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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여행 Day 15 : 엘라(Ella) - 미니 아담스 피크(mini Adam's peak)에 오르다.
Olivia올리비아 2021. 11. 15. 13:54
어제 정전이어서 저녁 7시 30분부터 잤다.
잠에서 잠깐잠깐씩 깰 때마다 옆 침대에서 자던 친구들이 참 그리웠다.
혼자라는 것이 이렇게 외로울 줄이야...
어떤 사람이 외롭다고 나한테
"너 혼자라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줄 알아? 네가 내 마음을 알아?"
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는 그 사람한테 내가 너무 화가 나 있던 상태라서
'받을만 하니까 지금 그렇게 외롭겠지.' 라고 생각 했었는데..
그 외로움을 지금 내가 처절히 느끼고 있을 줄이야...
남의 마음을 그렇게 못 알아준 것도 미안하고
어제 좋지 않았던 내 마음 상태로 인해
떠나는 상대방의 마음도 내가 참 아프게 했구나... 하는 후회와 미안함이 밀려와서
마음이 참 아팠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가슴이 아팠다.
가슴이 아프다는 것.. 마음이 아프다는 것..
난 세상에 태어나서 20년 넘게 살도록 그 말을 이해를 못했다.
이 말은 드라마에서나 하는.. 간지러운 말 정도로 생각하고
난 평소에 이런 말을 전혀 하지 않았었다.
슬프면 슬픈 것, 비참하면 비참한 것이었지
살면서 가슴이 아프진 않았었던 것 같다.
그랬던 내가..
가슴이 아프다고 느끼고 있다.
정말정말 가슴이 너무 아프고 안타까웠다.
아.. 가슴이 아프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사실 어제 H가 떠나기 전에 나한테 이런 말을 했었다.
"지금 10분의 시간을 주겠어. 콜롬보까지 같이 갈 생각이 있으면 얼른 짐 싸." 라고...
그 말을 들은 난 그 순간 정말 그러고도 싶었다.
정전인데다 날까지 흐린 엘라에서 혼자 남을 생각을 하니..
그렇게도 혼자 여행하기를 소원했던 나였지만
막상 혼자라는사실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졌던 것이다.
그러나 난 그냥 혼자 남았다.
같이 가도 좋았겠지만..
같이 가는 것 자체가 어쩌면 상대방에게 더 상처가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어차피 콜롬보까지 간다 하더라도
하루 뒤면 그들은 인도행 비행기에 몸을 실어야 하고
난 또 어차피 혼자가 되어야 한다.
그렇지만 만약 콜롬보까지 같이 갔더라면
비행기표까지 바꿔서 인도에 함께 돌아갔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기도 한다.
어쨌든 외로움으로.. 참 길고 긴 밤이었다.
따사로운 햇빛이 방 안을 비춘다.
친구들은 떠났지만 어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오늘도 태양은 떠올랐다.
그것도 더욱 화사하게.
전날 밤 일찍 잠자리에 든지라 새벽에 혹시 잠이 안 오면 어쩌나..
정전이라 불도 안 들어오는데.. 하면서 두려웠지만
우울하고 심란하면 잠을 자야겠다고 생각하는 기질이 있는 나인지..
결국은 아침까지 자긴 잤다.
거의 11시간, 12시간을 잔 듯..
방 안을 비추는 따사로운 아침 햇살은
텅 빈 친구들의 존재를 더더욱 여실히 깨닫게 해준다.
정말 '텅' 비었다.
나 외에 아무것도 없다.
그렇게 텅 빈 곳에서 멍.. 하니 앉아 있다가 간단하게 일기를 썼다.
아침에 만난 숙소 아저씨한테
나도 모르게 Colombo(콜롬보) 가는 버스를 물어봤다.
기차로는 10시간, 버스로는 6시간 거리라는데..
그와 떨어져 있는 거리, 멀어진 거리를 실감하니 눈물이 났다.
아침 햇살이 감사하다.
텅 비어 서늘해진 내 마음에 아침 햇살이 들어와 따뜻해짐을 느낀다.
자꾸 내게 보여주었던 다정한 모습만 생각난다.
8월15일 델리에서 그를 만나고 싶다.
바로 어제 헤어졌지만 몇 밤이나 지나야 그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하여
유치원 다닐 때 소풍 갈 날짜를 세어보던 것처럼 달력을 보고 날짜를 세어본다.
33일 밤이 남았다.
그때쯤이면 그의 친구도 한국으로 돌아갈 것이다.
그와 함께 여행하자.
그를 붙잡자.
외롭고 힘들어 찢어질 것 같은 내 마음을
그를 만날 생각과 희망으로 애써 달래며 웃어본다.
그렇게 아침 햇살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사람 마음이 참 간사하여.. 난 엽서를 써놓고서도 내 자존심 때문에 주지 않았으면서
혹시나 친구들이 남긴 쪽지가 있을까 주위를 둘러 보았다.
없다...
정말 아무것도 없다...
슬펐다.
그들도 마음이 힘들어서 그랬을까..
아님 내가 그들에게 이 정도 존재밖에 되지 않았던 것일까...
.
