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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 Day 14 : 반다라웰라(Bandarawela)로의 나들이 / 엘라(Ella)에서 가슴 아픈 이별 경험
Olivia올리비아 2021. 11. 13. 22:14
Q가 여전히 누워 있다.
감기 몸살이 지독하게도 걸렸나보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어제나 오늘 Hikkaduwa(히카두와)에 가서
스쿠버 다이빙을 했어야 하는 Q인데.. 이리 아파서 어쩌나...
스리랑카 공항에 도착해서 스쿠버 다이빙을 할거라며
ATM에서 돈을 얼마를 뽑아야 할지 고민이라고 이야기했던 Q의 웃음 가득한 얼굴이 떠올랐다.
Q가 아프니 관광을 하러 가는 것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우린 어디 놀러갈 생각은 못하고..
스리랑카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ATM에서 돈을 뽑았지만
점점 지갑이 가벼워져감을 느낀 나와 H, T는
기차를 타고 Ella(엘라)에서 한 30분 거리인 Bandarawela(반다라웰라)에 다녀오기로 했다.
Q 혼자 두고 다녀온다는 사실이 마음에 좀 걸렸지만
은행에 꼭 가야 했었으므로 어쩔 수 없이 '읍내'에 다녀오기로 했다.
엘라 기차역에 가보니 많은 외국인 관광객이 있었다.
동양인들은 우리밖에 없었고, 대부분이 서양인 여행자들이었다.
참 신기했던 것은 German으로 보였던 두 아가씨가
커다란 가방을 메고 '치마'를 입고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
여행을 할 때에는 패션도 패션이지만 편한 옷이 최고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나는
기차에 오르락 내리락, 버스에 오르락 내리락 할때 불편하지 않나? 하는 생각부터 들었다.
whatever, 본인 취향이니까~
기차가 살짝 연착되어 도착하였다.
우린 3등석칸을 끊었지만 우연히 오른 칸이 view가 훌륭하고 좌석이 편안한 1등석 칸이었다.
1등석 칸은 기차의 맨 끝쪽에 있어서 열차 한 면이 커다란 유리창으로 되어 있었고
승객들은 열차의 진행 반향과 반대 방향으로 앉아서
그 유리창으로 열차가 지나온 풍경들을 시원하게 감상할 수 있었다.
와~ 3등석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었는데,
폭신한 쿠션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서
사방으로 뚫린 유리창으로 스리랑카의 아름다운 초록의 자연을 보며 달리고 있자니
돈이 좋긴 좋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차창에 부딪치는 스리랑카의 싱그러운 식물들을 감상하고 있는데
갑자기 차창에 붙어 있는 작은 곤충이 내 눈에 들어왔다.
열차가 빠른 속도로 달리고 있는데도
그 작은 생명은 자신의 온 힘을 다해 그 창문에 붙어 있었다.
와.. 다리 힘이 센건가.. 아님 오히려 열차의 속도와 공기의 압력에 의해 붙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일까...
한참을 쳐다봐도 그 생명은 끝까지 그렇게 붙어 있었다.
살려는 의지일까.. 아님 그냥 그렇게 잠시 앉아 휴식을 취했던 것일까...
그렇게 곤충 삼매경에 빠져있는데 오래 지나지 않아 벌써 반다라웰라에 도착했다.
결국 우린 반다라웰라에 도착하도록 표를 검사하는 검표원이 없어서
3등석 값을 지불하고 1등석에 편안하게 앉아서 왔다(검표원을 만나면 3등석과 1등석 차액을 지불할 생각이었는데).
반다라웰라는 사람 북적이는, 없는게 없는 도시였다.
food city(푸드 시티)도 있고, 은행도 있고, 사진을 현상할 수 있는 Fuji Film도 있고...
각종 레스토랑, 상점, 종교 사원 등 작은 도시 안에 모든 것들이 존재하는 곳이었다.
일단 국제 현금카드를 쓸 수 있는 ATM을 찾았다.
