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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의 영국 식민시절, 영국인들의 휴양지였다는 Glen에 가고 있는 길. 산 속을 걷고 있는데 조금씩 내리던 비가 폭우로 변했고.. 산 속에 혼자 있으니 은근히 무서웠다. 아니.. 많이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다시 지붕이 있는 벽돌 피난처로 돌아가야 하나 고민을 하며 계속 산길을 내려가는데... 울타리와 집이 있었던 흔적으로 보이는 폐허를 발견했다. 여기가 Glen(글렌)인가 싶어 굵은 비가 내려 불어난 작은 계곡을 조심스럽게 건너 다가가니.. 지붕은 없었고 그냥 건물의 외관, 대략적인 형태가 어떠했음을 알 수 있는 약간의 벽들들만이 약간 남아 있는 곳이었다. 무슨 표지판도 없고.. 영국인들이 여기에다 집을 지어놓고 휴식을 취했다는건가? 그럼 Glen이 유적지였어? 하는 생각이 들었다. 가지고 갔던 Lonely planet에도 Glen 위치만 나와 있을 뿐 별다른 설명이 없어서 비 오는 숲 속에서 참 난감했다.

 

가방 안에 넣어갔던 보라색 우산을 펼쳐쓰긴 했지만 빗주리가 더욱 굵어져 신발이 다 젖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하지... 다시 어서 산길을 따라 올라가야 하나.. 싶었는데 계곡 옆에 있던 한 '멀쩡한' 건물을 발견하게 되었다. 왠지 그 곳엔 사람이 있을 것 같아, 폭은 좁지만 굵은 비로 불어난 좁은 계곡(사실 계곡이라기보단 시냇물 수준..) 위에 만들어진 짧은 돌다리를 건너 회색의 음침한 그 건물 입구로 다가갔다.

 

"Namaste(나마스떼)." 인기척을 내며 안으로 들어가 보니 음침한 내부에서 서너명의 남자들이 담요를 깔아놓고 카드게임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남자들 옆엔 방금 막 먹고 한쪽 구석으로 치워놓은 듯한 인도 특유의 스테인리스 플레이트, 밥그릇들이 쌓여 있고.. 남자들의 자식들이라기보다.. 일하는 조수들로 보이는 어린 사내 아이들이 있었으며.. 약간의 자욱한.. 담배 연기와 냄새도 느껴졌다. 순간.. 이 곳이 놀음을 하는 곳인가? 싶어.. 괜히 발길을 했나 무섭고 두려웠다.

 

건물 안을 재빠른 눈으로 살펴보니, 건물은 건물을 지었을 당시 시멘트를 발랐던 그대로 아무런 페인트칠도 하지 않았고.. 3개 정도의 방 문이 없는 방들과 함께 몇몇개의 구획을 나누는 낮은 벽들이 있었다. 남자들이 있었던 거실 정도로 보이는 곳과 입구 왼쪽 방엔 발전기로 보이는 듯한 커다란 기계들이 빗소리를 이기려는 듯 윙-윙- 소리를 내며 다소 부산스럽게 돌아가고 있었고.. 남자들 너머로 보이는 작은 구역은 취사 공간으로 쓰이는 듯 했으며, 오른쪽 방은 쌀 등의 식량과 각종 잡동사니, 공구들을 보관하는 창고 같았다.

 

비 오는 깊은 산 속.. 회색 건물.. 남자들.. 카드놀이...... 무서움과 두려움.. 경계심이 밀려왔다. 공포에 떨 만큼은 아니었지만 Shimla(쉼라) 중심가로부터 거의 4km 떨어진 이곳에 있자니.. 혼자 여행하는 입장으로써 무섭긴 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어 Glen이 어디냐고 물으니 한 남자가 벌떡 일어나서, "Glen은 저 아래로 더 내려가야 돼요. 비가 많이 오니 이 곳에서 잠시 쉬었다 비가 그치거든 가요. 지금 움직이면 위험해요. 비가 좀 그치면 내가 안내해 줄게요. stay here." 라며, 인도 특유의.. 인도에서 많이 볼 수 있는 등받이가 있는 플라스틱 의자를 건물 입구 쪽에 친절하게 놔주었다. 아저씨가 입구 쪽에 의자를 놓아준 것은 탁월하고도 고마운 선택이었다. 방 안에 남자들과 함께 있었더라면 좀 민망하기도 하고 더 두려워질 뻔 했다. 짐작대로 이 곳에서 일을 한다는 아저씨는 밥 먹었냐고 물으며 뭘 좀 먹겠냐고 권했는데..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 고맙지만 거절했다. 아저씨는 곧 방 안으로 들어가 다시 카드게임에 합류했다.