.
.
오전까지 마음이 심란했다.
난 더 이상 이 게스트 하우스에 있을 수가 없었다.
이 방에서 혼자 잘 수가 없었다.
친구들의 빈자리를 볼 때마다 외로움이 내 가슴을 후벼팔 것 같아서
어제 알아본 Sun top guest INN에 가서 체크인을 하겠다고 이야기했다.
그런데 4명의 여행객이 Kandy(캔디)에서부터 이 곳에 오겠다고 예약을 했단다.
원래 오늘 올지 말지 불확실 했었는데 오늘 오겠다고 연락이 왔다기에..
난 어쩔 수 없이 내가 봐 두었던 방에서 못 머물게 되어 되어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친절하게도 숙소 주인 아저씨가 저렴하면서 좋은 게스트 하우스를 소개시켜 주겠다고
손수 길 안내를 해 주셔서 Lizzie village guest house를 갔고,
난 저렴하면서도 깔끔한 방이 마음에 들어 그곳에 머물기로 결정을 했다.
다시 머물 숙소에 돌아와서..
옮길 게스트 하우스를 정하고 짐을 싸려고 정리하는데
노트북을 열어보니 무슨 편지 하나가 마우스 패드 옆에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이런... T가 남긴 편지였다...ㅠ.ㅠ
어제 내 자존심 때문에 전하지 못한 엽서가 민망하고 창피해졌다.
가슴이 아프다...
참으로 속 좁은 나...
내가 바보지...
T의 편지를 보니 혼자 여행할 용기가 났다.
말은 깊게 하지 않았지만 T가 이렇게 마음 속으로 날 생각해주고 있었다니..
갑자기 마음이 따뜻해지면서 Q와 H 역시 마음만은 T와 같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면서 갑자기 용기가 생겼다.
그래.. 사람은 역시 대화를 해야 돼.
이야기하지 않으면 아무도 그 마음을 알아주지도 않고...
나도 사람들의 마음을 모르니까.
편지 한 통에 든든해진 마음으로 난 씩씩하게 짐을 싸서 새로운 게스트 하우스로 옮겼다.
그렇게 보금자리를 옮겨 짐을 내려놓고 방에 혼자 있으려는데
너무 외로워서 당장이라도 친구들이 있는 콜롬보에 가고 싶었다.
콜롬보에 간 후.. 비행 스케줄을 바꿔 같이 인도까지 간다한들
한국에서 방학을 맞아 그와 여행하려고 온다는 그의 친구 때문에
어차피 그와는 함께 있지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에
막연히 콜롬보로 가고 싶다는 생각에서 그냥 한달 후에 그를 만나자는 쪽으로 생각이 정리되었다.
T의 편지를 받고나서..
친구들에게 편지를 주지 않은 사실이 아무래도 마음에 걸리고 후회가 되어서
쓴 엽서들을 메일로나마 보내려고 사진으로 찍어 USB에 넣고
근처 인터넷 카페에 갔다.
혹시나 콜롬보에 도착한 그에게 메일이 왔을까 싶었는데
그에게 온 메일은 없었다.
대신 간만에 친구 S에게 메일이 와서 그 메일을 확인하고 답장을 했다.
S에게 그의 이야기를 안 하면 이 폭풍 치는듯한 힘든 마음을 견딜수가 없을 것 같아
비밀이라면서 그를 좋아한다고 S에게 털어놓았다.
S에게 메일을 쓴 뒤, Q,H,T에게 쓴 엽서 사진들을 보내려는데..
갑자기 장대비가 쏟아지더니 인터넷이 끊겼다...
이런.. 생각났을 때.. 마음이 있을 때 보내야 하는데...
점심 시간이 훌쩍 넘어서 Ella village restaurant에 갔다.
엘라에 도착했던 날 늦은 점심을 먹기 위해 넷이서 갔던 곳.
음식 나오길 기다리며 그가 썼던 방명록을 다시 봤다.
그새 그의 글 아래 어떤 방문자가 글을 썼다.
다시 엘라에 간다면 그와 내가 남긴 글을 또 다시 볼 수 있을까?
그와 함께 이 곳에 와서 이 방명록을 다시 보길 희망했다.
비가 쏟아진다.
외로움과 쓸쓸함으로 마음이 힘들지만
주인 아저씨의 음식 만드는 소리가 나에게 일종의 '위로가'가 된다.
드디어 나온 볶음누들.
그제 H, T와 함께 먹었던 누들이다.
오늘도 역시 Mango chutney를 곁들여 주셨다.
혼자라서 입맛도 없고.. 많은 양을 아쉽게도 남겼다.
밥을 대충 그렇게 먹자 빗줄기가 잦아들었다.
그냥 숙소에 들어가긴 마음이 허전해서 Mini Adam's Peak에 가기로 했다.
미니 아담스 피크 가는 길.
비 온 뒤의 자연은 푸르르다.
그렇게 걷다 보니 기분이 좀 좋아진다.
카메라에 다 안 잡힐 정도로 키가 큰 나무들.
가는 길에 돌무더기를 보았다.
사랑에 빠져서 그런지 돌무더기도 어찌나 아름다워 보이던지...
