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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회 프놈펜 국제 음악제 2012

9th International Music Festival Phnom Penh 2012

 

 


 

10월 28일 음악제 넷째 날 - Piano recital

 

Sunday, 28th October 

Hotel InterContinental

 

11 am - Piano recital – 

 

This exciting piano recital is a musical journey through the development of the Keyboard music. From the outgoing renaissance period represented by Sweelinck to the early baroque music by the Danish composer Buxtehude. In continuity with French master Rameau the recital finally ends in the late baroque period and the Galant Style represented by south European composers Antonio Soler (Spain) and Domenico Scarlatti (Italy) 

 

Scarlatti spent much of his life in the service of the Portuguese and Spanish royal families. He is classified as a Baroque composer chronologically, although his music was influential in the development of the Classical style. Distinctive attributes of Scarlatti's style are the influence of Iberian (Portuguese and Spanish) folk music.

 

An individual and light mix for a sunday Matinée

 

 

 

program

 

Jan Podbielski (1680 -1730)

Prelude D-minor

 

Jan Pieters Sweelinck (1562-1621)

4 Variations on Onder een linde groen

 

Dieterich Buxtehude (1637-1707)

Suite in C-major BuxWV 230

Allemande | Courante | Sarabande | Gigue

 

Jean Philippe Rameau (1683-1764)

Gavotte et Doubles

 

Claude Debussy (1862-1918)

Hommage a Rameau

 

François Couperin (1668-1733)

Les Barricades Mystérieuses

Le Tic Toc Choc

 

Maurice Ravel (1875-1937)

Toccata from "Le Tombeau de Couperin"

 

José António Carlos de Seixas (1704-1742)

Toccata C-minor

 

Domenico Scarlatti (1685-1757)

Toccata D-minor

 

Antonio Soler (1729-1783)

Fandango

 

Enrique Granados (1867-1916)

Andaluza

 

Joaquín Larregla (1865-1945)

¡Viva Navarra!

 

 

 

artists

 

Stephan Rahn - piano

 


 

2012 프놈펜 국제음악제 넷째 날. Intercontinental Hotel, Grand Ballroom. 이 날만 유일하게 연주회 시간이 오전 11시였다. 프놈펜에 거주하는 상당수의 외국인들이 크리스천인데 연주 시각을 11시로 정한 것은 주최측이 좀 잘못 생각한 것 같다고 동료 간사님이 그랬다.

 

그도 그래서였을까? 전 날 저녁보다 확실히 사람들이 적긴 적었다. 한 NGO 단체인지, 아니면 international school인지.. 초등학생 나이대의 20~25명 정도의 어린이 그룹이 오지 않았더라면 연주회장은 정말 썰렁했을 뻔.

 

 

 

 

연주 시작 전 잠시 호텔 로비에 앉아 있었다.

 

 

 

 

캄보디아의 호텔, 레스토랑, 가정집 등에 거의 필수적으로 걸려있는 세 개의 액자. 얼마 전 서거한 캄보디아의 전 국왕 Norodom Sihanouk(노로돔 시하누크)의 액자에는 검은 천이 씌어져 있다.

 

 

이 날의 연주홀이었던 그랜드 볼룸 입장. 난 최대한 연주자의 손가락을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 홀 입장이 허용되자마자 거의 달리듯 객석 왼쪽 맨 앞자리로 갔다.

 

원하는 자리에 앉긴 했는데, 좀 더 손이 잘 보일 위치를 고민하면서 엉덩이를 이리저리 옮겨 딱 앉았는데, 뒤에서부터 달려오던 프랑스 아저씨가 자기 자리였는데 놓쳤다는 아쉬운 탄성을 질렀다. 아저씨의 아쉬운 표정을 보자, 몇 초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난 그냥 프랑스 아저씨에게 자리를 양보하기로 결정 내렸다.

