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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심라에서의 둘째 날 

 

 

Shimla(심라)의 the Mall road를 따라 멋진 건축물들을 구경하며 발 가는대로 걷다 보니 Glen 표지판이 보이는 곳까지 오게 되었다. (위 사진 속 건물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Glen 표지판이 있음.)

 

Glen은 지도상으로 내가 있는 호텔에서 좀 먼 위치에 있었는데 안내 표지판을 만나자 왠지 금방 갈 수 있을것만 같았고.. 지금 이곳까지 온 김에 Glen을 안 가면 나중엔 귀찮다고 오지 않을 확률도 높으므로 미루지 말고 여기까지 온 김에 그냥 가보기로 했다. 게다가 그 곳은 인도의 영국 식민시절 때 영국인들의 휴양지였다고도 하니 어떤 곳인지 더더욱 궁금한 마음이 들기도 해서 가게 되었다.

 

 

Glen으로 가는 길에도 역시 Secretariat 등 영국식의 많은 건축물들이 내 눈길을 사로잡았다. 

 

중심가에서 좀 멀어지자 건축물들이 사라지고 초록의 Annandale(아난데일) 초원이 나타났다. 초록의 자연.. 안개 속 나무들이 자아내는 그윽한 피톤치드 향으로 좋은 공기를 마시며 산책하듯 걸으니 발걸음도 가볍고 마음이 즐거워졌다.

 

얼마간 걷다 보니 산 속 언덕에 대저택을 연상시키는 듯한 멋진 건물이 나타났다. 누군가 산다고 하기엔 너무 외딴 곳에 있어 별장인가? 싶었는데 리무진을 타고 손님들이 속속들히 도착하는 것을 봐서.. 정말로 부잣집 연회장이거나 아주 고급인 레스토랑인 것 같았다. 인도 부자들은 스케일이 다르다니까.

 

Annandale 초원을 옆에 끼고 걷는 길은 계속 완만한 내리막길이어서 전혀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인적이 참 드물었다. 가끔씩 차들이 저 아래 어디에선가 굽이굽이 산길을 올라와 내 옆을 스쳐 지나갈 뿐이었다. 그런데 공기가 워낙 좋은 곳이라 그런지 차들이 내뿜는 매연이 참 거슬렸다. 하지만 울창한 나무들이 하늘을 찌를 듯 솟아 있는 초원을 보면 위대한 자연의 힘이 느껴져, "이까짓것 매연 조금 정도야 뭐." 하는 생각이 들기까지 했다. '나 하나쯤이야.' 하는 마음이 모이고 모이면 상상하기조차 싫은 엄청난 환경오염을 불러 일으키긴 하지만, 차 한 대의 매연을 거뜬히 이길만한 자연의 웅장함과 생명력을 느꼈던 것이다.

 

가끔씩 지나가는 차보다 더 반가운 것은 지나가는 사람이었다. 아직까진 초원 옆으로 잘 닦인 도로가 있긴 하지만, 혼자 산길을 걷는 것은 아무래도 무서웠기 때문이다. 저 멀리서부터 인도인 아저씨가 걸어오는 것을 보자 혼자가 아니라는 안도감과 함께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저씨와 가까이 마주치게 되자 "Namate(나마스떼)!"하고 손을 모아 인사하니, 아저씨의 계속 굳어 있던 얼굴 표정이 갑자기 백만불짜리 미소로 바뀌고 아저씨 역시 나의 인사에 기분 좋게 응답해 주었다. 그 미소에 나 또한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음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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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걸은지 30분이 훌쩍 지났다. Glen은 Shimla 중심가인 the Ridge(리지)에서부터 약 4km 떨어져 있는 곳이라 걸어가기에는 거리가 꽤 되기도 했고.. 가는 길은 관광객들은 커녕 현지인들도 잘 안 보이는 인적도 드문 곳이었기에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이 바른 길인지 살짝 걱정도 되었다.

 

Glen이 과연 어디일까, 지나가는 사람이 있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을 즈음.. 갑자기 도로의 커브가 급해지면서 분위기가 바뀌는 곳이 나타났고.. 그곳엔 'Himachal Tourism' 로고와 함께 Glen으로 가는 방향과 앞으로 남은 km가 표시되어 있었다.

 

 

 

 

히마찰 관광청은 혹시 여행자들이 길을 잃을새라 Glen으로 가는 길을 어찌나 잘 표시해 두었는지.. 딱 적당한 위치에 서 있는 안내 표지판 덕분에 걱정과 염려를 덜 수 있었다. Himachal Pradesh(히마찰 프라데시 주)는 Tourism system이 참 잘 되어 있는 곳이었다. (Himachal Pradesh - 히마찰 프라데시 주(州). 내가 여행하고 있는 Shimla를 주도(主都)로 하고 있는 인도 북서부의 한 state다. 사실 pradesh 자체가 state란 뜻이다. Himachal Tourism은 히마찰에 속한 지역들에 관한 안내책자와 길 안내 표지판을 적재적소에 잘 배치해 두고 있어, Shimla 이후 다른 히마찰 지역을 여행할 때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로고를 누가 만들었는지.. 로고부터가 참 정감이 간다.)

 

아무튼 커브가 심한 길의 정 중앙엔 Glen으로 향하는 산길과 함께 회색 벽돌로 지어진.. 지붕이 있는 피신처..? 같은 곳이 있었다. 이 벽돌 피난처는 산 속에서 갑작스레 만난 비를 피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으로 보였고.. 심라 중심가와 Glen을 오가면서 쉬어가기에 딱 적당한 지점에 있었다.

 

나는 얼른 Glen에 도착하고 싶어서 이 곳에서 쉬어가지 않고 산길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Glen은 Shimla(해발 2,397m)보다 해발고도가 낮은 1,830m에 위치해 있으므로 내리막 길이 당연하다.)

 

산길 초입에서 한 젊은 인도인 커플을 만났다. 둘이 막 뛰어다니며 마냥 즐거워 하던데.. 참 부러운 커플이었다. 커플을 애써 무시하며, 오래간만에 산에 와서 나무 냄새도 맡고 흙을 만나서 좋아진 내 기분에 집중하려 애썼다. (실제로 기분이 좋았다!)

 

 

 

 

산은 계속 내리막길. 길은 이제 흙길이 아닌 잘 닦인 포장길과 자갈이 가득한 좁은 길이었다. 사람들이 Glen에 가기 쉽도록 관광청에서 깔아놓은 돌인 모양이었다. 그런데 저 멀리서 청년들의 떠드는 목소리가 들렸다. 괜히 좀 무서웠다. 약간 긴장하며 내 갈 길을 가려는데, 아니나 다를까. 호기심 많은 인도 남자 청소년들이 내게 "hey~! where are you going?" 하며 말을 걸어온다. Glen에 다녀오는 길인지.. 이들은 산을 올라오다가 산 중턱 나무 그루터기 근처에서 자기네들끼리 무엇인가를 하며 신났는데.. 우리나라 청소년들만큼이나 인도 청소년들의 기(氣)도 참 대단하게 느껴졌다.

대꾸를 할 마음의 여유가 없어 그들을 애써 무시하고 그대로 지나쳤다.

 

산 속으로 접어들자 비가 조금씩 내리기 시작했다. 아.. 제발 비가 이대로 멎어야 할텐데... 빗줄기가 굵어지는 것 같다. 하늘을 보니 구름이 까만 것이.. 날씨가 심상치가 않다.

 

(to be continued...)

 

11 Aug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