조금 걷다 보니 people's bank가 나타나 그곳에서 돈을 찾았다.
여행을 하는 내내 city bank 현금카드로 돈을 뽑을 때마다 좀 긴장이 되었다.
혹시나 마그네틱이 손상 되었으면 어쩌나,
혹시 비밀번호를 잊었으면 어쩌지?
혹시 비밀번호를 입력하다 오류가 나면 어쩌지?
혹시 6자리 비밀번호를 요구하는 기계가 나타나면 어쩌지?
돈을 찾는 내내 나를 훔쳐보고 내 돈을 노리는 사람이 있으면 어쩌지?
하는 갖가지 생각들이 정말 많이 들었었다.
그런데 정말 감사하게도 스리랑카와 인도를 여행하면서
한번도 도난 사고를 당한 적이 없었다.
참 다행이고 감사했었다.
현금을 찾고서는 은행을 찾으러 가는 길에 봤던 어떤 multi 상점에 가보기로 했다.
가는 길에 어떤 무슬림 여행을 만났는데
서툰 영어로 내게 말을 걸어왔다.
보통 스리랑카 여인들은 수줍음이 많아서 잘 다가오지 않는데
이 여성은 참 적극적으로 다가와 내게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이것저것 물어보고 호기심을 보여서 참 반갑고 고마웠었다:)
뭔가를 더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눈치였지만
언어의 한계로 이야기를 못하는 것이 보여서 참 안타까웠다.
그냥 우린 말 없이 함께 걸었다.
함께 걸으며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함께 웃었다.
난 그냥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고,
내가 지금 이순간 스리랑칸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지 않았다.
미소가 아름다웠던 그 여인과 헤어지고 multi 상점에 들어갔다.
그 상점은 화장품 가게도 있고, 옷가게도 있고, 장난감 가게도 있고,
옥상층에는 스리랑카 음식과 서양식 음식과 아이스크림 등 다양한 음식을 파는 food court도 있었다.
그냥 이것저것 구경을 했는데
확실히 좀 큰 도시라 그런지 옷 스타일이 스리랑카 현지인 스타일이라기보다
global하고 standard한 옷들이 많았다.
간간히 한국 스타일의 옷들도 보여서 저렴하면 구입하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는데,
여행 초반이라 아직 해진 옷도 없었고
안그래도 무거운 배낭인데 더 짐을 늘리기 싫어서 그냥 눈길 장보기로 만족하였다.
이곳을 나오는 길에 상점 옆의 재래시장을 만났다.
역시.. 건물로 갖춰진 쇼핑 장소보다는 난 이런 바깥 시장이 아직까지 더 정겹다.
생닭도 팔고, 마늘, 생강, 상추 등 갖가지 채소들도 많이 팔고 있었다.
닭은 본 H가 오늘 닭백숙을 해먹을까? 하고 제안을 하였다.
난 고기를 일절 안 먹는지라... 먹는 것을 반대하진 않겠지만 난 안 먹겠다고 했다.
아마 H, T, Q만 먹겠지~
Q가 몸이 아프니 원기 보충도 시켜줄 겸 우린 돌아가는 길에 닭을 사기로 했다.
이왕 이렇게 나온 김에 시내 구경 좀 하자하여 우린 여기저기를 돌아다녔다.
역 근처의 food city에 가서 스리랑카의 이런저런 식재료들과 공산품들을 구경하였다.
H는 이곳에서 스리랑카에서만 살 수 있는 향신료를 몇가지 구입하였다.
푸드 시티를 나와서 걷다보니 이동식 car bakery를 발견하였다.
우와! 신기하다!
우리나라도 닭이나 대게 등을 이렇게 이동식 트럭에서 판매하는데
베이커리가 발달한 스리랑카에서는 이렇게 빵도 이동식 스낵카로 판매하는구나~
완전 신기신기~~
이런 것이 여행의 묘미다.
