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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아침. 집집마다 대문 앞에 그려놓은 새해의 Rangoli(랑골리)들을 구경하고 다시 Sunitha네 집에 들어왔다.

 

 

 

수니따는 아침부터 엄청난 빨래를 했다. 수니따의 어머니는 수니따가 어릴 적 일찍 돌아가셔서 후로 맏딸인 수니따는 가족들의 빨래며, 식사며. 모든 집안일들을 도맡아서 하고 있었다.

 

수니따는 아버지를 끔찍이 위했다. 아빠가 자신들을 키우기 위해 젊은 시절 굳은 일도 마다 않고 열심히 일을 하셨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살고 있는 이 집도 장만하신 것이라고. 수니따네 집은 아주 부자 건물은 아니지만 수니따의 아버지와 수니따, 그리고 그녀의 남동생 티피가 살기엔 아주 적당한 크기의 좋은 집이다. 친척들 중 유일하게 자기 건물을 가진 사람이 그녀의 아버지라고 했었나..? 어쨌든 수니따는 평생 살아갈 수 있는 자신의 집이 있다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수니따네는 친척들 수가 엄청난 것 같았다. 1월 9일에 모든 친척들이 Lepakshi로 모인다던데 몇십 명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아버지, 어머니 모두 형제가 적어서 명절 때에는 항상 썰렁.. 외로움을 느꼈는데 수니따네 대가족 이야기를 들으니 그게 그렇게 부럽게 느껴졌다.

 

 

 

 

 

효성이 아주 지극한 수니따. 그녀는 아침부터 땀을 뻘뻘 흘리며 수많은 빨래들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래한 물은 집 옆의 도랑으로 그대로 흘러 들어갔다. 수니따에게 하수 처리 시설이 이 동네에 있냐고 묻자 없다고 했다. 가정으로부터 아무런 여과 장치 없이 그대로 집 밖으로 빠져나가는 물은 도랑에 고여 각종 쓰레기들과 만난다. 그 도랑을 개, 돼지 등의 각종 동물들이 밟고 다니고.. 그 도랑에 고인 더러운 물 때문에 모기 등의 각종 벌레들도 많이 생기고 있다.

 

흠.. 지방 관리들은 이런 사실을 알긴 하지만 문제를 해결할 방법을 못 찾고 있는 것일까..? 아니면 지방 관리들의 부패..? H 동네를 둘러보면 금방 쓰레기 처리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다음번 이곳에 오게 된다면 환경 캠페인을 마을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제 인도를 떠날 날이 열흘 앞으로 다가와서 안타까운 마음이었다.)

 

 

빨래를 마친 수니따를 도와 옥상에서 빨래를 널었다. 아침 햇살이 참 따가웠다. 오늘은 빨래가 잘 마를 듯^^ 빨래는 빨랫줄에 널거나 바닥에 펴서 날아가지 않도록 돌로 눌러놓았다. 꼭 시골집에 온 듯도 하고~ 기분이 참 정겹고 좋았다^^

 

"**~ 배고프지? 샤워하고 나서 밥 만들어 줄게~"

 

수니따는 샤워 중. 그녀는 아침마다 샤워를 하여 몸을 깨끗하게 하고 신께 기도를 드린다.

 

난 아침부터 분주한 것이 싫어서 저녁 샤워를 하는 편인데.. 그녀는 저녁 샤워보다 아침 샤워가 몸을 깨끗하게 하는 데 좋다고 했다. 하긴.. 아침에 샤워하면 오히려 몸도 안 춥고 든든하고 좋던데. 나도 이참에 아침 샤워로 바꿔? ㅎㅎ

 

 

 

수니따가 샤워하는 사이에 수니따네 집 옥상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앉아 수니따네 집 풍경을 그렸다. 그런데 갑자기 나타난 원숭이가 담벼락 위에 앉아 고수(coriander)를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원숭이 무서워해서 재빨리 수니따네 집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원숭이의 행동을 지켜봤다. 그런데 ㅎㅎ 고수 먹는 원숭이라니.. 신기했다. 아무튼 놀라서 급하게 안으로 들어오느라 색연필 하나가 떨어졌는데, 그 주변을 원숭이가 자꾸 왔다 갔다 해서 나가지도 못하고 안절부절.. 그런데 수니따 동생 띠피가 어딘가 갔다가 들어와서 왠지 모르게 든든함~ 용기를 내어 색연필 집어왔다. 원숭이들은 신기하게도 남자와 여자를 구분할 줄 아는 능력이 있는지, 남자한테는 잘 안 덤비는데 여자들은 우습게 보는 경향이 있다.

