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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치민 여행 | 내게 스프링 롤(Spring roll)을 사준 베트남 남자

 

아침 먹고 호텔에서 시간 좀 보내다가 골목 카페를 찾아왔다.

 

 

 

카페 바로 옆집에서 Com Tam(껌 땀), 베트남식 백반인 밥과 반찬을 만들고 판매한다. 많은 사람들이 와서 밥 먹는 것을 보니 이 집 밥이 맛있나 보다. 나도 이 밥을 먹어보고 싶긴 하지만 양이 적은 나는 별로 배고프지도 않은데 밥을 시키기도 뭐 하고, 그렇다고 주문했다가 남기기도 뭐 해서 그냥 자리에서 일어섰다.

 

 

 

 

차라리 공원에 가서 어제 산 호밀빵 사이에 바나나를 잼 삼아 샌드해서 먹었다. 근데 영 머리가 지끈지끈. 아무래도 고수 잎이 들어간 스프링 롤이나 뭔가 매콤한 것을 먹어야 정신이 차려지겠어..!!

 

 

 

 

어느 집이 맛있는 스프링 롤을 만들고 있을까 배회하다가, 벤탄 시장(Ben Thanh Market) 근처에서 스프링 롤을 새로 말고 있는 노점 상인을 발견, 내가 얼마냐고 물어보니 이곳에서 먹고 있던 남자 손님이 앉아서 먹어보라며 내게 권했다. 흠... 하나에 10,000d(약 US$0.50)이면 생각보다 비싸잖아..? 나는 다시 벤탄 시장 안을 들어가서 스프링 롤 가격을 조사해 본다. 으으.. 숙소 근처에서는 이것보다 더 저렴하던데 여긴 왜 이렇게 비싸... 

 

 

 

 

 

그러나 나는 Reunification palace(통일궁)를 가야 했으므로 서둘러서 먹고 가기로 한다. 아까 남자 손님이 앉아있던 그 집에 다시 갔다. 

 

스프링 롤은 글쎄.. 거의 소스 맛으로 먹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남자 손님은 소스를 젓가락으로 싹싹 긁어서 다 먹고 있었다. 남자 손님은 영어가 조금 되는 베트남 사람이었는데 외국인이 이런 노점상에서 쭈그려앉아 음식을 먹는 것이 신기했는지 나에게 말을 걸면서 근처 아주머니 상인들과 나의 말을 통역해 주었다.

 

남자가 내게 어디 출신이냐고 물어서 나는 대화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그냥 일본에서 왔다고 했다. 아무래도 이곳에서는 일본 사람들에게 호감을 느끼니 말이다. 역시나 남자는 일본에 대해 호감을 보이면서 자신이 일본 회사(정유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고 했다. 원래 10년 동안 교사로 일을 했었으나 월급이 너무 적어서 일을 과감하게 그만두고 중국계 회사에 들어갔으나 워낙 베트남 사람들이 중국에 대해 좋지 않은 의식을 가지고 있기도 하고, 중국 사람들과의 일 스타일도 안 맞아서 3~4년 일하다가 그만두고 지금은 일본계 회사에 다니는데 급여가 아주 높은 것은 아니지만 만족스럽다고 했다. 나는 남자의 급여, 이곳 학교 교사들의 급여가 궁금했으나 차마 물어보지는 못했다. 중국과는 왜 관계가 안 좋냐고 물어보니 많은 이유들이 있고 복잡해서 한 번에 다 말하기가 어렵다고 했다.

 

 

 

 

 

스프링 롤 상인 바로 옆에서 장사하는 상인. 저건 순대 같은 건가.. 노란색 저 국물은 과연 뭘까. 나는 숯불 화로 바로 옆에 앉아 있었으므로 따뜻한 기운이 계속 내게로 왔다.

