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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연극 - 100% 광주 | 대본과 배우가 없는 일반 시민들의 연극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에서 전문 배우 없이 100% 광주 일반 시민들이 출연한 '다큐멘터리 연극' <100% 광주>를 관람하고 왔다.
이 공연은 다큐멘터리 연극의 선두주자인 독일 아티스트 그룹 리미니 프로토콜(Rimini Protokoll)의 '100% 도시'의 연작으로 2008년 독일 베를린에서 초연된 후 멜버른, 런던, 샌디에고, 도쿄 등을 거쳐 18번째로 한국에 왔다.
광주광역시 148만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인구통계표를 기준으로 선발된 100명의 시민들은 각 연령대와 성비, 출신 지역 등 다양한 통계학적 수치를 대표하는데, 연령대는 엄마 품에 안긴 3살 아이부터 84세 할머니까지 다양했다.
공연 형식은 선발된 시민들이 정해진 대본 없이 단 두 번의 리허설 이후 무대에 올라 자신이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등 자신의 경험을 이야기하고 주어진 질문에 공개 또는 익명으로 대답하는 식이었다. 리미니 프로토콜의 연출가들은 어느 한 작가가 쓴 드라마의 의도를 전달하거나 전문 배우의 재현이라기보다 어떤 일에 관해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일반인들에게 주목하고 있다.
표본 집단의 선정(나라, 도시, 시민, 성비, 연령층 등)에 따라 공연의 내용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는 유용성이 있기는 하겠지만, 이 공연은 현 대한민국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한국인(및 외국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도덕적 사고를 보여줌과 동시에 모든 이에게 부여된 각각의 삶의 다양한 스펙트럼(꿈, 가치, 이룬 것, 사명, 자부심 등)을 보여주며 잔잔한 감동을 선사했다.
생각점
(※ 주의 : 스포일러가 될 수 있음)
인상 깊었던 것은,
1. 광주≠5.18
100% '광주'라는 연극 이름에서 이미 많은 사람들이 '광주=5.18 항쟁'을 연상시키기 마련인데, 공연 중 사회자가 관객에게 이것에 대한 질문을 함으로써 이 연극이 이러한 사회적 통념에 대한 도전을 한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해 볼 수 있게 한 점이었다.
2. 질문
연출자가 100명의 광주 시민에게 던지는 질문들 중 '자신의 집에 무기가 있습니까?'라던가, '자신이 누군가에 의해 감시당하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등의 특정 질문들은 한국인의 문화와 정서가 아닌 타문화에서 온 것으로 여겨질 여지가 충분하였는데, 한국인의 정서가 아닌 타문화인의 시각에서 시작된 질문 자체가 왜곡돼 보일 수 있는 답변을 불러올 수 있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렇기 때문에 더 객관적인 논제의 공론화가 가능하지는 않을까 하고 지인들과 함께 생각해 보았다.
3. 지방어
일반인 배우들이 광주 사람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 사투리 쓰는 사람들은 특별히 띄지 않았다.
4. 음향효과
5.18을 겪은 세대에겐 공연 진행 순서에 포함되어 있는 총에 맞는 장면을 연기하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다.
5. 진실성 & 허구성
질문에 대답하는 일반인 배우들의 질문은 공연 때마다 달라졌을 확률이 높다.
6. 추려진 질문들
질문 자체가 특정 범주와 한계가 정해지지 않은, 다의적인 해석이 가능한 것이 많았다.
7. 관객의 연극 참여
광주 사람들이 한 사람씩 나와 자기소개를 할 때 관객들이 손뼉을 치고 환호를 하는 등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8. 극장의 공공성 및 관객의 수준
유럽의 극장은 사회적 논의가 결집되는, 공공성을 가진 중요한 장소였다. 한국 역시 일부 공연장에서는(특히 클래식 음악 공연장) 공연 중 대화, 박수 금지 등의 공연 관람 예절이 요구되기도 한다. 하지만 관객이 극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또는 개입돼야만 하는) 현대극에서는 이야기가 조금 달라질 것이다. 100% 광주 공연이 진행되는 일부 극장에서 공연 중 음식을 먹거나 옆 사람과 대화를 하는 등의 '공공성을 해치는' 일이 발생되었다고 하던데, 이 말은 한번 생각해 볼 말이었다. 이 극은 공연 캐스팅의 특성상에서도 그러하듯, 캐스팅을 받은 한 사람이 다른 일반인 배우를 추천하여 캐스팅되는 경우이기 때문에 공연을 보러 온 관객들 역시 100명의 광주 사람들의 지인일 경우가 많고, 지인이 무대에 올랐을 때에는 공연을 예술로써 바라본다기보다 조금은 덜 심각하게 바라볼 여지가 크다. 이를테면, 이런 공연은 학예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될 여지가 다분하다. 내 생각에는, 관객의 수준을 논하기 이전에, 연출자는 이런 경우까지 미리 다 예상하고 구상하여 연출 의도에 맞게 관객을 통제했어야 함이 조금 더 나은 방향이지 싶다. 예를 들면, 공연 전에 공연 팸플릿이나 전광판 등으로 공연의 특성을 알리고 공연 중 특정 행동을 삼가도록 공지를 하는 것 등이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참 많은 생각점을 던져주는 공연 이이기에, 앞으로도 계속 생각을 덧붙이고 업데이트하게 될 것 같다.)
26 Apr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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