 

아무튼 수니따네 집 풍경을 한국 돌아가서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싶어서 그림 그린 것 위에 채색도 하고 싶었는데 수니따가 모닝커피 마시라고 불러서 안으로 들어갔다.

 

 

수니따가 정성스럽게 끓여준 아침의 남인도식 모닝커피는 정말 맛있었다! K 마을에서 사 온 milk라고 했었나.. 아무튼 가공하지 않은 우유로 끓인 커피는 정말 굿굿~~!! 

 

 

 

수니따는 자신의 집에서 내가 홈스테이 하기를 오매불망 기다렸다. 내가 정말로 홈스테이 하게 되자, 소화불량으로 입이 짧은 나를 위해 그녀는 내가 먹고 싶다는 것은 다 만들어 주겠다고 했다.

 

인도 음식을 배우고 싶은 마음은 가득이지만, 혹시 나의 방문 자체가 그녀의 집에 누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어 과일이라도 사다 줄까 기회를 많이 엿봤었는데.. 내가 어딘가 나가려 하면 귀신같이 눈치채고 정말로 아무것도 사 오지 말라고 했다. 지난 6월 그녀의 집에 초대를 받았을 때 파인애플 타르트를 2판 만들어 왔었는데, 그때도 그럴 필요가 없었다며 이번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사 오지도, 가져오지도 말라고 했다. 친구 사이에는 그러는 것이 아니라며...

 

수니따가 이렇게 강력하게 이야기하는데 굳이 사 가는 것도 예의는 아닌 것 같아 그냥 편안하게 수니따네 집에서 먹고 즐기기로 했다! ^^

 

 

 

 

이건 내가 좋아하는 half moon(남인도에서 Kudumu(쿠두무)라고 불리는 축제 때 먹는 음식 : 힌디어로는 Gujia(구지아)/Gujiya(구지야))을 만들기 위한 Jaggery(재거리)다. 재거리는 비정제 설탕이라고 해야 하나..? 티베탄 친구 Sangmo의 말에 의하면 어느 나라에나 이것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나라에선 못 봤던 재료다. 이 jaggery도 조금 사서 한국 가서 Kudumu 해먹어야지 싶었다. (나중에 인도 떠나기 전 정말로 시장 가서 1kg 사서 트렁크에 넣었다.)

 

 

 

 

이건 내가 좋아하는 남인도 콩 요리 Poppu(뽀뿌)~~ 내가 우리 센터에서 점심 해주시는 락쉬미 아까의 뽀뿌를 엄청 좋아한다고 하자 요리 못하는 락쉬미 아까의 뽀뿌는 진짜 뽀뿌가 아니라며 수니따가 자신의 방법을 제대로 알려주겠다고 했다. 요리 못하는 락쉬미 아까의 뽀뿌가 맛없는 뽀뿌면 진짜 뽀뿌는 얼마나 맛있다는 거야! 아주 기대가 되었다.

 

 

 

 

뽀뿌 만드는 중. 냄비에 toor dal 인가.. 아무튼 납작 동글동글한 콩과 turmeric, 고추, 토마토를 넣는다.

 

 

 

 

각종 재료 준비 중. 아~ 식재료 보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환해진다 :) 음식을 잘 못 먹어서 탈이지 부엌에 있는 것이 정말 좋다. :)

 

 

 

 

 

Poppu - 빨간 말린 고추도 넣은 뒤 끓인다.

 

 

 

 

이건 Kudumu 만들기 위한 콩. 역시 콩과 turmeric을 넣고 푹 끓인다.