 

 

그랬더니 아저씨가, 

 

프랑스 아저씨 : "어꾼 쯔란(캄보디아어;고맙습니다.)." ㅎㅎ

 

나 : "괜찮아요. 모두가 다 연주자 손 보려고 이 자리에 앉기를 원하는 것 같아요."

 

 

 

 

이렇게 하여 나는 프랑스 아저씨와 연주 시작 전까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프랑스 아저씨(이후 그냥 '프') : "어디 출신이에요?"

 

나 : "한국이요."

 

프 : "아, 그럼 당연히 남한이겠죠? 알다시피 캄보디아와 북한은 아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었죠." (북한이 싫은 듯 투덜대심)

 

나 : "아.. 네."

 

프 : "한국에서 캄보디아에 많이 원조를 하나요? 원조액이 얼마나 되죠?"

 

나 : "그렇다고는 알고 있는데, 전 정치 분야의 전문가도 아니고.. 원조액까지는 정확하게 잘 모르겠어요."

 

프 : "북한의 바로 전 지도자(KJI)가 캄보디아의 현 총리(HS)와 똑같은 짓을 했었죠. 얼마 전 서거한 시하누크는 캄보디아의 1960~1980년대 시절, 현 총리(HS)와 똑같은 행동을 했어요. 시하누크는 그 시절의 HS였죠."

 

나 : "네..." (뭐라도 딱히 피드백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음)

 

프 : "그거 알아요? 시하누크는 아주 나쁜 사람이었어요. 예전에 캄보디아에 TV가 없던 시절, 극장에서는 영화 상영 전 뉴스를 틀어줬었는데, 그때 보여주었던 뉴스 장면은 손이 뒤로 묶인 죄수가 나무 막대기에 기대 서 있고, 시하누크의 명령에 따라 군인들아 발포하는 장면이었어요. 그렇게 시하누크는 국민들에게 공포감을 주었어요."

 

나 : "아, 그랬군요." (우리나라의 1970년대 시대와 비슷하다고 느꼈음)

 

(중략)

 

나 : "아저씨는 어디서 오셨어요?"

 

프 : "프랑스."

 

나 : "혹시 NGO에서 일하세요?" (캄보디아의 정치에 대해 해박하신 것 같길래)

 

프 : "RUPP(Royal University of Phnom Penh)에서 캄보디아의 Modern History를 강의하고 있어요. 난 1960년대, 1970년대에도 캄보디아에 있었어요." (캄보디아 역사에 대해 조사하고 연구하시는 분이라 캄보디아에 자주 오가셨던 듯)

 

나 : "아, 그러시군요." (대학 교수를 만나 왠지 모르게 반가움. 이 분과 관계를 맺으면 앞으로 많이 배울 수 있겠다 싶으면서 뭔가 새로운, 기분 좋은 일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듦)

 

프 : "캄보디아에서 무슨 일 하고 있어요?"

 

나 : "전 NGO에서 일하고 있어요."

 

(중략)

 

프 : "셀러리는 어떻게 받아요?"

 

나 : "이러이러해서 이렇게 받아요."

 

프 : "그럼 한국에서는 무슨 일을 하고 있어요?"

 

나 : "갓 대학 졸업하고 바로 NGO 일 하러 왔어요."

 

(중략)

나 : "클래식 음악을 정말 좋아하거든요. 캄보디아에서 흔치 않은 클래식 공연이잖아요."

 

프 : "클래식 음악에 관심이 많은가봐요?"

 

나 : "네! 사실 제 전공이 피아노거든요. 그래서 더더욱 연주자의 손놀림이 너무나 궁금해서 이 자리에 앉았어요."

 

프 : "오~ 피아노 전공자군! 크마에어 할 수 있어요?"

 

나 : "네. 아직은 조금밖에 못하지만 할 수 있어요."

 

프 : "그럼 캄보디아 어린이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가르쳐봐요. 국제학교나 대학교에서 피아노를 가르치고, 임금은 정부랑 협상하고!"