타문화를 접하면서 발견하게 되는 새로운 것들은
나의 고정관념을 깨고 나의 머리를 자극하여 새로운 상상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뭔가 나를 두르고 있던 울타리가 '탁!' 하고 깨져서 새롭게 되는 느낌~
요런 느낌 참 좋다! ㅎㅎ
아주 낯선 것도 아니지만 내가 기존에 알고 있던 것에서 약간 변형되거나
어떤 것과 어떤 것이 결합된 것을 만났을 때의 그 신선함이란!
여행이 내게 주는 선물.
여행이 내게 참 많은 것들을 가르쳐주고
이를 통해 난 많이 배우고 성장한다.
조금 더 걷다 보니 한 베이커리의 쇼윈도가 눈에 들어왔다.
갖가지 모양의 빵들이 있었는데
눈에 확 들어왔던 것든 악어 모양으로 만든 빵.
그 빵은 빵을 성형하여 가위집을 내어 악어 등살을 잘 표현한 것이었는데,
와~ 이런 디테일로 빵을 만들 수 있다니...
카메라를 하필 안 가져와서 낭패다~
눈을 체리로 장식한 것이 언뜻 보면 징그러우면서도
또 귀여워 보이기도 하고...ㅎㅎ
점심 시간이 다가와 마침 출출했던 우리는 식사도 파는 이 곳에서 점심을 먹을까 했는데
vegetarian을 위한 meal을 안 팔아서 결국 앉았다가 그냥 나왔다.
사실 T랑 H는 고기를 먹었지만 나 때문에 순전히 다시 나온 것.
살짝 미안해졌다.
이런 것이 참 vegetarian의 비애랄까...
내가 고기를 안 먹는 사실을 아는 나를 잘 아는 사람들은 음식을 먹을때 '배려'를 해주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간혹 나를 이해하지 못하기도 한다.
"어떻게 고기를 안 먹고 사세요?"
"고기를 먹어야 튼튼해지지!"
"고기 없이 무슨 낙으로 사노~"
별의 별 말들을 다 한다.
음... 고기 없이도 잘 살고 있습니다만...
고기 아닌 것들로도 얼마든지 맛있는 식사도 가능하고!
사실 고기를 무슨 맛으로 먹는지 모르겠다.
내게 고기는 씹히는 질감 그 이상으로 안 느껴진다.
맛이 안 느껴진다.
그리고 그 역한 냄새가 정말 싫다.
아무튼.. 다시 시내를 걷다가 우린 결국 multi 상점의 food court에 가서 점심을 먹었다.
veg. curry&rice를 시켰는데 음식이 참 정성스럽게 나왔다.
나무로 짠 바구니 위에 바나나 잎을 얹고
그 위에 밥과 갖가지 스리랑카식 채소 반찬들이 얹어져 나왔다.
그 중 초록색 시금치 같았던 나물이 참 맛있어서
조금 더 주실 수 있냐 하니 더 주시기까지 했다.
그런데 결국 다른 반찬들과 밥이 많이 남았다.
스리랑카의 커리 앤 라이스는 양이 정말 많아서 내게는 혼자 다 먹기가 벅찼다.
음.. 음식을 남기고 싶지는 않지만
항상 소화 문제로 고생하는 나에게 음식 폭력을 가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남겼다.
그리고 친구들과의 이별이 서서히 다가와서 그런지
소화가 잘 안 되고 머리가 아팠다.
인도에서는 항상 소화가 안 되고 아파서 밥을 잘 못 먹던 내가
스리랑카 와서는 때가 되면 배도 고프고 그런 탓에 음식도 신기하리만치 잘 먹어서
몸이 다 나았나 싶었었는데.. 또 다시 몸이 슬슬 아파옴을 느꼈다.
역시 음식을 먹는 데에는 마음 문제가 큰 것 같다.
지금까지는 '사랑받는 느낌'에 마음이 참 충만해서 그랬는지
뭘 먹어도 맛있고 식욕도 돌고 그랬었는데
헤어질 때가 다가오니 마음이 참... 싱숭했던 것이다.