 

 

 

 

삶은 콩과 Jaggery를 합한다. 콩 사이사이로 Jaggery의 단 맛이 스며드는데, 아~ 상상만 해도 벌써 맛있다! ^ㅠ^

 

 

 

 

이건 curry leaves와 양파. 인도에는 신기하게도 커리 향 나는 나뭇잎이 달린 나무가 있었는데, 이 잎을 말려서 음식에 넣으면 커리 향이 더 진하게 난다.

 

 

 

이건 Tamarind(타마린드) 즙을 낸 것이다. 타마린드는 나무에서 나는 열매인데, 질감은 우리나라 곶감과 같고 맛은 시큼. 약간 달콤하다. 타마린드 말린 것을 물에 개어 즙을 짜서 요리에 넣는데, 수니따의 말에 의하면 인도 요리에서 타마린드는 필수라고 했다. 요리에 감칠맛을 주는 역할을 하나보다.

 

 

 

수니따네 부엌에 설치되어 있는 돌절구. 콩 빻으려고 씻어서 준비해 놓았다.

 

 

 

 

이번에는 차파티 준비하는 수니따. 아버지와 동생을 위한 아침 준비 중이다.

 

 

 

 

Kudumu 만들려고 삶은 콩+jaggery 합한 것을 돌절구에 넣는다.

 

 

 

 

 

돌로 드륵드륵- 곱게 간다.

 

 

 

 

 

아주 고와지고 있는 콩 입자.

 

 

 

아침부터 요리하느라 땀 뻘뻘.. 수니따 샤워한 거 다 소용없게 되었네.. ㅠ.ㅠ 괜히 수니따한테 요리해 달라고 했나.. 미안한 마음도 들었지만, 수니따는 연신 웃으면서 나의 행복이 자신의 기쁨이라면서 아주 즐거워했다. :)

 

 

 

 

이번엔 삶은 Poppu를 방망이로 다지는 중. 락쉬미 아까는 안 다지고 그냥 끓이기만 하던데~ 역시 오리지널은 다르다! ㅎㅎ

 

 

 

 

수니따는 일을 한꺼번에 하는 성격인가 보다.. 이거 만든 김에 저것도 만들고.. 저것 만든 김에 이것도... 수니따는 내가 예전에 좋아하고 잘 먹었다며 토마토 커리도 만들었다. 타마린드 즙 짜서 넣는 중.

 

 

 

 

수니따의 tomato curry는 정말 accha hai~!! (수니따는 초등학교에서 힌디어를 배워서 힌디어를 읽고. 쓰고. 말할 줄 알았다. 배우지 않은 사람은 지방 언어만 하거나.. (Telugu어 같은..) 힌디어는 느낌으로 알아듣는 모양이었다. 인도인이라도 배우지 않으면 힌디어를 할 수 없구나.. 좀 놀랐다.)

 

 

 

ta-da~!! 완성된 Poppu!! 수니따 표 뽀뿌~ 정말 맛있다! ㅠ.ㅠ

 

 

 

 

요리, 또 요리하고~~ 사진 하단에 있는 것은 Rasam(라쌈)이었던가.. rasam을 만들기 위한 재료였던가.. 아무튼 수니따는 rasam도 참 잘 만든다.

 

 

 

 

이번엔 Dosa(도사: 쌀가루를 발효시켜 만든 남인도식 팬케이크) 만드는 수니따~ 어젯밤 쌀가루를 발효 시켰는데, 생각보다 발효가 잘 안돼서 perfect 한 Dosa는 아니라고 수니따가 좀 속상해했다. 그래도 맛은 좋을거라고~ㅎㅎ

 

 

 

 

 

수니따 아버지와 남동생이 식사를 먼저 하고, 수니따와 나는 나중에 밥을 먹었다. 맛은 두말할 것도 없이 최고!! 이곳을 몇 개월간 떠나 있는 동안 수니따의 feeding이 그리웠다고 하니 수니따가 또 먹여 주었다. ^^ 엄마 같은 수니따^^ 오늘은 나도 수니따에게 도사를 먹여주었다.  (친구라고는 하지만 수니따는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79년생이다. 근데 난 이게 좋다. 한국에서는 나이에 따라 벽과 거리감, 서열이 자동적으로 생기는데 비해 외국에서는 영어의 특징 때문인지는 몰라도 사람 간의 서열, 높낮이가 느껴지지 않아 참 자유로움을 느꼈다.)

