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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책하듯 봄의 북한산 등반 - 그래서 오늘도 난 자연에게 감사하다.
나뭇가지에 연둣빛 잎사귀가 살포시 고개를 내밀었다.
봄, 봄이 왔구나.
유난히도 길고 추웠던 지난 겨울. 봄은 지레 겁을 먹었는지 유난히도 더딘 발걸음으로 찾아오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더 반가운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더 고마울지도 모르겠다.
봄에만 볼 수 있는 꽃들을 만나기 위해 산을 오르기로 했다.
집을 나서자 따스한 햇빛이 내 몸을 감싼다. 내 얼굴 가득 흐뭇한 미소가 피어 오른다. 눈을 감고 잠시 봄을 느껴본다. 바람 한점 없는 포근한 봄.
행복하다.
삶을 배우겠다고, 삶의 용기를 얻겠다고 지난 1년간 인도에 다녀왔는데 추운 겨울은 나의 마음마저 꽁꽁 얼려놓아 귀국한 이래로 이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좀 벅차고 힘들었었다.
그런데 따스한 이 햇빛이 내 마음을 녹인다. 이제는 세상에 네 발을 내딛어도 된다고, 이제는 움츠린 어깨를 펴고 당당하게 걸으라고 내게 말하는 듯하다.
봄의 훈훈한 격려 아래 어깨를 쫙 펴고, 발걸음을 당당히 해 본다. 웃음이 절로 난다. 용기가 생긴다. 자신감이 생긴다. 그리고 내 자신이 사랑스러워지기까지 한다.
산으로 가는 길 양쪽엔 봄의 대명사인 진달래와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산을 오르기도 전에 예쁜 꽃들에게 반해 열심히 사진을 찍고 있는데 산에서 내려오던 한 아저씨가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고 내게 말을 건다.
"저 안쪽에 들어가면 벚꽃이 아주 터널이야!"
벚꽃 터널이라! 아저씨 표현이 참 시(詩)적이다.
한껏 기대를 안고 모퉁이를 도니, 와...!! 정말 탄성이 나올수밖에 없게 만드는 아름다운 '벚꽃 터널'.
여의도 벚꽃축제도 끝났고, 집 근처 벚나무도 한동안 열심히 길을 따라 'Pink carpet'을 연신 만들더니 근래에 내린 비로 벌써 제풀에 지쳤는데, 등산로로 가는 길엔 아직 벚꽃들의 축제가 한창이다.
밤하늘의 수많은 아름다운 별처럼, 봄 하늘을 반짝반짝 수놓고 있는 벚꽃들. 꽃천지가 따로 없다.
등산로 입구에 도착했다. 오래간만에 산을 오르는거라 오늘은 무리하지 않기로 했다. 혼자 갔던터라 혹 산에서 길을 잃을까 두렵기도 했고.
"비봉(碑峯)까지만 오르자."
등산로 입구를 지나 드디어 산을 오르기 시작한다. 아니, 산을 오른다기보다 기분 좋은 산책을 하는 느낌이다. 천천히, 천천히, 서두르지 않고 산의 풍경을 내 몸 가득 만끽한다. 몸에 좋다는 'phytoncide 피톤치드'도 한껏 들이켜 본다.
그러나, 등산로 입구까지 펼쳐져 있던 벚꽃 터널과는 다르게 정작 산에 들어서자 산은 아직도 겨울의 시린 느낌을 많이 간직하고 있었다. 아직은 봄이 화사하게 피지 못했구나.
유난히도 더디 오는 봄. 유난히도 더디 오는 나의 봄.
그러나 기분 좋은 봄의 징조들은 산 어디에서나 발견할 수 있다.
이제 막 피어난 잎과 함께, 이제 곧 피어날 작은 봉오리들이 여럿 달린 식물을 발견했다. 시린 겨울과 봄 사이의 꽃샘추위를 견디려고 저렇게 많은 솜털을 가지고 있나보다.
이렇게 작은 생명도 어떻게든 피어나려고, 어떻게든 환경에 적응하려고 이리 힘쓰고 있는데... 과연 나는 어떠한가...
작은 생명이 내 마음의 거울이 되어준다.
이제 막 피어나고 있는 식물은 참 아름답다. 장하고,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경이롭다. 추운 겨울 내내 앙상한 나뭇가지만 드러내고 있어 죽었는지, 살았는지 알아보기 힘든 나무였는데, 그 앙상한 가지 어디에 저런 힘찬 생명을 보듬고 있었는지...
나무는 가을이 되면 잎을 떨구고, 겨울엔 앙상해진 나뭇가지로 최소한의 것들만 유지한채 겨울을 보낸다. 그리고 다시 봄이 되면 기다렸다는듯이 다시 싹을 틔운다. 그렇게 1년.. 2년... 나무는 점점 성장해간다. 뿌리는 더욱 깊게 뿌리 내리고, 키는 점점 더 커지고, 허리 둘레는 점점 두꺼워진다.