점심을 먹고 나니 기차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근처 재래시장에서 마늘과 상추를 샀다.
스리랑카는 상추는 저렴한데 마늘이나 생강류가 좀 비쌌다.
돼지고기를 구워 먹을까, 닭백숙을 해먹을까 고민하던 H와 T는 결국 닭을 샀다.
대형 마트에서 부위별로 파는 닭 가격은 우리나라와 비슷했다.
부위별로도 나눠팔고, 통째로도 파는 재래시장의 닭이 훨씬 저렴했는데
H와 T는 뭔가.. 냉장시설이 제대로 안 갖춰져 있어
비위생적으로 보이는 시장에서 닭을 사고 싶진 않았나 보다.
돌아가는 길에도 기차가 살짝 연착되어 우린 역 안에 있는 ladies waiting room에서 기다렸다.
인도나 스리랑카가 참 좋은 것이 역에 이렇게 별도의 waiting room, retiring room이 있다는 사실이다.
남성, 여성으로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여성들은 이 곳에서 정말 편하게 쉴 수 있다.
스리랑카는 나라가 작아서 기차를 타도 가장 긴 구간이 8~9시간에 불과한데
인도는 유럽을 다 집어넣을 수 있을 정도로 크나큰 나라라서 끝에서 끝까지 가려면 한 3일은 걸린다.
인도에서는 한번 이동했다 하면 몇박 몇일을 가야 하기 때문에
waiting room에 보통 샤워시설이나 화장실도 같이 딸려 있지만,
나라 규모가 훨씬 작은 스리랑카의 waiting room 안엔 테이블과 의자로 간단한 시설만 갖춰져 있는 것이 차이점이다.
기차를 타고 엘라로 돌아가는데 이번에는 표를 끊은 그대로
3등석 칸에 앉아서 갔다.
북적북적.
많은 스리랑칸들이 타고 있었는데
역시나 우리가 외국인이라서 아무래도 눈에 좀 띤다.
우리를 흘끗흘끗 쳐다보던 어떤 한 남자가 우리에게 말을 건다.
어디서 왔냐, 이름이 뭐냐.. 통상적인 질문을 한다.
그러다가 이 남자가 서툴게 한국말을 내뱉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랐는데 계속 듣다 보니 한국말이었던 것이다.
알고 보니 이 남자, 한국에서 비즈니스를 했었단다.
부산인가, 대구인가.. 아무튼 지방에서 일을 했었고 그래서인지 한국말도 약간 사투리, 지방어를 배웠던데...
한국말도 하고 해서 반가운 사람이었지만.. 엘라 근처에 자기 사무실이 있다고 놀러 오라는데..
뭔가 느낌이 좋지는 않았다.
여행 상품을 팔려 한다던가 자기 회사 제품을 팔려는 의도가 아니었나 싶다.
사실 Haputale(하푸탈레)에 도착해서 숙소를 찾고 있을 때에도
대구였던가? 그곳에서 잠시 살았다는 스리랑카 남자를 만났었다.
한국어가 꽤 유창했었는데 우리가 숙소를 찾고 있다고 하니 이곳, 저곳을 안내해 주었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숙소 찾는 데에 어려움을 겪고 있어서 어쩌냐며 안타까워 하던 좋은 사람이었는데..
엘라에서는 또 이런 사람들 만나다니...
이곳도 결국 사람 사는지라, 이런 사람도 있고 저런 사람도 있는가 보다.
.
.
.
숙소에 돌아와보니 Q가 책을 읽고 있었다.
그래도 일어나 앉아 있는 것을 보니 몸이 좀 나아졌나보다.
점심도 굶었을텐데.. 뭘 먹었냐고 물어보니
라면 사다가 부엌에서 뽀글이를 해 먹었단다.
그래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부엌에서 냄비도 쓸 수 있고 한데 왜 굳이 봉지라면을 먹었냐는 H의 말에
아!! 정말 왜 그랬을까! 안타까움이...^^;
아무튼 뭘 먹었다고는 하지만 Q에게는 영양 보충이 필요했다.