 

나 : "오~ 그거 정말 좋겠네요! 기회가 된다면 정말 해보고 싶어요."

 

프 : "그거 알아요?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략했었죠. 1990년대에는 베트남 군인들이 캄보디아에 있는 모든 귀중한 악기(서양악기 포함)를 다 사이공으로 가져가서 그 시절엔 캄보디아에 피아노가 단 한대도 없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좀 나아진 편이죠."

 

 

.

.

 

안 그래도 연주를 들으러 온 상당수의 캄보디아 어린이들 무리를 보면서, 이들에게 서양의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자체가 참 값진 일이라는 생각을 했었고 그 무리를 이끌고 온 한 서양인 선생님이 대단하다는 생각하며 대리 만족감 및 간접적 희열을 느끼고 있던 차, 프랑스 아저씨로부터 캄보디아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교육 제안을 받으니 갑자기 피가 들끓는 느낌이 들었다. 서양의 클래식 음악이 세계 최고의 음악은 아니지만, 캄보디아 사람들이 그동안 접해보지 못했던 새로운 음악 감상 및 경험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그 자체가 참 exciting하고도 고무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든 것이다. 더더욱 음악이 어린이들의 정서에 좋은 영향력을 미치고, 악기를 배우고 연주하면서 한단계 한단계 성취감을 맛보는 것이 어린이의 성장 및 발달에 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프 : "그런데 음악제 브로셔랑 오늘 브로셔 내용이 다르네요."

 

나 : "어? 그러고 보니 진짜 그러네요. 전 오늘 음악회에 온 큰 목적 중 하나가 Ravel의 Le Tombeau de Couperin(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을 듣기 위해서였는데.. 그 음악이 빠져 있어요."

 

프 :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도 그렇고, 쿠프랭의 신비한 방벽(Les Barricades Mystérieuses) 역시 프랑스에서 very popular한 음악이에요." 

 

 

연주회 프로그램 중에는 프랑스 작곡가가 몇몇 있었는데, 프랑스 아저씨는 자기네 나라 음악이 연주되는 것 자체에 자부심을 느끼는 듯 했다. 그리고 한국에선 거의 클래식 전공자들만 알고 있는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이 프랑스에서는 아주 유명한 음악이라니... 17~19세기의 유럽.. 그 시절의 자기 나라의 음악이 국제적 음악제에서 연주된다는 것은 과연 어떤 느낌일까?그것은 마치 내가 이렇게도 말할 수 있는 그런 느낌일까?....

 

" '종묘제례악'은 한국에서 누구나 알고 있는 정말 대중적인 음악이죠."

 

 

 

 

프랑스 아저씨와의 이런저런 수다 중 시작된 연주회.

 

이 날의 연주자는 독일의 한 대학에서 피아노를 강의하는 피아니스트였는데, 그의 피아노 소리는 그의 손가락만큼이나 참 섬세하고, 민감하고, 여성적이었다. 5일간의 음악제 동안 많은 곡을 소화해야 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테크닉적으로는 부족함이 많이 드러났다.

 

그래서 '좋은 손을 가졌는데, 테크닉이 좀 안 받쳐주니 안타깝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차, 그러나 연주회에 온 서양인들이 음악을 감상하는 관점은 너무나 다른 느낌이었다. 서양 사람들은 연주자의 테크닉적인 측면보다는 음악적인 측면, 작곡가의 곡 그 자체에 집중을 많이 하고 있었다. 내 옆에 앉은 프랑스 아저씨도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정말 amazing하지 않냐, 소리가 정말 colorful하다, 연주자가 정말 talented 하다, 등등의 찬사를 보냈다. 그리고 프랑스 아저씨를 비롯, 나의 좌측에 앉아있던 또 다른 서양인 아저씨와 내 뒤에 앉은 다른 서양인들이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니, 'OO 작곡가는 이러쿵 저러쿵' 이런 이야기들이었다.

