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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38-1 | 심라(Shimla) 가는 길 - 깔까(Kalka) 기차역에서의 밤 샘 | 지루했던 새벽, 델리 사는 Priya 가족과의 만남
Olivia올리비아 2021. 12. 9. 13:09
Shimla(심라)에 가기 위해 Chandigarh(찬디가르)에서 약 1시간 정도 떨어진 Kalka(깔까) 기차역에서 밤샘 중.. Shimla행 Toy train(토이 트레인)이 새벽 5시 30분에 오기 때문이다. 지붕만 있는, 사방이 훤하게 뚫린 야외 기차역.. 비가 와서 바람이 슝슝 불어 기온은 찬데, 모기는 자꾸 달려들어 날 성가시게 한다.
새벽 2시쯤 되었을까. 4am에 출발하는 Shimla행 기차가 내가 타려는 플랫폼 맞은편에 미리 도착했다. 새벽이라 피곤한 사람들이 미리 기차에 올라 잠을 청하는데... 이 비바람 부는 날씨에 몸을 뉘일 기차가 있는 그 사람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그 기차가 떠나기 전까지 잠깐이라도 그 곳에 올라 눈 좀 붙이고 싶은 심정이었다.
한편, 내가 앉아 있는 벤치 근처에는 화물을 나르는 인부들과 남자 기차 여행객들 뿐이었는데, 여자 사람들(!)을 발견했다. 어떤 모녀(?).. 여자 둘이 기차 안에서 인도인 특유의 눈초리(호기심, 약간은 띠꺼움?)로 날 쳐다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그러다 어떤 할아버지가 나타나서 두 여자는 자기 며느리와 손녀라고.. Delhi(델리, (힌디어로는 '딜리'라고 발음))에 산다고 자신들을 소개했다. 수도에 사는 사람들이라.. Delhi에 산다는 그 가족이 왠지 반가웠다. 뭔가.. 수도에 사는 사람들.. 인도의 중심... 인도와 내가 한층 더 가까워진 느낌..? (엄밀히 말하면 인도의 수도는 'New Delhi'이긴 하지만 말이다.)
할아버지는 Shimla 기차역에서 일하는데 4일을 일하고 Rs.100를 받는단다.. 흠.. 근데 자기 아들인지.. 친척인지는 미국에서 의사를 한단다. 이 엄청난 직업간의 gap과 월급은 도대체....
할아버지의 계속되는 소개. 두 모녀 중 딸인 Priya(프리야)는 16세로, 11학년이란다. 처음엔 프리야를 보고 성숙한 어른인줄 알았는데 보면 볼수록 어리다 싶긴 했었다. 나는 할아버지와 모녀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할아버지와 프리야는 영어를 잘 했으나, 어머니는 잘 하지 못해 프리야가 우리의 대화를 어머니께 통역해 주었다.) Chandigarh(찬디가르)에서 묵을 때 TV 뉴스에서 봤던 홍수가 Leh(레)에서 일어난 것임을 알게 되었다. 여행 일정상 지금쯤 Leh에 있어야 할 H 언니와 T가 걱정이 되었다. 두 사람은 이 난리를 잘 피해서 안전한 곳에 있을까...? 아님 홍수 소식을 듣고 Leh에 안 갔을까..?휴대전화도 없고.. 메일로밖에 연락을 할 수가 없는 두 사람인데, 그 메일조차도 연락이 잘 안 되니.. 소식을 알 길이 없어 무소식이 희소식이라 믿는 수밖에...
기차 창문을 사이에 두고 대화를 나누던 나와 Priya(프리야)였는데, 프리야는 이제 아예 기차에서 내려서 내 옆에 앉았다. 프리야랑 계속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여행하다가 만난 사람들에게 주려고 뽑아 온 내 조그만 사진을 프리야에게 건넸다. 프리야를 만난 기념으로 나도 프리야의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카메라 배터리는 어제 오후 Chandigarh(찬디가르)의 Nek Chand Fantasy Rock Garden(넥 찬드 판타지 락 가든)의 모습을 신나게 찍어대다가 이미 방전.. 충전할 시간도 없었다. 아쉬운대로 내 사진만 프리야에게 건네고.. 다른 사진들도 마저 보여주니 프리야는 내 사진들이 마음에 든다며 3장을 더 가졌다. 그러면서 그녀는 나더러 뜬금없이 Australia에 가 본 적이 있냐고 물었다. 없다고 했더니.. 나의 생김새가 호주인이랑 닮았다나..? ㅋ;; 아무튼 내 외모를 보고 'beautiful' 하다며 칭찬이 마르지 않는다.