나무가 이렇게 성장해갈 수 있는 이유. 적절한 시기에, 때에 맞춰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때문이다.
때를 알고 자연의 순리에 순응하는 식물들. 식물들은 결코 게으름을 피우거나 일을 안 하는 법이 없다. 언제나 성실하게 주어진 환경 가운데 자신의 일들을 묵묵히 하며 번식하고 점점 성장해나간다.
참 현명하기도 하고, 대단하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정체되어 있지 않고, 언제나 한결같이 앞으로 나아가고 성장하는 것. 자연이 내게 주는 교훈.
언제나 푸른 나무. 사시사철 항상 똑같아 보여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계절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잎의 중심에 있는 저것은 꽃일까, 씨일까.. 잎은 봄의 따뜻한 햇빛을 충분히 받고 싶은지 햇빛 쪽으로 몸을 한껏 펼치고 있다.
이것이 본능이든, 의도적이든 살아가는 방식이 참 적극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래.. 나도 언제까지 움츠리고 있을수만은 없지! 내 안의 스스로의 벽을 허물고, 내 안의 어두움을 봄의 따뜻한 빛으로 채우자.
새순 위에 풍뎅이가 앉았다. 한참을 그대로 들여다 보고 있어도 그 자리에 그대로 앉아 있던 녀석. 대체 뭘 하고 있는걸까?새로 돋아난 이 잎이 자신의 보금자리로 적당한지 알아보기라도 하려는걸까?
아름다운 것들, 매력 있는 것들,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들에는 언제나 곤충들이 찾아온다. 그것은 곧 식물이 살아 있다는 증거다.
사람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매력 있는 사람들, 존재 그 자체로 빛을 발하고 있는 사람들 주위에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얼굴이 잘나고 못난 것은 문제 되지 않는다. 외모든, 능력이든, 성격이든 어떤 것이든 사람들은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매력은 저마다 각각 다르다.
이렇게 사람들이 매력을 풍긴다는 것, 그것은 곧 살아 있음을 뜻함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식물이든, 사람이든.. 우린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고유의 character를 지니고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의 단 하나의 매력. 그래서 우리 개개인은 더욱 소중하고 귀하다.
산을 올라가는 내내 바위마다 이렇게 거뭇거뭇한 무엇인가가 붙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게 대체 뭘까? 죽은 이끼인가?
계속 무심코 지나치다가 어느 순간 자세히 들여다 보게 되었다. 멀리서는 검게 보였던 것이 가까이서 보니 초록빛을 띠고 있다.
여전히 무엇인지 정체를 잘 알 수는 없지만 바위에 붙어 자라는 이끼 종류인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봄이 더뎌 아직은 차디찬 바위. 하지만 그 바위 위에 납작하게 엎드린 채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빛을 빨아들이며 생명력을 유지해가고 있는 식물.
죽은 듯 보였던 이 식물에도 생명은 피어나고 있었다.
산에는 몸을 낮춰 가까이 살펴보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법한 새 생명들이 많이 자라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여기저기서, "나 여기 있어요!" 하고 손을 들며 내 시선을 잡아끄는 식물들.
어찌 이렇게 연한 새순이 이리 아직 시린 땅에 야무지게 자리를 잡고 움트고 있는 것인지.. 그저 놀랍다는 말 밖에는...
땅에 홀로 야무지게 서서 피어나고 있는 생명들이 있는 반면, 바위에 기댄 채 생명을 틔우고 있는 식물들도 있다.
그래, 혼자서 할 수 없다면 기대는 것도 살아가는 한 방법이자 지혜겠지.
무엇인가를 무조건 혼자서, 스스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남에게 의지하고 기대는 적이 거의 없는 나인데, 이 식물을 보니 이렇게 살아갈수도 있구나, 납득이 된다.
모든 것을 혼자 하는 것도 분명 내 인생에 큰 공부가 되겠지만, 때로는 너무 힘들고 벅차고 외로우면 그것들을 내려놓고 주변에 기대는 것도 하나의 현명한 방법이 될 터.
언뜻 보면 가을이라고 느껴지는 낙엽이 수북히 쌓인 곳에 초록 생명들이 피어나고 있다.
마치 땅이 기지개를 켜듯.
어느덧 비봉에 다다랐다.
그 바위에 올라서 정상에 있다는 신라 진흥왕 순수비를 찍고 오고 싶었는데, 그 앞에는 전문장비 없이는, 2인 이상이 아니면 등산할 수 없다는 표지판이 가로막고 있었다.
아.. 내가 갈 수 있는 곳은 여기까지구나.
