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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의 첫 인상 – 콜롬보 공항. 어느 나라를 가나 외국인들이 낯선 나라에 처음 도착했을 때 맞게 되는 그 나라에 대한 첫 인상은 공항의 이미지에도 많이 좌우되는 것 같다. 어느 나라를 가나 대부분의 공항들은 깔끔하다. 물론 국가 이미지를 위해 특히 수도의 공항에는 신경을 좀 더 많이 쓰는 것이 오늘날 대부분 나라들의 모습이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작지만 정말 깔끔하고 단정한 스리랑카의 공항은 이 나라에 들어서는 여행자를 기분 좋게 맞아 주었고, 천장에 달린 색색의 솔들은 이 나라가 불교 국가라는 것을 알리는 듯 했다.

 

 

인도보다도 더 못 살고 가난하게만 느껴졌던 스리랑카. 이번 여행을 통해 스리랑카의 어떤 ‘진실’을 마주하게 될까 기대도 됐었는데 청결하게 잘 마련해 놓은 공항을 보니 ‘진짜’ 스리랑카가 무엇일지 더욱 더 궁금해졌다.

 

 

 

 

위의 찍어놓은 사진을 보니 한켠의 TV에서 축구가 방영되고 있다. 이 때는 한창 남아공 월드컵 시즌이어서 공항에서도 사람들의 축구 열기가 한창이었다. 축구에 별 관심은 없지만 함께 보면 재밌는 것이 또 축구여서, 월드컵 축제의 분위기와 여행에 대한 기대가 겹쳐 내 마음은 더 고조되었다.

 

인도에서 온터라 인도 루피밖에 없었던 우리는 공항에 있는 ATM기에서 스리랑카 돈을 인출하였다. 씨티은행 하나의 카드로 인도에서는 인도 루피가, 스리랑카에서는 스리랑카 루피가 인출된다는 것이 당연한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신기하였다. 기계에서는 큰 단위의 돈만 뽑아져 나와서 공항에 줄줄이 늘어선 환전소 중 한 군데에서 소액권 교환도 하고, 여행안내 센터에서 스리랑카에 대한 자료를 얻고, 어디로 어떻게 여행을 할까 궁리하며 여행에 대한 준비를 단단히 하였다.

 

짐에 부칠 수 없어 기내에 가지고 탔던 노트북과 이런 저런 짐들을 다시 배낭에 꾹꾹 눌러 넣고, 자~ 드디어 공항 밖으로 나간다. 스리랑카의 공기는 과연 어떨까?

 

 

 

첫 인상은 ‘그렇게 안 덥네.’ 였는데 몇 초간 더 있으니 덥긴 더웠다. 바다를 끼고 있는 섬나라라서 그런지 내리쬐는 햇볕은 인도보다 더 따가운 듯 했고, 스리랑카에 오기 전 머물렀던 도시 Chennai(첸나이)도 바다를 끼고 있었던 도시였지만 확실히 ‘대륙’과 ‘섬나라’의 기후는 확연히 달랐다. 하지만 공항 주변에 심겨진 수많은 초록 식물들은 내리쬐는 햇볕에도 내 마음을 싱그럽게 해 주었다.

 

인터넷에서 열심히 검색을 해서 얻어낸 정보. 스리랑카 공항에서 버스 스탠드까지 가는 무료 셔틀버스가 있다는 이야기를 읽었었다. 한 눈에 봐도 ‘우리 여행 왔어요.’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배낭을 멘 우리들을 택시 기사들은 앞다투어 손님으로 모시려 했다. 하지만 이미 무료 셔틀버스의 존재를 알고 있는 우리는 어렵지 않게 셔틀버스에 올라 한 5분여 정도 거리에 있는 버스 스탠드로 이동할 수 있었다(글을 쓰다 보니 참 신기하다. 사진을 보니 일정이 생각나고, 일정을 생각해보니 정말 디테일한 것 하나하나까지 다 기억이 나는 것이 정말 신기하다. 그토록 스리랑카 여행은 내게 인상적이었던 것일까? 아님 이렇게 디테일하게 기억나는 것이 당연한 것일까..).