 

문화적 충격. 이래서 유학이라는 것이 필요한 것이구나..ㅠ.ㅠ 한국의 서양음악 교육 시스템은 작곡가의 음악적인 측면, 음악의 감상적 측면보다는, 연주자의 기술적인 측면 즉, 테크닉적인 측면을 중시한다. 그러니 이는 자연스레 음악을 작곡한 작곡가보다는 연주자가 더욱 돋보이는 결과를 가져온다. 한국에 와서 마스터 클래스를 하는 유럽의 음악가들 중 열에 일곱은 이런 말을 남기고 간다.

 

"한국 학생들은 손놀림, 테크닉이 정말 뛰어나군요. 그러나 진짜 음악이 무엇인지는 하나도 모르는 것 같아요. 음악을 구조적으로 해석하거나 소리의 color를 표현하는 방법, 그리고 feeling이 너무나 부족해요."

 

서양 음악가들이 이런 말을 할 때마다 나도 이에 정말 많이 공감하곤 했었지만, 한국의 서양음악 교육 시스템 내에서만 교육을 받고 자란 나는, 나도 모르게 연주회에 가서 음악을 감상할 때 연주자의 음악적인 측면보다는 기술적인 측면에 더 집중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휴... 깨달았으니 얼마나 다행이야!! ㅠ.ㅠ)

 

어쨌든 인상적이었던 것을 조금 더 이야기 해보자면, 서양인들이 하는 대화를 들어보니 그들은 어려서부터 자기네 고전음악을 감상하고 연주하는 것을 기본 교양으로 배우고 자랐다는 느낌이 들었다. 클래식음악 전공자들만 연주회에 왔을 리는 없었을텐데, 서양인들이 속닥속닥하는 소리를 들어보니 하나 같이 다들 전문가 수준. 작곡가에 대한 지식과 그 음악에 대한 지식, 그리고 음악을 감상하는 관점 및 방법이 정말 클래식 전공자 못지 않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프랑스 아저씨를 비롯, 내 좌측에 앉아있던 아저씨는 주최측에서 리플렛에 잘못 적어놓은 J.S.바흐의 출생연도까지 지적해내는 내공을 선보이기까지....ㄷㄷㄷ

 

동시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와.. 이것이 소위 '선진국'과 '후진국', '부자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라는 것인가. 서양 나라의 어린이들은 어려서부터 '문화 교육'을 받고 자라는 데 비해, 당장의 생계유지가 시급한 서민들의 비율이 높은 캄보디아와 같은 개발도상국들의 어린이들은 아주 기초적인 교육의 혜택조차 받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한데....

 

그러고 보니 얼마 전에 facebook (정책공감 '폴리씨') 에서 접한 한 이미지도 떠오른다.

 


 

한국- 유럽의 다른 중산층 기준

 

 

 

△ 대한민국 중산층의 기준

 

1. 부채없는 아파트 30평 이상 소유

2. 월 급여 500만원 이상

3. 자동차는 2,000cc 급 중형차 소유

4. 예금액 잔고 1억원 이상 보유

5. 해외여행 1년에 한차례 이상 다닐 것

 

최근 SNS에서 빠르게 확산되고 있는 '중산층 별곡'...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죠? 다른 나라의 중산층 기준 한번 보실까요?

 

 

 

프랑스의 중산층 기준

(퐁피두 대통령이 Qualite de vie ‘삶의 질’에서 정한 프랑스 중산층의 기준 ) 

 

1. 외국어를 하나 정도는 할 수 있어야 하고 

2. 직접 즐기는 스포츠가 있어야 하고 

3. 다룰 줄 아는 악기가 있어야 하며 

4. 남들과는 다른 맛을 낼 수 있는 요리를 만들 수 있어야 하고 

5. '공분' 에 의연히 참여할 것 

6. 약자를 도우며 봉사활동을 꾸준히 할 것

 

 

 

영국의 중산층 기준

(옥스포드 대에서 제시한 중산층 기준 ) 

 

1. 페어플레이를 할 것 

2. 자신의 주장과 신념을 가질 것 

3. 독선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 

4. 약자를 두둔하고 강자에 대응할 것 

5. 불의, 불평, 불법에 의연히 대처할 것

 

 

 

어떠세요? 많은 생각이 머릿속을 지나갑니다. 