반다라웰라를 다녀오면서 기차역에서 Colombo(콜롬보)로 가는 시간을 알아왔었다.
H, T, Q는 스리랑카 출국 날짜가 내일 모레였기 때문에
적어도 내일은 콜롬보에 있어야 했다.
그런데 엘라에서 콜롬보까지 가려면 기차로 8~9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기차는 오늘 저녁 7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있고,
내일 아침 새벽 6시에 있었는데..
만약 내일 떠나게 되면 아무리 아침 일찍 떠난다고 해도 콜롬보에 도착하면 오후 시간이다.
숙소를 잡고나면.. 콜롬보는 돌아보지도 못하고
다음날 아침 비행기로 출국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오늘 콜롬보로 떠나자니 밤시간에 이동을 하는지라 시간이 더 경제적이긴 한데
다음날 새벽 4시 정도.. 너무 이른 새벽에 도착하기에 시간이 좀 애매하긴 한데..
아무튼 Q의 의견을 물어보니 오늘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하여..
그 셋이 갑자기 오늘 저녁에 떠나게 되었다.
하푸탈레에 있을 때부터 이별할 것을 예상을 해왔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저녁에 떠난다고 하니.. 갑자기 섭섭함과 아쉬움이 밀려왔다.
시간은 어느덧 4시고..
닭을 푹 삶아 먹으려면 지금부터 요리를 시작해야 했다.
Q는 마늘을 까고.. H는 부엌에 가서 닭을 씻는데...
도와주고는 싶지만 닭냄새를 못 맡는 나는 나중에 돌아와서 밥을 하겠노라고 말하고
답답한 마음에 잠시 산책을 다녀오겠다고 했다.
갑자기 떠나는 친구들 때문에 산책이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산책을 가겠다고 하니 더는 묻지 않고 잘 다녀오라고 말하는 H..
나의 섭섭한 마음이 전해졌나 보다.
마을을 천천히 걷다가 우체국 골목으로 들어섰다.
길을 걷다가 오른편에 'Sun top guest INN' 이라는 게스트 하우스가 보였다.
어차피 친구들이 떠나면 지금 숙소에 혼자 묵기에는 너무 크고..
무엇보다 지금 묵고 있는 숙소 주인이 마음에 들지 않으니 옮겨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찰나였다.
Sun top guest INN은 가정집 분위기의 게스트 하우스였다.
아니, 가정집인데 게스트 하우스로 운영을 하고 있다는 표현이 맞을까...
아무튼 그 곳에 들어가 주인을 만나서 2층에 있는 화장실이 딸린 깔끔한 방을 봤다.
하루 방값을 Rs.800 (한화 약 8,000원 정도)를 불렀는데
Rs.600 가능하냐고 물으니 처음엔 곤란한 표정을 짓다가
자신의 남편에게 전화해서 알아보겠다고 남편에게 전화를 걸더니 Rs.650 가 어떻겠냐고 했다.
깨끗한 침대도 마음에 들고 전망이 탁 트인 2층 테라스의 거실도 마음에 들고 하여 난 OK 했다.
내일 짐을 가지고 와서 오전 중에 체크인을 하겠다고 이야기를 하자,
주인이 혼자 여행 중이냐고 물으면서 이 곳에서 머물면 가족처럼 정말 잘 대해주겠다고 친절하게 이야기했다.
근데 순간 그게 너무 고마웠다.
당장 오늘 저녁 친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마당에 있는데..
그 여주인이 가족처럼 나를 케어해 주겠다고 하는 말을 듣자 그 말이 어찌나 고맙던지..
따뜻함이 느껴졌다.
이 낯선 도시에서 갑자기 혼자 남게 될 것이 두려웠었는데..
이런 따뜻하고 친절한 사람을 만나니 참 감동이었다.
이렇게 약간은 든든해진 마음으로 거리를 좀 걷다
밥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숙소로 들어갔다.
친구들이 벌써 밥을 해 놓고 상추를 씻고 있었다.