 

 

 

 

그렇게 도착한 버스 스탠드에서 제일 처음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이 깃발이었다. 무슨 의미인지는 정확히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부디즘을 상징하는 것 같았다. 푸르른 나무 주위에 이렇게 색색의 깃발을 걸어 놓으니 참 화려하기도 하고, 스리랑카는 불교 국가라는 것을 아주 확실하게 선전하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이 사진을 다시 보니 이 나무가 TREE GOD가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해 본다. 인도도 그렇고, 여러 나라에서 나무 자체를 GOD로 여겨 그것을 모시고 숭배하는 것을 많이 보았다(알고보니 이 나무는 보리수 나무로, 스리랑카 사람들에겐 믿음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

 

우리가 제일 처음 간 도시는 Negombo(네곰보)라는 도시였다. 네곰보.. 뭔가 생소하면서도 뭔가 정겹기도 하면서 들어본 듯도 하고 그런 도시 이름이었는데, 여행자들이 스리랑카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가는 도시로 유명한 도시이다. 이유인즉슨 공항에서 가깝기 때문이다. 한 1시간여 버스를 타고 가면 도착할 수 있는 네곰보. 네곰보 가는 버스가 때 마침 와서 버스를 탔는데 옆자리에 한 스리랑카 아줌마가 앉으셨다. 스리랑카의 인삿말인 ‘아유보완(Ayubowan)’을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하니, 아주머니도 참 기분 좋은 미소로 응답해 주셨다. 이 아주머니는 내가 생각하던 스리랑카 이미지의 전형이셨다. 검은 피부, 마른 몸매, 그렇지만 미소가 밝은 스리랑카 사람들... 참 기분 좋은 스리랑카 여행의 시작이었다. 스리랑카에 도착하자마자 용기를 내어 ‘아유보완’ 인사를 통해 현지인과 접촉했다는 사실에, 앞으로의 여행에 대한 설레임으로 내 마음은 흥분되었다.

 

 

 

네곰보는 태국의 여행자 거리인 카오산 로드처럼 여행자 숙소가 한 곳에 밀집해 있는 것이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서 일렬로 길게 띄엄띄엄 늘어서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버스를 타고 가도가도 계속 sea side 이길래 그냥 한 장소에 내렸다.

 

햇빛이 뜨거워서 모자를 안 쓸래야 안 쓸 수가 없었다. 유명한 숙소들은 이미 다 지나쳤는지 숙소를 잘 찾아볼 수가 없었는데 그렇게 조금 걷다가 가장 먼저 찾은 숙소는 완전 고급 숙소였었다. 풀장에, 정원에, 더블 배드에, TV, 화장실, 베란다까지 있고 그 베란다에서는 바다를 바라볼 수 있는 view까지 있는 방.. 우리 일행 4명이 잘 수도 있는 커다란 방이었는데 신혼여행자들을 위한 방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 방 값은 한 6~7만원 정도였는데 비성수기라서인지 방 값이 정말 저렴했다. 나중에 Lover를 만들어서 이 곳에 오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ㅎㅎ

 

