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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토 기사(오토바이 택시 기사)에게 위협을 느끼다.
오늘 모토 기사에게 밀어트림을 당해 길거리에 나자빠지는 충격 사건을 겪었다. 약 두 시간 전에. 다행히 손바닥만 조금 까졌고 크게 다친 곳은 없었지만 한동안 계속 눈물이 흐르고 정신적 충격이 좀 있었다.
지난 월요일부터 오늘 수요일까지 캄보디아 휴일을 보내고 있다. (5월 14일 국왕 생일 기념) 오늘이 휴일 마지막 날인데 집에 힘 없이 있기가 싫어서 랩탑이랑 각종 공부할 책, 여가 시간을 위한 책 등을 한 짐 싸 들고 밖에 나왔다. 날은 너무 덥고 지나가는 모토는 많이 없었다.
요즘 모토 기사들이 가격을 너무 세게 부른다. 3가지 생각이 들었다.
1. 계속 느껴온 것이지만 몸집이 작고 동양 사람인 나를 쉽게 보는 모토 기사들.
2. 외국인이니까 돈을 당연히 많이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토 기사들.
3. 내가 외국인이건 아니건 별 상관없이 양심에 따라 정직하게 돈을 받는 모토 기사들.
1번인 경우에는 내가 당당한 눈빛을 하면 그들 역시 행동이 달라진다.
2번인 경우에는 나를 인격이 아닌 돈으로 생각하는 것 같아 당연히 기분이 나쁘다. (가난하니까 그럴 수 있다, 당연하다고 생각이 들지만서도 기분이 나쁜 것은 어쩔 수가 없다.)
3번인 경우에는 내릴 때 처음 제시한 가격보다 아저씨에게 돈을 더 주게 된다. 고맙고 그들의 정직함에 감동을 받아서.
오늘 만난 모토 기사는 2번 경우였다. 높은 가격을 부르던 동시에 지나가던 뚝뚝 기사까지 와서 높은 가격을 거드는 눈치였다. 다른 모토를 잡으려고 걸어가고 있는데 모토 기사가 계속 따라오면서 내가 제시한 가격에 가주겠단다.
'처음부터 그럴 것이지.' 하면서 못 이기는 척 모토를 탔다. 그런데 분명 길을 안다고 해놓고 다른 방향으로 가는 것이었다. 최근 들어 내가 만난 대부분의 모토 기사들은 길을 모르면서도 아는 척 일단 손님을 태우는 경우가 많았던 터라 이 모토 기사가 다른 길로 들어선 순간 기분이 좀 상했다.
모토를 세우라고 하고 이 길이 아니라고 했다. 그간 내가 쌓아온 감정이 폭발하는 듯했다. 참는 것도 한두 번이지, 왜 모르면서 아는 척 손님을 태우고 가느냐고. 이런 모토 기사에게 여기까지 온 거리를 페이해야 하는 것도 아깝게 느껴질 정도로 감정이 북받쳤다. 모르면서 오긴 왜 와.
근데 이 모토 기사는 계속 자기한테 페이를 하라고 따라오는 것이었다. 현장에 서 있던 영어를 잘 하는 현지인 남성과, 그 남자를 운전기사로 고용한 코에 피어싱을 하고 임신한 채로 어린아이를 안고 있던 한 외국인 여성에게 실갱이의 이유를 설명해야 했다.
약간 실랑이를 하다가 이 모토 기사가 길을 안다고 해서 다시 못 이기는 척 모토를 탔다. 페이를 안 했다가는 이 사람이 날 어떻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갑자기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다. 타국에서 누군가에게 칼부림을 당한다면.. 하는 극단적인 생각까지 이상하게 스쳤다.
그런데 이 기사가 계속 운전하고 가면서 궁시렁궁시렁. 나도 한국말로 막 궁시렁궁시렁 했다. 어찌 보면 참 작은 일일 수 있는데, 항상 맨날 모토를 탈 때마다 가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참 말을 '곱게'도 해대는 모토 기사들에 대해 쌓였던 감정이 절정에 이르는 듯했다.
결국 목적지에 도착. 3,000 riel을 제시하고 이곳에 왔던 터라 1달러(4,000 riel)을 냈다. 모토 기사가 내게 1,000 riel을 거슬러주어야 했으므로, 1달러를 내 손에 꼭 쥐고 1,000 riel을 주면 1달러를 주겠다고 했다. 왜냐, 왠지 느낌에 거스름돈을 안 줄 것 같아서였다. 어떤 모토 기사들은 거스름돈이 없다고 핑계를 대고 돈을 더 취하기도 하기 때문인데, 이 모토 기사가 딱 그럴 스타일이었다.