프리야는 내게 Chai(짜이) 한 잔을 사주었다. 혼자만 먹는 것이 그래서 프리야에게도 짜이를 권했는데, 본인은 몸이 안 좋다며 나만 먹으란다. 24시간 매점에서 파는 Rs.5짜리 짜이... 그 짜이가 그렇게 달고 맛있을 수가 없었다. 프리야와 프리야의 어머니는 내게 또 쌀 튀밥을 건넸다. 신기하다. 인도에도 이런 튀밥이 있다니... 그것도 masala 가루에 버무리지 않은 새하얀 튀밥이... 프리야는 자신이 자주 즐겨 먹는 간식이라며 내게 튀밥을 여러 번 권했는데.. 사실 배고프지 않은 새벽이어서.. 무엇인가를 먹는다는 것이 부담이긴 했지만 고마운 마음에 튀밥을 씩씩하게! 맛있게 잘 먹었다! ㅎ
프리야는 자기를 기억하라는 뜻에서 내게 머리 클립을 선물하려고 했다. 그런데.. 덥썩 받기가 미안해서 나도 하나 있다고 대답했다가.. 결국 내가 그녀에게 내 머리 클립, 내 사진들과, 한국 부채를 선물하고.. 인사동에서 산 복주머니 2개를 프리야와 프리야 어머니에게 각각 하나씩 건넸다. 사실 이 많은 선물들은 혹시 인도에서 지내는 동안 인도 가정 방문을 하게 된다거나.. 홈스테이를 할 때 그 가족들에게 선물할 요량으로 챙겨 갔던 것인데.. 잠깐 본 사이임에도 그녀와의 '친구'와도 같은 만남이 기분이 좋아서.. 그만 나도 모르게 다 퍼주고 말았다. 그렇게 주고 나서 '너무 퍼줬나..' 싶은 후회도 살짝 들긴 했지만.. (아까워서라기보다.. 그냥 너무 과한 것 같아서 말이다.) 프리야도 좋아하고, 프리야 어머니도 한국 복주머니를 보며 환하게 웃으시니... 이 사람들의 고마워하는 표정과 그 미소를 잊을 수 없을 것 같다. :-)
장래 희망을 물으니 의사가 되고 싶다는 프리야는 자기 집에 꼭 오라며 주소와 휴대전화 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리고는 사진을 찍을 수 없으니 아쉬운대로 자신을 기억하라며 자기 캐릭터 하나를 귀퉁이에 귀엽게 그려 넣었다. ㅎㅎ 그녀의 집은 무슨 지하철 역 근처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는데.. 어떤 지명을 말하면 사람들이 다 안다며, 혹시 길을 잃고 헤매면 사람들한테 물어보면 된다고 했다. Delhi에 사는 인도 친구가 생겨 기쁜 마음이 들었다. 델리에서 길을 잃었거나.. 갈 곳이 없어 막막할 때 어딘가 정신적으로 의지할 곳이 있다는 것도 기뻤다. 근데.. 문득 들었던 생각은.. 내가 이것저것을 선물해서인지, 아님 나 자체가 좋은 것인지 그녀 마음을 잘 모르겠다는 거였다.
새벽 4시. 이제 프리야 가족들을 실은 기차가 Shimla로 먼저 떠날 시간이었다. 복주머니를 받은 뒤 한결 나에 대해 표정이 부드러워진 프리야의 엄마.. 그리고 기차에 타고 계셨던 프리야의 할머니와 할아버지와 프리야.. 프리야는 자기네들도 역시 Shimla로 한 4일 동안 여행을 가는 중이라면서 Shimla에서 꼭 만나자고 당부하듯 여러 번 이야기를 했다. 이들과의 만남이 처음엔 만남이 좀 어색했었는데, 단 몇 시간의 만남으로 급 친해진 프리야는 연신, "너랑 하루를 만났을 뿐이지만 넌 내 best friend야. 꼭 Shimla에서도 보고, 우리 집에도 놀러와."라고 말했다.
아무튼 그들이 탄 기차는 그렇게 먼저 떠났다. 생리통으로 인해 얼굴빛이 어둡던 프리야가 심라에서 잘 쉬고 다시 팔팔해졌으면 좋겠다. 새벽 5시 30분 기차가 올 때까지 어떻게 기다려야 하나.. 싶었는데 그 일가족과의 만남으로 인해 지루한 시간이 물 같이 금새 흘러갔다. 근데 앞으로 남은 1시간 30분이란 시간도 문제다.. 날씨가 너무 춥다! 결국.. 5시 30분까지 추위에 떨며.. 관광청에서 받은 Himachal pradesh(히마찰 프라데시) 관련 브로셔를 폈다 덮었다 하며 1등급 Shimla 기차가 도착하기만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역을 돌아다니는.. 역무원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가방을 두고 어디 가지 말라고.. 자리를 비우면 사람들이 훔쳐간다며(훔쳐가는 시늉을 하는데 그게 그렇게 리얼할 수가 없었다.) 여러 차례 단단히 주의를 주는 바람에.. 화장실도 못가고.. 그 자리에서 그렇게... 가지 않는 시간과 추운 날씨와 싸우며 기다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참 괴로운 시간이긴 했지만.. 이 또한 지나가겠지.. 이 또한 인도 여행길의 좋은 추억으로 남겠지.. 싶었다.
(to be continued...)
10 Aug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