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서양 음악의 즐거움 - 그리고 문화 권력 |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 이고르 레빗(Igor Levit) 연주
Olivia올리비아 2022. 1. 17. 17:33서양 음악의 즐거움 - 그리고 문화 권력
음악을 배경으로 업무를 하니 신난다!!!
도시 개발이 끊임없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프놈펜 시내는 곳곳이 공사 중이다.
내가 살고 있는 집 바로 옆도, 사무실 바로 옆도 양 옆이 다 공사 중................ ㅠ.ㅠ
완전히 공사 소리가 배경 음악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사무실 옆에는 캄보디아 신학교가 있는데, 캄보디아식으로 재해석한 건반과 드럼 비트의 찬송은... 미안하지만 나의 정서에 잘 맞지가 않는다.
캄보디아 문화임을 인정하고 듣게 되지만, 역시 10년 이상 듣고 자란 서양 음악이 내게 더 정서에 맞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가 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피아니스트, 이고르 레빗(Igor Levit)
피아니스트 Igor Levit(이고르 레빗)이 연주하는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26번 "고별" 1악장
Piano Sonata No. 26 in E-Flat Major, Op. 81a, "Les Adieux": I. Das Lebewohl. Adagio-Allegro played by Igor Levit
집중해서 작업해야 할 문서가 있어 방 문을 닫았다가, 일이 끝나고 우연히 켜게 된 클래식 음악.
확실히 공사 소음보다 낫구나. 아름답다 아름다워!! (하긴 이 아름다운 음악을 어디 공사 소음에 비할까!)
베토벤의 고별 소나타 3악장을 듣다 보니 학창 시절이 갑자기 그리워졌다.
당장이라도 건반이 있다면 연주하고 싶은 생각이 간절...
컴퓨터 자판을 건반 삼아 타자를 침으로 건반에 대한 그리운 마음을 쏟아내며 또한 마음을 달래본다.
그런데 서양 음악은 왜 내게 아름답게 들릴까?
그것은 1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내 마음에 각인되어서 그런 걸까?
만약 내가 한국의 전통음악을 배워왔다면 서양음악보다는 한국 음악이 내 정서에 더 맞아떨어졌을까?
갑자기 궁금해지네....
아니면, 서양 음악이 그만큼 전 세계 사람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만큼 보편성과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도 할 수 있겠지....
생각해 보면 그렇다.
캄보디아에 와서 살다 보니, 캄보디아 사람들의 서양인에 대한 시선과 동양인에 대한 시선이 확연히 다름을 느낀다.
서양인에 대하여서는 동경의 시선과 부러움, 업무와 이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을 완전히 낮추기도 하는 모습을... 동양인에 대하여서는 동료 의식 또는 협력하는 척하면서 비하하는 의식을....
서양 사람들은 그만큼 '멋있다'라는 인상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박혀 있는 것 같다.
그들은 어쩌다가 그렇게 멋지다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주게 되었을까?
아무래도 많은 서구 나라들의 식민주의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서양 사람들은 식민화를 단순히 지배와 착취만으로 생각한 것이 아니라 식민지인의 고유 문화를 파괴하고 서양 문화에 동화시키려 했다. (그것은 기독교나 천주교의 하나의 사명 의식에서 나온 것이기도 하였다.)
기존의 문화를 완전히 바꿀 수는 없었지만, 기존의 문화적 가치에 타격을 입히는 데에는 성공하였다.
문화와 더불어 가장 우선시 된 정책은 모국어를 금지시키고 서양어를 구사하도록 하는 정책이었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전달의 수단만이 아니라 생각의 수단이기도 하므로, 서양 언어를 사용한다는 것은 모국어가 아닌 서양 언어로 생각하는 방식을 받아들인다는 것을 뜻한다. 또한 언어에는 문화 역시 담겨 있다. 그러므로 서양의 문자와 언어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양 문화를 받아들이고 그에 동화되며 서양적인 가치관을 갖게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교육 또한 이의 연장선상이다. 서양 언어의 사용과 서양 기원의 교육을 통하여 서양 문화의 우월성과 그 이데올로기에서 벗어나기 어렵게 된 나라들이 많을 것이다.