 

건물에 발전기 같은 기계가 있는걸로 보아하여.. 아저씨들은 깊은 산 속에서 무엇인가를 관리하는 사람들로 보였다. 근데 이 분들이 일하는 느낌이.. 뭔가 외지고 하찮은 곳에 싼 임금으로 파견된 사람들의 일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아무튼 취사도구도 있고.. 간단한 이불 도구가 있는걸로 보아하니 아저씨들은 이곳에서 숙식하며 일을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친절한 아저씨 덕분에 경계하는 마음이 풀어졌고.. 고맙게도 비를 피하는 중. 경계를 풀고 건물 입구에 있던.. 연신 비에 젖은 털을 세차게 털어대던 살찐 흰 털복숭이 개와 함께 비 내리는 숲 속을 바라보며 잠시나마 감상에 빠질 수 있었다.

 

비가 빨리 멎었으면 좋겠건만.... 간만에 아끼는 Gap 흰 바지를 입고 나왔는데 예상치 못한 비.. 흙탕물이 튀어 바지 뒷부분이 점 투성이가 되었다. 

 

아저씨의 말에 의하면 여기서 2분만 더 가면 Glen이라는데.. Glen은 무슨 건물이 아니고 폭포란다. 무슨 place가 있을 줄 알고 기대했건만... 좀 실망스럽다. 

 

비가 많이 쏟아져 2분 거리의 폭포를 앞에 놔두고 이 곳에 머물러야 해서 마음이 급해진다. 위치만 알면 비가 오더라도 금방 갔다가 호텔로 얼른 돌아가고 싶은데.. 굵은 비로 산 속 흙길들이 많이 물러져 발이 푹푹 패이는 상황에서 혼자 움직이는 것이 정말 위험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 정말 때론 여유를 부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난 왜 이렇게 조급한 것일까.)

 

근데 여기까지 오는 길에 든 생각은.. 항상 난 목표 지점만 생각한다는 것이다. 여기까지 오는 과정도, 길도 상당히 멋있고, 그 자체로 즐길만한데 항상 목표물 생각만 하기에 내가 뭘 보고 있는지, 뭘 지나쳤는지 모른다. 좀 마음의 여유를 갖고 즐길 필요가 있는데... 앞으로는 삶의 모든 과정 과정을 스트레스라고 여기지 말고 즐겼으면 좋겠다.

 

이상하게도 Chandigarh의 High court를 즐겁고 놀라운 마음으로 둘러보면서 든 생각은, 한국에 돌아가면 남은 피아노 학부 과정을 아쉬워하며 공부를 열심히 할 수 있고, 피아노 공부를 더 하면서 전문 연주자가 되어 유럽 순회 공연도 하면서 세계 곳곳의 이런 멋진 도시들을 감상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나의 스승님이이 떠올랐다. 신사동에 개인의 멋진 스튜디오를 가지고 연습도 하고, 학생들도 가르치고, 잦은 외국 순회공연을 하시니 이런 선생님이 부럽고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그렇지만 연주는.. 연습이라는 큰 희생과 대가를 필요로 한다. 이 시점에서 과연 나는 그런 희생과 대가를 치를만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모르겠다. 해봐야 알겠다. 여행 내내 드는 생각은 학창시절(중.고등학교 시절)에 왜 공부를 대충대충 소홀히 했냐는 것이다. 다시 돌아간다면 지금과 같은 심정으로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세계 최고의 대학, high society의 친구들을 경험할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그나저나 Shimla... 호텔이 마음에 안 들어서인지 심라라는 도시를 빨리 뜨고 싶어 얼른 이곳저곳 구경할 생각에 마음이 급한데 비가 그칠 기미가 안 보인다. 오전엔 Glen을 구경하고 오후엔 다른 곳을 구경하고 싶었는데 말이다. 나에게 휴식이 필요한걸까? 비야 그쳐다오!! 힝~ 어느새 호텔 check out 시간인 12시가 넘었다... 오늘 호텔을 옮기는 일은 물 건너갔다...