우린 이 날 새벽 4시에 인도의 첸나이에서 첫 전철을 타고 첸나이 공항에서 7시 비행기를 타고 스리랑카에 왔건만, 그 날 먹은 것은 기내식이 전부인데도 숙소 찾느라고 지치지도 않는지 무거운 가방을 메고 거의 1시간여를 뜨거운 땡볕 아래서 걸어 다녔다. 그러나 스리랑카에서 첫 짐을 내려놓을 안락한 장소를 물색하는 것은 여행이 주는 기대와 설레임 때문인지 지치지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라고 말하고 싶지만, 사실 우린 budget 여행자라서 한 방에 4명이긴 했지만 최대한 저렴하고도 좋은 방을 찾으려 그렇게 오랜 시간을 돌아다닌 것이었다! 그런데 즐거웠다. 생각보다 깔끔한 스리랑카의 숙소(인도의 budget 숙소들과는 완전 차원이 다른 깔끔함이다.), 비성수기라서 가격 흥정이 얼마든지 가능한 숙소들 등등 고급 숙소와 중급 숙소를 비교하는 일은 앞으로의 스리랑카 여행에 있어 스리랑카의 물가와 숙소 모습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Sea side에 있는 숙소들은 아무래도 view 때문에 좀 비싼 편이었는데 한 중급 호텔의, Kandy에서 왔다는 유럽풍의 잘 생긴(!) 스리랑카 청년이 저렴한 한 호텔을 소개해 주어서 그 곳으로 갔다. 그런데 주인은 비성수기라 손님이 없는데도 처음에 가격을 높게 불렀었다. 생각보다 비싼 가격에 우리가 떠나려고 하자 주인은 우리를 다시 불러세워 가격 협상을 제시했고 우린 적당한 선에 맞추어서 1450루피였던가, 한화 한 14,500원 정도에 커다란 더블배드, 거울과 가구장, 화장실도 있고, 복도 쪽으로는 베란다가 보이고 침실 쪽에서는 거리 뷰가 보이는 양 사이드로 베란다가 있는 아주 좋은 방에 짐을 풀을 수 있었다.

 

 

 

 

위 사진은 침실 쪽 베란다에서 찍은 사진이다. 도로 위엔 인도처럼, 그러나 인도보다 더 깔끔하고 기계적으로 더 안정되어 보이는 색색의 오토 릭샤가 달린다. 비성수기라 그런지 도시 전체는 참 조용했다. 가게들은 주로 외국인들을 겨냥해서인지 조각품, 공예품 등 고급 가게들이 늘어서 있었고 레스토랑들도 고급이었다.

 

그리고 베란다에서 바라보니 붉은 지붕들이 많이 보였는데, 스리랑카는 네덜란드, 독일, 포르투갈 등의 식민 지배를 많이 받았던 나라라 이 서양 나라들의 건축 양식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사진에도 보면 한 집은 유럽식의 정원이 있는 집이다. 붉은 색의 지붕은 아마 포르투갈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싶다. 붉은 색의 지붕들은 높은 곳에서 바라보면 참 인상적이다.

 

이렇게 스리랑카에는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허물며 자신의 것들을 새로 고수한다기보다, 그것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아직까지도 정부 청사나 다른 건물로도 많이 활용하고 있어 유럽에서 자기들의 문화를 보기 위해 오히려 이 곳에 많이 찾아온다고 한다. 인도도 영국 식민 잔재를 청산하고 건물을 허물고 새로 만들기보다 그것들을 그대로 보존하면서 사용하고 그를 통하여 관광객들도 끌어들이고 있는데 그런 모습들은 한국과는 좀 다른 모습이 아닌가 싶다. 한국은 오래된 전통 집들을 보존한다고 그 집들을 오히려 비우고 관리인들을 두어 관리하는 시스템인데(물론 사람이 거주하면서 관리되는 집들도 있긴 하지만), 한편 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집은 오히려 사람들이 살면서 가꾸어야 수명이 더 오래 간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전통 가옥들은 관리인을 두어 관리를 하면 다행인데, 보존한답시고 ‘방치’하여 폐가를 만드는 경우도 없지 않아 그런 것들이 좀 안타깝다.