 

 

 

 

수니따에게 배운 요리를 기록했다. 한국 가서 분명히 요리들이 엄청 그리울 것 같다.

 

 

 

 

수니따가 준비해 준 풍성한 식탁.

 

 

 

 

내가 좋아하는 하프 문 (Kudumu : 쿠두무)! 안타깝게도 카메라 배터리가 나가서 그림으로 남겼다.. ㅠ.ㅠ 한 10개는 먹고 싶었는데 3개밖에 안 먹었는데 배가 왜 이렇게 부르던지... 수니따의 푸짐한 마음과 정에 배가 미리 불렀나 보다.

 

 

오후에는 수니따를 따라 수니따네 친척 집에 갔다. 수니따의 할머니, 외숙모도 만나고.. 조카들도 만나고.. 많은 식구들이 새해라고 한자리에 모여 있는 것을 보니 참 부러웠다. 수니따가 참 행복해 보였다.

 

 

 

수니따 사촌 집 옥상 마당에서 한바탕 벌어졌던 놀이 판. 수니따네 할머니는 거동이 불편해 보이셨지만 게임을 하자고 하자 금방 생기가 도는 모습이셨다. ㅎㅎ 게임은 놀이 판과 말.. 마치 우리나라 윷놀이와 비슷해 보이는 게임이었다. 우리나라와 먼 곳에도 이렇게 비슷한 문화가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나도 참여를 하고 싶긴 했는데 아무리 봐도 룰을 잘 모르겠다는.. 그냥 수니따 옆에서 Chai(짜이) 마시며 바라보기만 했는데, 그 분위기가 너무나 즐거웠다^^

 

 

놀이를 마치고는 수니따 친구 루빠네 친정어머니 댁에 갔다. 얼마 전 이사를 했다면서 집안은 정리되지 않은 모습이었는데 선한 인상의 루빠네 어머니가 너무나 친절하게 맞아주셔서 참 감사했다^^

 

 

 

루빠네 집에선 신기하게 쌀국수를 먹고 있었다. 내가 쌀국수에 관심을 보이자 루빠네 식구들이 쌀국수 만드는 기계를 보여 주었는데.. 와.. 예전에 <noodle road (누들 로드)>라는 다큐에서 각 나라의 국수 뽑는 기계를 흥미롭게 봤었는데, 이렇게 또 다른 모양의 기계를 보니 너무나 신기했다! 카메라 배터리가 다 달아서 사진을 찍을 수 없음이 너무나 안타까웠다.. 그래서 기억나는 대로 모양을 그려보았다. 또 언젠가 이 기계를 볼 수 있는 날이 오겠지!

 

 

 

저녁에는 루빠의 친구들과 나의 Sri Lanka, Darjeeling 여행 사진을 봤다. 스리랑카 사진을 보여주니 수니따와 친구들이 정말 좋아했다. 바로 옆 나라가 이렇게 생겼구나. 신기해하는 모습이었다.

 

수니따의 남동생 티피는 나와 말을 섞고 싶은데 영어가 부족해서 안절부절하고 있다고 수니따가 알려주었다. ㅎㅎ 티피는 야식으로 내가 좋아하는 dahi puri 등의 간식도 사다 주었다. 모두가 사진 보고, 간식 먹고, 서로를 바라보며 이야기를 나눈 참으로 즐거운 저녁이었다.

 

그런데 오늘 바로 센터로 돌아가자니 너무나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뭔가를 덜 한 기분.. 뭔가가 중간에 딱 끊기는 기분.. 나는 수니따와 어떡하지, 어떡하지.. 하다가 용기를 내어 센터에 전화해서 지부장님으로부터 하룻밤 더 홈스테이 허락을 얻었다! 지부장님 목소리가 좋지 않아 걱정이긴 했지만.. ㅠ.ㅠ 그리고 내일 아침 일찍 들어오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ㅠ.ㅠ 그래도 야호!! 이 밤을 즐기자!!!

 

1 Jan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