 

왜 자꾸 과자나 햄버거, 피자, 파스타 등등 고칼로리 음식이 먹고 싶은지 모르겠다. Gap 바지가 삼시 세 끼를 너무나도 잘 챙겨먹은 Sri Lanka(스리랑카)의 Ella(엘라)에서는 헐렁였는데.. 인도에 오니 이상하게 덜 헐렁거린다. 몸의 호르몬 변화 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최근의 내 식습관은 탄산음료, Slice 망고주스... 저녁 먹고 바로 눕는 것, 바로 자는 것 등.. 좋지 않았던 것이 사실. 거울을 보면 얼굴이 부은 것인지 살이 찐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신경이 쓰인다. 항상 부은 듯 보이는 다리도 그러고 보면 살이 찐 것이 아닌가 싶다. 저녁에는 이제 과일과 물만 먹어야지.

 

그나저나 Dharamsala(다람살라)에도 비가 엄청 온다던데... 몬순이 좀 지나갈 때까지 다람살라에 바로 가지 말고.. Rekong Peo(레꽁 뾔)나 Sangla(상글라)를 거쳐 Manali(마날리)에 가는 것이 좋을까? Lonely planet을 보니 레꽁 뾔와 상글라가 있는 쪽은 Kinnaur Valley(낀나우르 계곡) 지역으로.. 산악 풍경이 Himachal Pradesh 동부 최고이며.. 사과 나무 꽃이 활찍 피는 시골 지역이란다. 이곳 사람들은 낀나우리 혹은 낀네르라 불리는, 주로 농사를 짓거나 사과를 재배하는 긍지 높은 아리아인이라던데.. 초록색 펠트 모자 테빵(thepang)을 쓴 이들의 모습을 보며 인도에서의 또 다른 모습을 발견하고 싶고, 무엇보다 인도의 시골지역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에 낀나우르 계곡으로의 여행도 교통편과 일정을 고려해보며 심각하게 고민 중이다.

 

그나저나 H 언니, T, Q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 같은 Shimla에 있는 것은 아닐까? 

 

 

빗줄기가 좀 약해졌다! 얼른 Glen fall에 가야지!!

 

아까 그 친절했던 아저씨는 까만색 커다란 장우산을 가지고 나와 앞장 서신다. Glen까지 안내해 주시겠단다.

 

아저씨는 앞장서서 가는 내내 계속 뒤를 돌아다보며 내가 잘 오고 있는지 안전을 챙겨 주셨다. 그러면서 자신의 이야기를 하셨는데.. 아저씨는 이곳에서 일을 하며 몇 달씩 집에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집은 히마찰 프라데시의 어딘가라고 했는데 기억이 잘 안 난다.. Dehra dun이라고 했던가.. 아무튼 이곳에서 저렴한 교통편을 타고 가려면 하루나 이틀 정도는 걸리는 거리였다. 아저씨는 집에 나만한 딸이 있다고 말하며 자랑스러운 듯 이야기 했는데, 자상한 가장으로 보여 아저씨가 더욱 믿음이 가고 함께 가는 내내 안심이 되었다.

 

 

 

 

드디어 현지인 아저씨의 도움으로 Glen fall에 도착!

 

 

처음엔 내 눈높이로만 보고 '아.. 폭포에 왔구나' 했는데, 눈을 들어 위를 보는 순간!

 

 

 

 

와!! 정말 높은 곳에서 폭포가 떨어지는데.. 너무 위협적이지도 않으면서 정말 장관인 모습에... 정말 숨이 멎을 것만 같았다. 사람들이 흔히 멋진 풍경을 보면 '숨이 멎을듯한 아름다움'이라고 표현을 하곤 하는데.. 그 숨이 멎는다는 표현이 무엇인지 이날 경험한 것 같다. 아저씨가 옆에 있어서 그 숨이 멎는 소리를 속으로 삼켜야 했지만 말이다.

 

 

 

 

 

글렌 폭포는 보통 '폭포' 하면 떠올리게 되는, 위에서부터 물이 콸콸 쏟아지는 이미지와는 달리 가늘고 단아(?)하지만 사진 한 컷으로 다 잡히지 않는.. 길이가 참 긴 폭포였다. 뭔가 여성스럽고 섬세하달까.. 하지만 정말 장대하게 느껴지는 놀라온 폭포..