아름다운 자연이 있는 스리랑카에서 난 사랑에 빠졌다.
현지인들이 아니었더라면 길을 잘못 들 뻔 했는데
친절한 아저씨들의 도움으로 아담스 피크 올라가는 길이다.
올라가는 길에 바라본 건너편 산.
혼자 그렇게 사진을 찍으며 올라가고 있는데
고등학생이라는 스리랑카 남자아이가 다가오더니
자신과 함께 올라가길 원하냐고 묻는다.
친절은 고마운데 괜찮다며 혼자 가겠다고 했다.
반대편 산을 가까이 보면 산허리를 따라 저렇게 도로가 있다.
와.. 정말 인간은 대단하다.
산에도 저렇게 아스팔트 포장도로를 만들다니...
이런 노력과 기술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을 볼 수 있지만
한편으론 자연이 참 아프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매연.. 공해.. 사람 공해...
그렇게 조금 더 걸으니 차밭이 나타났다.
Nuwara Eliya(누와라 엘리야)에서 정작 차밭을 구경을 못해서 많이 아쉬웠었는데
우연히 든 길에서 차밭과 그곳에서 일하고 있는 여인들을 만났다.
그분들이 사진 찍어달라고 했지만..
배터리가 나가서 그 이후의 사진은 안타깝게도 없다.
차밭으로 가는 길은 잘못 든 길이었다.
다시 돌아가는데 또 다른 차밭이 나왔다.
그래.. 이럴 때 차밭을 산책해 봐야지, 언제 하겠나 싶어서
아무도 없는 차밭을 혼자 조용히 걸었다.
좋다.
비 온 뒤라 수분을 가득 머문 푸르른 잎들이 참 싱그러워 보였다.
사람들이 어떻게 차밭에 올라 찻잎을 따나.. 궁금했었는데
알고 보니 이렇게 차나무 사이사이로 길이 있었구나...
푸르른 잎들을 보며 흙길을 걸으니 기분이 상쾌해졌다.
어디가 아담스 피크인지 몰라서 좀 헤매다가
아까 차밭에서 만난 아저씨의 말을 기억해 어떤 길로 가보니
정상으로 향하는 길이 있었다.
그런데 그 쪽에서도 좀 헤매다가 정상으로 보이는 어느 한 지점에 올랐다.
이게 미니 아담스 피크구나...
그냥 그 곳에 앉아서 그에게 쪽지를 썼다.
그 곳에서 도착해서의 느낌과.. 그에게 전할 글을 썼다.
혼자 있어서 좀 무서운 마음이 들었는데
소 여물을 베러 온 아저씨가 개 두 마리를 데리고 나타났다.
반갑게 인사하고..^^
이 곳이 아담스 피크냐고 물어보니 아저씨가 아니란다.
더 올라가야 한단다.
shortcut을 가르쳐 주길래 그쪽으로 가니
돌계단도 있는 것이.. 확실히 정상으로 가는 분위기가 난다.
한 20여분을 더 오르니 시원하게 펼쳐진 정상!
그곳엔 아담스 피크라는 깃발도 있었고 스리랑카 국기도 있었다.
와.. 이것이 스리랑카의 자연이구나.
이것이 아담스 피크구나!
와..... 어쩜 이런 산 정상에 이렇게 탁 트인 곳이 있을까...
그 곳에 오르니 세상 모든 것들이 다 내 눈앞에 있었다.
앞에 겹겹이 쌓인 산들은 호수나 바다 같이 보였다.
바로 앞의 산은 내 발치에 있었다.
주변을 한번 빙 둘러 보았다.
Sigiriya(시기리야)를 오르며 즐거워하던 그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가 여길 봤더라면 정말 즐거워 했을텐데...
왜 엘라에 있는 동안 그는 아팠을까..
여길 봤더라면 좋아했을텐데.. 좋아했을텐데...
내 머리 속에는 온통 그의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가 보고 싶었다.
다시 산을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엔 유난히 이 노란 꽃들이 많았다.
이 꽃 주변을 나비 두 마리가 맴돌고 있었다.
나비들이 한참을 그렇게 꽃 주변에서 머물다가 지나갔다.
나도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고 있었다.
.
.
.
오전까지는 마음이 너무 힘들고 외로웠는데
S에게 그를 좋아한다고 털어놓고, 아담스 피크에 다녀오니..
우울하고 슬펐던 마음이 사라지고 희망이 보인다.
그와 함께 다시 Ella, mini Adam's peak에 오리라...
저녁 무렵에도 폭포쪽 길로 가서
아담스 피크에서 보았던 바다 같은 겹겹의 산골짜기들을 다시 바라보았다.
노을이 지고..
구름에 투영된 노을이 참 멋졌다.
엘라는 내게 참 아름다운 곳으로 남을 것 같다
작은 동네지만 경치가 뛰어나고 천천히 산책을 하기에 참 좋다
이곳에 왜 외국인 여행자들이 많은지 나의 궁금증이 풀렸다.
노을 지는 겹겹의 산들을 바라보며
난 또 그의 생각을 했다.
13 Jul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