난 고기를 안 먹으니 내가 먹을 반찬으로 채소 볶음 요리를 하였다.
팬이 얇아서 계속 눌어붙어 over cook 되어 볶음요리가 그리 맛있게 되진 않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한상 가득 차려진 식탁.
나를 제외한 셋은 쌀을 같이 넣어 끓인 닭백숙을 먹고,
난 밥과 채소 볶음, 상추쌈을 먹었다.
Q가 가져온 튜브 고추장을 곁들여 쌈을 먹으니..
아.. 이게 정말 몇 개월만의 한국 맛이던가.
상추를 간만에 먹으니 입 안 가득 퍼지는 그 싱그러운 향에 기분이 정말 좋았다.
닭백숙이 꽤 잘 되었는지 셋은 열심히 닭백숙을 잘 먹었다.
지금까지 여행하느라 체력도 저하되었고,
내일 모레면 또 다시 인도에 가서 여행을 시작해야 되는 친구들인데
이 닭백숙 먹고 원기 충전하여 건강하게 좋은 여행을 하길 바랐다.
그런데..
그 마지막 저녁식탁은 너무나도 고요 하였다.
음식이 너무 맛있어서 그랬던가..
다들 말이 없었다.
떠나는 마당에.. 헤어지는 마당에.. 뭔가 이야기를 하면서 마무리를 잘 하고 싶었는데..
바람만 휭~휭~ 분위기가 너무 썰렁했다.
음.. 뭐가 문제였을까...
역시.. 진실 게임을 거의 밤마다 했지만..
정말 속깊은 마음은 못 나눴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면서 아쉬웠다.
몸은 함께였지만 생각은 따로였달까...
난 앞서 말한대로 하푸탈레에서 엘라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셋에게 엽서를 썼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너무 좁았던 것이지...
떠나는 세 친구에게 내가 썼던 엽서를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고,
몰래 가방에 넣어 놓을까.. 어떻게 전달을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그 셋이 밥 먹는 내내 말도 없고.. 떠나는 가방을 싸면서도 말이 없고..
NGO에서는 누군가가 떠나면, 떠나 보내는 자나 떠나는 자나 편지를 쓰곤 했었는데..
이들은 내게 편지 하나 건네지 않고..
뭔가 섭섭한 마음이 밀려와서..
결국은 그 잘난 내 자존심 때문에 엽서를 건네지 못했다.
기차 시간은 7시.
어느덧 6시가 넘었다.
점점 깨끗해지는 방 안..
그리고 오늘 밤은 안 자긴 하지만 벌써 저녁 6시가 넘었고 저녁에는 부엌까지 사용을 했으니
오늘 방값까지 내고 가겠다고 내게 돈을 건네는 그들...
이제야 헤어진다는 것이 실감이 난다.
날이 흐리더니 정전이 되었다.
정전되는 날 없이 맑기만 했었는데
헤어지는 이 마당에 정전이라니...
해는 저 산 너머로 이미 넘어갔고 정전이라 점점 어두워지는데..
친구들은 떠난다고 배낭을 메고 있다.
기차역까지 마중을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지만
기차역에서 손을 흔들고
다시 나 혼자 산길을 내려와 이곳까지 돌아올 생각을 하니
마음이 너무 서글퍼질 것 같다.
결국 "나 멀리까지 안 나갈게." 하고 숙소 문간에서 배웅을 하게 되었다.
H는 내게 헤어짐이 실감이 안 난다고 했고,
T는 "언니, 인도에서 만나!" 하며 나와 포옹을 했고,
Q는 8월 15일 인도의 독립 기념일에 델리(Delhi)에서 행사 퍼레이드를 볼 것 같다는 말만 남겼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돌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을 내려가는 중간에 뒤를 돌아
나에게 다시 손을 흔들던 T와 Q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들의 모습이 안 보일 때까지 한참을 그렇게 문 앞에 서 있었다.
친구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숙소 주인이 다가왔다.