(참고 : 프레시안 뉴스 '고유문화의 해체와 식민지 문화의 형성' - 강철구 이화여대 교수)
음악적인 측면에서도 그럴 것이다.
세계 각국의 모든 음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음악의 보편성(음악의 규칙, 원리, 문법 등)과 더불어 특정 지역에서만 나타나는 음악의 특수한 부분이 있다. 이러한 음악의 특수성은 특정 음악이 만들어진 나라나 문화권의 문화적 특수성에서 기인하는 것이다.
그런데 서구의 음악에만 있는 어떤 것을 보편적인 것으로 보고, 보편성을 가장한 특정 문화의 특수성을 당연한 것으로 믿게 하고 받아들이게 하는 힘이 바로 문화의 헤게모니(Cultural Hegemony)이고 문화적 권력이다. 우리가 흔히 음악이라고 부르는 서양 음악이 비서양 음악에 대해 해온 일이 바로 이런 문화적 권력의 행사였다. 거기에 우리의 지식인들이 부지불식간에 이용을 당한 것이다....
(참고 : 음악의 보편성과 특수성 사이에서 |작성자 동산선생)
그렇다면, 서양 음악이 한국의 전통 음악보다 내 정서에 더 맞게 느껴지는 이유는... 나도 이런 논리 속에 갇혀 그것이 내게 각인된 결과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한국의 전통 음악을 아름답지 않게 여기는 것은 아니다. 다만 서양 음악이 그만큼 내게 더 친숙하며, 오랜 시간 동안 이 음악에 대하여 공부하고 전문성을 갖춰왔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그들의 '어법'에 익숙해졌다고 해야 할까..?
한국에서 태어났다고 하여 꼭 한국의 음악을 공부해야 하고, 한국 음악만이 내게 최고로 느껴져야 할 당위성은 없지만, 꼭 지양해야 할 것은 나의 근본 뿌리와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 가운데 그것을 하찮게 여기고 다른 나라의 것만을 우월하게 취하는 문화 사대주의적인 태도이다.
음악의 아름다움에 심취하여 그 즐거움을 가볍게 써 내려가려 했던 글이 어느새 서양 문화의 전 세계적 확산에 대한 이야기까지 흐르게 되었다.
서양 음악의 어법은 그래도 대단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전 세계 그 누가 들어도 그 음악이 아름답다는 데에 반대 의견을 펼칠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인류 보편적이고 모두의 가슴 안에 있는 그 무엇인가를 자극하여 흔들만큼 감동이 있는 음악. 그 음악은 단지 감정적, 정서적으로 아름답다고 주관적으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사람이 공감할만한 수학적 규칙과 논리적 법칙들이 음악 속에 정교하게 짜여져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양 음악은, 특히 바로크와 고전시대 음악들은 수학과 논리적 토대 위에 아름다움까지 겸비한 과학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한다. 쥐어짜는 예찬이 아니라.. 서양 음악은 그런 면에서 정말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알면 알수록 오묘하고 신기하다.
공부할수록 알수록 세상을 보는 시야와 사고의 폭이 확장된다.
가장 중요한 것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지 않으면 가장 최고의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분별력을 잃고 나도 모르게 끌려가기 십상이니까 말이다.
13 Nov 2013
'클래식 음악의 모든 것'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오페라 읽어주는 남자 | 트리스탄과 이졸데 Tristan und Isolde -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깊이 이해되는 바그너의 오페라 (0) | 2022.05.23 |
---|---|
피아노 잡지 | 더 피아노 The Piano - 학생 때부터 구독하여 모아 온 나의 자산 (0) | 2022.05.20 |
3살 아이의 피아노 실력 - 아시안 부모의 학습 강요 (0) | 2022.04.23 |
아쉬움이 많이 드는 요즘 음대생들의 실력... (0) | 2021.11.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