 

정말 놀랍다는 말 밖에는 달리 할 말이 없다... 비만 안 오고, 날 좋고 화창하면 이 곳은 산 속이라 시원하고 피크닉 장소로 딱이다 싶었다. 직접 와보니 왜 이 곳이 영국인들의 휴양지였는지 알겠다. 영국인들이 물러간 지금은.. 날 좋은 날 인도인들이 가족들과 함께 도시락을 싸서 들고 찾아오기에 참 좋은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카메라를 들고 열심히 폭포 사진을 찍어봤다. 폭포가 떨어지는 윗부분을 찍으려고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다보면.. 떨어지는 물줄기가 비 같이 내 얼굴로 떨어졌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찍히지 않았던 폭포의 아름다움. 보는 것이 역시 최고다. 자연의 장관은 도저히 사진으로는 찍히지 않는다. 아니, 찍을 수 없다.

 

난 열심히 폭포를 감상하며 사진을 찍었고, 아저씨는 그런 내가 서두르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폭포를 감상할 수 있도록 곁에서 말 없이 지켜봐 주었다.

 

 

 

 

Himachal Tourism에서 친절하게 Glen fall에 대한 설명판도 세워 두었다. 어떻게 이런 깊은 곳까지 관광청의 손길이 미칠 수 있는지.. 자연을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히마찰 곳곳의 멋진 곳들을 알리려는 히마찰 관광청의 노력이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쉼라 중심가로부터 4km나 떨어진 이 곳까지 걸어오는 길이 그리 고생스럽진 않았지만 예상치 못한 비를 만나 길도 좋지 못하고.. 이 Glen 하나를 보느라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었다는 생각에.. 폭포를 만나기 전까지는 여기에 괜히 왔나 살짝 후회스럽기도 했지만, 이 아름다운 Glen fall에 올 수 있도록 길을 안내해 준 아저씨가 참 감사했고, Glen을 알 수 있도록 해 준 Lonely planet과 Himachal Tourism에게 정말 감사!! ^^

 

Shimla(심라)를 찾는 이들에게 Glen fall(글렌 폭포)에 꼭!! 가보기를 반드시 권하고 싶다!

 

 

난 아저씨에게 재차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짧은 돌다리를 건너 다시 회색 건물로 들어가는 아저씨가 내게 잘 가라며 손을 흔들었다.

 

참 친절했던 인도인 아저씨. 낯선 이방인에게 아무 댓가도 바라지 않는 친절을 베풀어 준 이 아저씨와 내 생애 언제 또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섭섭함과 아쉬움의 마음을 한가득 안고 다시 산길을 올라 심라 중심가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11 Aug 2010

 


 

혼자서 숲 속에 있는 두려움

 

(글을 쓰고 있는 시점인 2011년 11월 요즈음, 동생과 얼마 전에 이런 대화를 나누었다. 지난 수요일 밤에 동생과 베이킹 데코와 포장을 하고 있는데 동생이 으슬으슬 춥다며 열이 나는 것 같다고 했다. 난 얼른 따뜻한 것을 먹고 쉬고 하라고 물을 끓여줬고 동생은 우유 스팀을 내어 루이보스티로 밀크티를 만들어 마셨다. 그랬더니 동생이 이내 몸이 따뜻해졌다며 더워지려고 한다고 했다. 그래서 덥다고 당장 옷을 벗지 말라고 하며.. 무용수들이 연습 후 몸에서 열이 급격하게 식는 것을 막기 위해 더워도 오히려 옷을 껴입는다는 것과.. 산 속에서 조난당했을 때 밤에 춥다고 맨손 체조를 해서 땀을 낸 사람이.. 그 땀이 급격히 식는 바람에 동사했다는 이야기를 해주게 되었다. 그러면서 Glen 가는 길.. 비 오는 산 속에 혼자 있어 참 두려웠던 이 경험 또한 이야기 하며.. 친구가 있는 상태도 아니었고 혼자 여행하고 있는 상태에서 산 속에서 길을 잃었더라면 정말 아찔할 뻔했다고 했다. 사실 이렇게 혼자 겁 없이 여행을 하다가 사고나 조난을 당하여 실종 또는 사망하는 여행자들도 많다고 들었다. 나는 무사하게 여행을 마쳤기에 망정이지.. 정말 아찔할 뻔 했던 경험이었다. 아무튼 산 속에 혼자 있을 때의 그 두려움... 온갖 생명체들이 살아있다는 것이 너무나도 생생하게 느껴지는 대자연 속에서 혼자였던 두려움에 대하여 이야기하자 동생은, "그래서 인간이 숲을 밀고 도시를 만들었나봐. 그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에." 라고 했다. 정말 의미심장하면서도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