 

아무튼 과거는 과거일 뿐 식민 잔재나 식민 시절의 흔적들을 모조리 청산하고 있지는 않은 모습의 인도와 스리랑카. 과거의 식민 통치국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식민 잔재이지만 그것들을 보존하고 사용하고 가꾸며 관광객들도 끌어들이고 있는 양국을 보며(‘끌어들인다’가 좀 나쁘게 들릴수도 있는데, 나쁜 뜻이라기보다.. 오히려 그것들을 잘 활용한다는 의미이다.) 식민 잔재를 치우지 못해 안달인 우리나라의 씁쓸한 현실을 생각하게 되었다. 물론, 일본의 식민 지배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있어 굉장히 민감한 문제이고 현재는 독도 영유권 , 역사 교과서, 위안부 할머니들 등 아직까지도 해결해야 할 난제들이 많은 것은 사실이다. 누군가가 잘못했으면 잘못했다고 인정을 하는 것이 많고,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세계화 이 시대에 서로간에 트러블이 있으면 풀어 나가야 하는 것이 이치이다.

 

하지만, 과거는 이미 내가 살아온 역사이다. 그건 국가에게나 개인에게나 마찬가지의 문제이다. 과거를 지우고 싶다고 건물을 허무는 등 당장 눈에 보이는 사실들을 없애고 바꾸는 것을 통해 과거의 사실을 잠시 '잊을 수는' 있지만 과거에 있었던 ‘사실’ 그 자체는 지워지지 않는다. 문제는 과거를 인정하느냐, 마느냐는 것이다. 내가 살아온 과거를 부정하면 결국은 내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 된다. 과거는 과거이다. 부끄러워 하고 지우려 하기보다 먼저는 인정하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을까... 인정하지 않는다면 열등감과 괴로움에 시달릴 뿐이다. 

 

 

 

 

다시 스리랑카 여행으로 돌아와서, 1시간여를 숙소 찾느라 헤맸던터라 땀을 많이 흘렸지만 우리는 허기를 달래기 위해 방에 짐만 내려놓고 레스토랑을 찾아 가는 길이다. 바다 바람에 두빠따(Dupatta; 인도 여성들이 펀자비 드레스(Punjabi dress) 위에 걸치는, 가슴을 가리는 용도의 천)가 엄청나게 휘날렸다. 바람에 담겨 있는 소금기 있는 바다 내음이 싫지 않게 느껴졌다. 샤워만 하면 이 바람이 굉장히 시원하게 느껴질 것 같았다.

 

우리가 묵었던 숙소 근처는 상대적으로 비싼 레스토랑이 많았다. 오늘 밤 축구 중계를 한다는 한 레스토랑에 들어갔는데 가격이 좀 비싸서 다른 레스토랑으로 이동, 이 곳에서 허기진 배를 달랠 수 있었다.

 

 

 

 

점심을 먹고 나서는 달콤한 것이 당겨서 한 슈퍼에 들어갔는데 스리랑카 물가는 인도보다 비쌌다. 인도에서 Cadbury Diary Milk chocolate 제일 큰 것이 99루피.. 한화 약 2,500원인데, 스리랑카 입장에서는 그게 수입품이라 그런지 가격이 2배였다. 인도에서는 과자를 한 10루피, 15루피면 살 수 있었는데..(한화 약 250~450원) 이 곳에서는 기본이 한화 500원 정도 하였다. 스리랑카 물가는 인도 물가보다 한 1.5배~2배 정도로 더 비쌌다. 

 

 

 

 

 

이 날은 아무래도 새벽 2시부터 일어나서 스리랑카 온다고 이것저것 준비하고 이동하고 분주했던 터라 점심을 먹고 그냥 쉬었다. 저녁 무렵 베란다에서 바라 본 석양이다. 새들이 날고.. 바다 바람이 선선하게 불어오고.. 열대의 나무가 있는 바다 풍경.. 그 위로 붉은 노을이 진다. 내가 바라보고 있는 이 바다는 어떤 바다일까? 아마 스리랑카 서쪽에 있는 이 바다는.. 인도 남부 쪽에 있는 인도양 이리라..,

 

저녁에는 결국 월드컵도 보고 저녁도 먹을겸 결국 낮에 봐 두었던 레스토랑으로 갔다. 영국에서 왔다는 한 서양인이 그 레스토랑에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인도에서는 내가 있던 지역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힘들었던 서양인.. 만나니 반가운 마음마저~!