정전이 됐는데 초가 있냐고 묻더니 불 켜진 촛불 하나를 건네면서
바람이 불어 커텐이 날리면 불이 날수도 있으니
잘 때는 꼭 촛불을 끄고 자라고 신신당부를 하고 그는 올라갔다.
친구들이 떠나서 외로워서 그랬는지
수상하게 여겨졌던 숙소 주인마저 잠시나마 이렇게 만난 것이 반갑게 느껴졌다.
그렇게 문을 닫고.. 노트북을 키려다가 말았다.
정전이 오래 된다고 하면..
배터리가 1시간도 채 못가는 노트북을 켜봤자 소용없는 일이었다.
오히려 그냥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여 배터리를 아끼는 편이 나았다.
난 조그만 내 손전등을 켰다.
크지 않은 손전등이라 불이 약해 책을 읽을수도 없었고..
촛불도 그냥 방 안의 어둠을 살짝 가시게만 해주는 정도...
손전등을 켜서 천장을 비취며 한참 천장을 쳐다보며 앉아있다가 누웠다.
어둠 속에 혼자 있으려니 두려움이 몰려왔다.
두렵지만 위에 숙소 주인이 있다는 생각을 하니 외로움이 어느 정도 가셨다.
시간이 아직 저녁 7시밖에 안 됐다.
하지만 정전은 꽤 오래 지속될 것 같았다.
난 침낭 속에 들어가 얼굴 가까이까지 침낭을 끌어올리고 잠을 자려 애를 썼다.
그러다 깜빡 잠이 들었다 깼는데
여전히 켜져 있는 촛불이 불안해서 얼른 훅 끄고 다시 침낭 속으로 들어갔다.
친구들과 헤어졌다는 섭섭함과 아쉬움과 안타까움..
두려움과 외로움...
이런 아픈 감정들을 느끼기 싫어서 난 얼른 잠을 청했고
엘라 전체가 정전이라 칠흑 같은 어두움 속에 있었던 탓인지 다행히도 잠은 바로 들 수 있었다.
언제 다시 불이 들어올까 스위치를 올리고 잠을 잤는데
깨는 중간중간에도 전기는 아직도 안 돌아오고 있었다.
전기는 안 들어오고..
잠이 깰 때마다 마음이 콕콕 아팠다.
아.. 어젠 내 옆자리에서 T가 자고 있었는데..
아.. 저 건너편 침대에선 Q가 자고 있었는데...
아.. 저 끝에선 H가 자고 있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그 어둠 속에서도 난 존재들의 빈자리를 느끼며 마음이 너무 서글펐었다.
원래 1년으로 계획 했었던 NGO 생활을 예상 밖으로 6개월로 짧게 마무리 하고..
마음이 너무 힘들어서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
처음엔 스리랑카를 혼자 가려고 생각했던 나였는데..
이렇게 막상 혼자가 되니.. 친구들과의 헤어짐이 슬프고 안타까웠다.
처음부터 혼자 여행을 했었더라면 이런 기분이 덜했을까?
혹시 정전이 되지 않았더라면 이런 외로움은 덜했을까?
잠을 자긴 잤으나.. 잠을 깨는 중간중간..
내가 정말 혼자라는 사실에 처절함이 느껴져 참 힘들었었다.
어둠 속에서도 느껴졌던 온기 없는 친구들의 텅 빈 침대...
마지막 날이었지만 뭔가 분위기가 썰렁하고 말이 없었던 우리들...
내 자존심 때문에 건네지 못했던 엽서..
그리고 하지 못했던 말들...이 떠오르니
어둠 속에서 슬픔과 외로움이 후회와 함께 밀려왔다.
감정 표현에 서툴렀던 내 자신에 대한 반성과 후회..
그리고 이별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생각..
왜 친구들을 좀 더 잘 보내주지 못했을까.. 하는 나 자신에 대한 원망에
마음이 너무 쿡쿡 쑤셔 울고만 싶었던 힘든 밤이었다.
12 Ju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