사실 1,000 riel은 1달러를 1,000원으로 계산했을 때 우리나라 돈으로 약 250원 하는 돈이다. 250원 정도야 얼마든지 양보할 수 있는 돈인데, 하도 기사들에게 시달리다 보니, 그리고 내 성격도 워낙 정확해야 하는 성격이라 정확히 셈을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 내게 박혀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모토 기사가 1,000 riel을 줄 테니 1달러를 일단 달라고 하는 제스처를 했다. 돈을 내 손에서 떠나보내는 순간, 모토 기사는 자기 셔츠 윗주머니에 1달러를 넣더니 손바닥으로 가리고 꽉 닫는 시늉을 했다. 순간 화가 나서 1달러를 다시 그 주머니에서 꺼내가려고 했는데 절대 안 내어주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급기야는 모토에서 내렸다. 나는 계속 돈을 다시 가져가려고 시도를 했고, 이 기사는 힘으로 나를 제지하더니, 급기야는 갑자기 한순간, 내 목을 조를 듯 나를 향해 다가오더니, (다행히도) 나를 확 밀쳐 쓰러뜨렸다.
순간, 아차!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은 크메르루주 정권을 겪었던 캄보디아다.'
'이곳의 문화는 즉결심판 문화다.'
'이곳은 아직도 길에서 사람을 돌로 쳐서 죽이는 문화다.'
'이곳은 돌로 쳐서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유튜브에 여과 없이 그대로 보내는 나라다.'
'이곳은 그 유튜브와 같은 동영상을 어릴 적부터 보고 배우면서 자라는 문화다.'
'이곳은 한번 화가 나면 뒤도 안 돌아보고 만남을 단절하거나 처단해버리는 문화가 있는 곳이다.'
와.... 정말 순간적으로 정말 정말 죽음의 위협을 느꼈다. 정말 나를 어떻게만 할 것 같았던 그 기사의 위협의 제스처.
그 현장에서 한 건물을 지키고 있던 경비원과 어떤 남자가 나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들은 나를 도와줄 생각도 안 했다. 나와 눈을 마주쳤는데도 눈치를 보고 회피하는 듯했다. 한 남자는 모토기사랑 잠시 무슨 말을 주고받았다.
그래서 나는 인근 상점으로 들어가 재빨리 사람들과 경찰에게 도움을 요청하려고 했다. (내가 직접 전화를 하고 싶었는데 스마트폰을 꺼내면 위험할 것 같았다.)
그런데 그러는 사이 그 모토 기사는 유유히 가버렸다.
이국 땅에서 이런 일을 겪으니 조금 서러웠다. 이런 것이 이방인의 외로움인가 싶었다. 상점 점원에게 이러이러해서 이러이러했다고 상황을 설명하는데, 점원이 타이거밤을 발라주려고 하면서 울고 있는 내게 휴지를 건넸다.
사람이 이미 사라졌으므로 경찰에게 신고도 할 수 없는 상황이고 해서.. 점원에게 고맙다고 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런데 한동안 충격으로 어느 곳에도 갈 수가 없었다. 그저 길 한쪽에 서서 피가 나는 손바닥을 휴지로 닦으면서 한동안 계속 눈물이 흘렀다.
이 상황은 내게 어떤 교훈이 되는 상황일까. 왜 내게 이런 충격적이고도 강한 일이 일어난 것일까.
내가 아저씨에게 잘못하긴 했지. 내가 조금 참고 양보했더라면 됐을 것을...
정확함을 추구하는 내 성격이 문제일 때도 있구나.
그깟 250원쯤...
내가 너무 용감하긴 했구나.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니.
나는 사람들 앞에서 너무 친절하게 항상 웃기보다 강하게 캄보디아어가 아닌 영어로 말해야 할 필요도 있다는 누군가의 조언을 들으며.. 그래, 때로는 나의 웃는 얼굴이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쉽게 생각하도록 할 수 있구나. 그것도 참 거칠게 일을 하는 모토, 뚝뚝 기사들 앞에서는 더더욱.
그래서 그 나름대로의 지혜 있는 행동을 취해야지 싶었는데.. 혼란스럽다. 웃음과 당당함. 친절함과 당위성. 그 사이에서.
어쨌든 한 가지는 더욱 확실하게 깨달았다. 사람들이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는지, 때론 목적이 인간성을 상실하게도 하는구나.
그리고 또 한 가지가 깨달아졌다. 나는 정말 정확한 것을 좋아하는구나. 정확한 것,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일에 난 참 용감하고 그 일을 끝까지 해내고야 마는 성격을 가졌구나.
15 May 2013
캄보디아 이야기 114 | 다가오는 선거철로 민심이 흉흉한 캄보디아 - 현지인들에게도 착취와 폭력을 가하는 오토바이 택시 기사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