비봉 앞의 넓은 공터에 서서 잠시 숨을 고른다. 아름답게 피어난 철쭉을 배경으로 셀카도 찍어본다. 아름다운 것들을 많이 보고 올라와서 그런지 오늘따라 표정이 참 좋은 나. 표정 좋은 나를 바라보니 또 기분이 좋아지는 나.
물을 마시려고 고개를 뒤로 젖히는데, 소나무가 만들어 내는 실루엣과 하늘의 대비가 장관이다.
아... 어찌 이렇게 아름다울꼬.
난 산에서 여러 꽃들을 만났다. 처음 보는 꽃들.. 이름을 모르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털이 보송보송한 이 꽃봉오리. 빛을 더 쬐어주면 금방이라도 활짝 꽃망울을 터뜨릴 것 같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 손 대면 톡- 하고 터질것만 같다.
철쭉 역시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모양새다. 꽃망울이 아주 꽉 찼다.
이렇게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꽃망울들은 감히 만지지도 못하겠다. 혹여 손을 잘못 대기라도 해서 꽃을 피우지도 못한 채 식물이 죽을까 두렵기 때문이다.
어떤 '가능성'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 함부로 대해서는 안 된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사람은 누구나 가능성을 가지고 있고, 각각의 내면에 자신만의 힘이 있다. 사람들은 아무리 힘든 환경이 닥쳐 오더라도 그 힘과 가능성으로 살아갈 수 있다.
하지만 막 피어나려고 하는 존재에게 환경이나 사회가 압박을 가한다면 그 꽃을 미처 피어나지도 못한 채 생명을 다할 수도 있다. 그것은 매우 끔찍한 일이다.
작지만, 그래도 안정적으로 피어 있는 생명을 보면 그런 불안감은 줄어든다.
꽃이 꽃봉오리에서 피어나는 과정은 누에고치가 나비가 날아가는 과정과도 같다는 생각을 한다. 그 과정은 많은 힘을 필요로 하고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꽃망울을 터뜨리고 피어난 꽃. 인고의 과정을 거쳐 피어난 꽃은 그 힘으로 어떻게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꿈을 펴기도 전에 짓밟힌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그래서 꽃들을 보면 참 경이롭고 존경스럽다.
그리고 작지만 활짝 핀 생명이 참 아름답다.
바위 틈 사이로 핀 꽃.
꽃들은 어디에서든 피어난다.
양지든, 음지든.. 자신이 뿌리내릴 수 있는, 가장 최적의 장소에 자리를 잡고 피어난다.
나무에 핀 꽃.
달려 있는 모양새를 보면 금방이라도 떨어질것만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 단단하게 붙어있는지.. 아무리 들여다봐도 신기하기만 하다.
문득 겉으로는 무척 우아해 보여도 물 속에서는 재빠르게 발을 놀리고 있는다는 백조가 생각난다. 이 꽃 역시 참 아름답고 화사하게 피어있지만 사실은 그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가지를 붙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보는 것만으로도 기분 좋게 만드는 꽃. 꽃을 보는 사람들은 가식 없는 100% 미소, 'Duchenne smile(듀센 미소)'를 보인다고 한다. 꽃은 사람에게 행복과 웃음을 준다.
작년에 쌓인 수북한 낙엽들 위로 금방 피었다 진, 진달래 잎들이 떨어져 있다.
그러나 떨어진 잎이나 꽃잎들을 보고서는 '죽었다'는 생각은 안 하게 된다. 이렇게 떨어진 낙엽들은 미생물의 작용으로 거름이 되어 제 동료들의 삶의 바탕이 될 것이다.
끊임 없는, 돌고 도는 자연의 순환.
자연에서는 어느 것 하나 불필요 하거나 덜 중요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이 평등하고 공평하다.
말라 있는 듯한 가지에서도 오늘도 새 생명은 움트고 있다.
자연의 놀라움, 경이. 자연이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 그리고 군더더기 없는 소박함과 그 풍성함.
난 오래간만의 등산을 통해 자연을 만났고, 이 자연을 통해 많은 것들을 감상하고 배웠다.
삶에 치이고, 지치고, 피곤해지고, 외로워지고, 우울해지면 난 내 방의 화초들을 들여다보곤 한다. 그리고 눈을 감고 그 향기들을 몸 속 깊이 들이마시면, 난 잠시 다른 곳에 가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식물들이 내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내 마음을 안정되게 해 준다.
자연은 우리에게 축복과 선물 그 자체이다. 자연을 보면 미소 짓게 되고, 미소를 지으면 몸이 건강해진다. 자연 안에 있으면 문제될 것이 하나도 없다.
자연은 내게 에너지와 행복, 기쁨과 충족감을 준다. 자연은 나로 하여금 많은 것들을 사색하게 하고, 그를 통해 삶의 여유와 평화를 얻게 해 준다.
자연은 내 존재 자체를 일깨워준다. 자연 속에 있으면 내가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오늘도 난 자연에게 감사하다.
25 Apr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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