생존자들은 따즈 호텔 재건 후 다시 re-open 할 때 모두 모여 축하를 했다.






어떻게 보면, 이미 알려진 사건에 대해 영화를 다시 구성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충분히 예상 가능하기에 자칫 기대에 부흥하지 못하게 될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인상적이었던 것은 극의 전개도 전개지만, 인도 문화가 극에 전혀 이질감 없이 아주 잘 녹아들어 있어서 그 점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으며, 인도 사람들 특유의 humanity라고 해야할까, 그런 점들이 확 와닿아서 아주 푹 빠져 볼 수 있었던 영화였다.

사실 인도 문화를 알면 영화를 보는 즐거움이 더 배가 될 것 같다. 힌디어의 말하는 뉘앙스나, 영화에서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긴 하지만 인도 시크교도들 터번의 상징성(honor, courage, family tradition), 뭄바이 곳곳의 테러 모습을 TV를 통해 지켜보고 있는 군중들 가운데 Chai(인도식 밀크티)가 끓여지고 있는 스쳐지나가는 순간, 인도인들의 사고방식에서 나오는 인도식 영어 표현들, 이슬람 테러범이 스스로의 모습에 자괴감 느낄 때 뒷 배경에 초점은 안 맞지만 아스라히 보이도록, 그곳에 배치한 것은 감독의 연출 의도가 분명함이 확신되었던 힌두 신상, 스쿠터를 통해 알 수 있는 사회적, 경제적 지위... 등등 영화를 한 번 더 보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영화 곳곳에 아주 자연스럽게 인도 문화가 깊숙히 배어있는 모습이었다.

 

 

 

아, 그리고 생각하게 된 것 중 하나는, 주인공 Arjun(Dev Patel)이 자신이 쓴 터번 때문에 이슬람과 똑같은 한 패인줄 알고 두려움에 떠는 여성 손님에게 자신의 가족 사진을 보여주며 가족 이야기를 한다. 그리고 인도 경찰이 Arjun을 범인인줄 알고 총살할 위기 앞에서 Arjun은 자신은 와이프도 있고 아기도 있는 사람이라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아주 오래 전에 한참 미국 드라마 <Lie to me>, <CSI>, <NCIS>, <Numbers> 등을 많이 볼 때 G와 함께 드라마 보면서 범죄자의 심리를 읽어보는 일을 많이 했었다. 그때 나눈 대화 중, 이런 테러나 위기 상황에서 암살자를 만나면 암살자와 눈을 똑바로 마주치며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해 설명하는 것이 범죄자의 심리를 흔드는 데에 큰 효과가 있다는 이야기도 했었는데,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다른 많은 영화들에서 테러범을 만난 주인공들이, "my name is OO."으로 시작하여 자신의 가족들을 설명하며 위기를 모면하는 예들이 꽤 많이 나온다. 범죄자도 사람은 사람인지라 이런 인간적인 부분을 이야기하면 강한 살인 충동이 잠시 수그러드나보다. 아무튼 그런 생각도 나면서 나 같았으면 저런 테러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했을까 상상해보기도 하였는데, 영화에 나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상상 이상으로 너무 침착하다 ㅠ.ㅜ 나 같으면 벌벌 떨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얼음이 될 것만 같은데, 영화 주인공들은 막 이동하고, 피하고, 숨고 ㅠ.ㅜ 글쎄, 또 상황이 닥치면 의외로 담대함도 생기고 생존 본능에 침착함도 생길지도 모르는 노릇이지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자신의 작은 선택 하나가 생명이냐 끝이냐로 갈리는 일이니 그런 상황에 맞닥뜨려본 적이 없는 나로써는 감히 생존자들이 겪었을 공포와 두려움이 상상도 되지 않는다.

 


그런데 2008 뭄바이 테러 당시, 테러 발생 시작으로부터 9시간이나 지나서 뭄바이 특수부대 투입.. 9시간 넘도록 생존자들이 극한의 상황에 오래 노출되어있으면서 얼마나 두려웠을까.. 당시 뭄바이는 테러에 대해 준비나 훈련이 안되어있던 도시였다니, 영화를 보면서도 너무나도 안타까웠다.. 이 사건 이후 뭄바이는 그 어떤 도시보다도 테러 대응력이 강해진 도시가 되었을 줄 믿는다.

 


2008 Mumbai Attack을 지시한 용의자는 아직 검거되지 않았다. 인도에서 이렇게까지 큰 테러는 현재 거의 일어나고 있지 않지만, 한편 인도 서북부 Jammu&Kashmir(잠무&카슈미르) 지방에서는 파키스탄과 인도와의 국경 분쟁 및 인도로부터 독립하여 자치 주를 만들겠다는 주민들의 강한 반발로 크고 작은 테러들이 끊이지를 않는다. 자연환경이 정말정말 아름다운 지상낙원과도 같은 곳이지만 한편 그곳은 이념과 종교 대립을 통한 갈등이 심각한 전쟁터이다.

 

인도라는 나라 자체는 힌두와 무슬림의 대립이 극단적이다. 표면적으로 극단적인 갈등이 많이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인도 속에 들어가보면 이 대립이 얼마나 심한지를 생활 속에서 느낄수가 있다. 과연 종교란 무엇이며 그에서 나온 이념과 신념, 또한 믿음이란 무엇일까. 사람들은 어떻게 믿음을 갖게 되며, 어떻게 그것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여 강력한 신념 체계를 만들어가고 그를 통하여 또한 oneness를 이루는 것일까. 크리스천인 나 또한 또 한 번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 세상 인구가 70억이라면, 70억 개의 종교가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비슷한 이론으로 교리를 형성하고 그것은 또한 분파로 갈라졌으며 또한 하나의 강력한 집단이 되어왔다. 역사적으로 종교에서 비롯된 전쟁과 피의 역사가 정말 많다. 이들은 과연 이것을 통해 궁극적으로 무엇을 쟁취하려 했을까. 더 넓게 나아가서는, 너는 틀리고 나는 맞다는 그 생각. 한편 분별력 없는 상대주의가 가장 위험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절대주의라고 해서 그것이 모두에게 납득이 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또 아니니🤔 흐음.. 생각이 많아진다.

 

 


이렇게까지 긴 리뷰를 쓸 생각은 아니었고 한 다섯 줄로 간략히 단어만 딱딱 쓰고 끝내려고 마음 먹었으나.. 글 쓰다보니 타자치고 있는 내 손이 내 손이 아니다😂 뭔가 더 깊은 리뷰를 하고 싶은데.. 무언가 빠진 느낌이긴 하다. 하지만 결론은, 이 영화 무척 괜찮은 영화라는 것이다. Bohemian Rhapsody(보헤미안 랩소디, 2018)라는 영화조차 두 번을 보기에는 조금 망설여졌는데, 이 영화는 한 번 더 볼 기회가 있다면 지체 없이 더 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좋은 영화를 왜 모든 영화관에서 두루두루 상영해주지 않는걸까.

14 May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