 

축구는 일본과 어떤 유럽 팀의 대결이었는데 결과는 기억나지 않는다. Q는 일본이 같은 아시아인이라서 응원하게 된다고 했는데, 난 아마 그 반대편을 응원 했었던 듯.. 하지만 누구를 응원한다기보다 그냥 많은 사람들과 한가지에 집중하여 즐길 수 있었다는 것이 더 즐거웠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마지막엔 다섯 골씩 승부차기를 하는데 나는 너무 졸려서 비몽사몽... 그래서인지 결과는 기억나진 않지만, 스리랑카에 도착했다는 일종의 안도감과 피곤함이 몰려와 졸음이 쏟아지는 밤이었다.

 

29 Jun 2010

 

 


 

(이 스리랑카 여행 후, 인도의 맥레오드 간즈(McLeod Ganj)에서 덧붙임.

 

나.. 말이 참 많다! 간만에 글을 써서 그런가.. 왜 이렇게 할 이야기가 많은지... 인도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손글씨나 한글 워드 등 일기장으로 남긴 것만도 한 무더기인데 이것들을 좀 더 많은 사람들과 나누며 의견 교환도 하고 싶고, 나의 글을 통해 ‘나 이런이런 것들도 배웠어요.’ 하고 세상에 내놓고 싶기도 하다.

 

여행은 ‘상투적’으로 통용되곤 하던 말들도 깊이 있게 깨닫게 한다. 그런 면에서, 나의 깨달음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이제야 그것을 깨달았단 말이야?’, ‘그건 모든 사람들이 다 하는 이야기야.’, ‘유치해.’, ‘에이, 시시해. 누구나 다 하는 이야기.’ 라고 말하게 할지도 모르겠지만,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체험을 통해 깊숙히 깨달은 것’은 글로나, 말로나 어떻게든 드러나게 마련이라고 생각한다. 난 언제까지나 나 자신을 꾸미지 않고 날 것 그대로의 솔직한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이야기 하고 싶다. 이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으면 반가운 것이고, 내 생각과 반대되는 사람이 있다면 난 그 사람을 통해서도 배우고 성장하게 되리라고 생각한다.

 

그련 한편, 나는 과연, 나의 말과 글들을 단지 ‘배설’하고 있는 것인가, ‘호소’ 하고 있는 것일까.. 일종의 배설구가 필요한 것일까.. 공감을 얻고 싶은 것일까.. 정말 글이 쓰고 싶은 것일까.. 아님 생각이 너무 많은 것일까..

 

날이 부쩍 추워져 곧 눈도 내릴 것 같은 인도의 맥레오드 간즈(McLeod Ganj)의 찬 새벽공기에 깨어, 콧물을 훌쩍거리며 아침을 맞으며 이 글을 썼다. 외국인 친구들도 내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영어로도 쓰고 싶지만 한글로도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다. 정말 요즘 책을 보면서 느낀 것인데, 한 사람의 생각과 감정을 다른 사람들이 잘 이해할 수 있게, 또 때로는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감동과 공감을 불러 일으킬 수 있게 글로 명료하게 정리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느꼈다. 난 일기를 쓸 때에도 나의 감정과 생각들을 잊어버릴라, 얼른 그것을 글로 옮기는 데에 바쁘기 때문에 문맥이나, 논리나.. 이런 것들에 신경을 덜 썼던 것이 사실인데, 문장의 명료성이나 논리성..을 갖추는 것도 연습을 통해 가능하겠지? 하지만, 때로는 논리나 명료성을 떠나 날 것 그대로가 더욱 생생한 느낌이 들어.. 이 부분도 놓칠 수 없을 것 같다. 마음에서 저절로 나오는, 가공하지 않은 그것 그대로의 순수한 나의 언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