 

나는 내가 먹다가 반쯤 남긴 바나나를 들고 있었는데, 그것을 보면서 상인들 사이에서 말이 오갔나 보다. 상인들 생각엔 남은 바나나를 그냥 버리지 뭐 하러 들고 다닐까 궁금해한다고 했다. 남자는 일본 사람들이 적게 먹고 음식물을 적게 남기는 것이 쓰레기를 안 남기 는 참 좋은 방법이라면서 이 상인들의 생각, 베트남 사람들의 생각이 변화해야 한다고 했다. 많이 시켜서 먹을 만큼 먹고 많이 남기는 것이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라고 했다. 한국이랑 똑같네... 남자는 일본같이 의식이 변하려면 10년에서 15~20년은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아무리 오래 걸려도 변화가 있다는 것 자체가 바람직한 것이라고 했다.

 

그러더니 남자가 내가 고기만 들어간 스프링 롤도 먹어보길 바랐다. 나는 아까 빵도 먹고 왔기에 새우 스프링롤 하나면 됐다고 했는데 남자는 내가 자신의 나라를 더 경험하길 원하며 자신이 살 테니 먹어보라고 했다. 나는 그냥 내가 돈을 낼 요량으로 그냥 하나 더 먹었다. 사실 배가 찼기에 하나 더 먹었다가 체하는 것은 아닐까 염려되기도 했지만 다신 오지 않을 경험일 수도 있으니 눈 딱 감고 하나 더 먹었다. 고기 스프링 롤은 새우 스프링 롤의 소스와 다른 fish sauce, 젓갈류가 들어간 소스였다. 현지에서는 이를 '느억 맘'이라고 부른다. 나는 느억 맘을 안다면서 한국에도 비슷한 젓갈 종류가 있어서 나는 어렵지 않게 이를 먹을 수 있다고 했다(그러고보니 은연중에 한국 얘기를 했었네.). 그러나 남자는 미간에 인상을 쓰며 별로 좋아하질 않았다. 북베트남 하노이 근처에서 왔다더니.. 북부 지방은 젓갈을 잘 안 먹나..? 아무튼 남자는 젓갈 소스에 한번 찍어 먹더니 다시 달디 단 새우 스프링 롤 소스로 남은 스프링 롤을 마무리했다. 그러면서 호치민 시에는 좋은 사람들도 있겠지만 도둑들이 많은 험난한 도시라고 나에게 여행 시 주의할 것을 재차 당부하였다. 호치민 시가 위험하긴 위험한 곳이구나. 이렇게 현지인들도 질색할 정도면 말이다.. 지난 목요일에 만난 변호사 말에도 현지인들도 위험한 곳이라고 하니 뭐...

 

스프링 롤을 다 먹고 내가 먹은 값은 내가 페이를 하려고 하는데, 남자는 자신이 페이를 해도 되겠냐면서 정말로 내가 먹은 스프링 롤 값을 계산했다. 주변 상인들의 온 관심이 집중되었다. 사실 나는 누군가의 호의를 쉽게 받지 못하는 성격이기도 하지만, 이런 낯선 곳에서 낯선 사람의 친절이 약간 경계되기도 했다. 혹시 이거 하나 사주고 뭘 바라거나 나에게 함부로 한다거나 그런 것은 아닐까 약간 무섭기도 했지만, 남자는 아무 사심 없이 베트남과 일본은 친구 나라니까 나의 것을 산다면서 음식값을 냈다. 나는 고마워서 "당신이 베트남 사람 중에서 처음으로 내게 음식을 사 준 사람이에요." 하면서 그의 이름을 물었다. 그러고는 기념으로 사진을 찍어도 괜찮냐고 부탁했더니 쿨하게 오케이 해서 사진을 찍었다.

 

 

 

남자의 이름은 Phuoc. 쉽게 기억할 수 있는 이름이었다. 호치민 시 간판에서 Phuoc이라는 글자를 정말 많이 봤기 때문이었다.

 

통성명을 했더니 남자는 내게 다시 만나자, 어쩌자의 기타 미사여구를 다 빼고 쿨하게, "Good bye, OO(내 한국 이름)." 하고 자기 가던 길을 갔다. 참으로 고마운 사람이었다. 이런 것이 바로 여행하는 재미 아닐까. 예측하지 못한 만남을 통한 사람 사는 이야기 듣기 + 현지 문화 이해.

 

to be continued...

 

8 Dec 2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