 

머릿속이 복잡한 여러분들을 위해 문화체육관광부에서 진행하는 [1인2기 운동] 알려드립니다. 문화 분야, 스포츠 분야에서 각각 취미 1가지씩 갖자는 운동인데요. 

 

창의적인 여가활동으로 건강한 삶을 영위하는 이런 걸 해 나가야 정말 진정한 중산층으로, 더 나아가 선진국으로 가는 길이지 않을까 합니다. 

 

(이미지 출처 : 조선일보)

 


 

Anyway, 연주회를 통해서 문화권에 다라 음악을 감상하고 대하는 관점 및 사고방식이 정말 다르다는 것을 새삼 깨닫고 느낄 수 있었다.

 

 

인터미션. 잠시 휴식 시간.

 

 

위 사진 속 캄보디아 청년은 프랑스 아저씨가 Parkway 헬스클럽 수영장에서 만난 청년인데, (원래 인상 괜찮은데 사진이 좀 무섭게 나옴 ㅠ.ㅠ) 대학에서 디자인을 공부하고 졸업한 뒤 현재는 Intercontinental Hotel 바로 근처의 한 드레스 샵에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고 했다. 프랑스 아저씨와 캄보디아 청년은 수영장에서 만난 이후 사석에서도 종종 이렇게, 아주 자주는 아니지만 만남을 갖는다고.

 

 

 

 

 

청년은 연주회 내내 디자인을 멈추지 않았다. 덕분에 그가 연필로 쓱쓱- 스케치 하는 소리가 연주 감상에 방해가 되긴 해서 조금은 못마땅 했었다. :-(

 

그러나 청년이 스케치한 작품들을 보니 감탄사가 절로..!! 와! 프랑스 아저씨는 캄보디아 청년에게 나를 위한 드레스를 디자인 해주라고 계속 push.. ㅎㅎ 그래서 지금 청년이 스케치 중인데, 서양인 교사를 따라 음악을 들으러 온 어린이 그룹이 청년의 주변에 모여들어 급관심을 보임. ㅎㅎ

 

아이들은 역시 순수해서,

 

"얼굴에 눈.코.입이 없잖아요."

"이건 이래요. 저건 저래요."

"한국 언니한테 사랑한다고 써요."

 

등등 청년에게 훈수 아닌 훈수를 두었다. ㅋ

 

 

 

 

그리하여 완성된 나의 드레스. 내가 high waist를 선호한다고 하자 이런 드레스를 디자인 해주었다.ㅎㅎ 5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 동안 쓱쓱 그렸다. 가슴 장식에는 크메르 스타일이 표현되어 있다.

 

David이 나를 3시간 여 스케치 해주었던 경험을 제외하고는, 누군가 나를 위해 그림을 그려준 것이 이번이 두 번째. 정확히 말하자면, 누군가 나를 위해 드레스를 디자인 해준 것이 이번이 처음. 왠지 부끄럽기도 했지만 기분이 좋았다.

 

 

 

 

다시 시작된 2부 연주회.

 

 

이 날의 연주 프로그램은 서양의 건반악기 음악의 발달사를 보여주는 것이었다. Sweelinck의 서양 르네상스 시대 음악부터, Buxtehude의 초기 바로크 음악, 음악사에서 프랑스 음악의 전성시대를 선사한 Rameau의 음악, 후기 바로크 음악 양식과 Galant style을 엿볼 수 있는 Scarlatti 음악과 Soler의 음악까지.

 

음악제 주최측에서는 Scarlatti가 이 날의 하이라이트인 듯 글을 써놓았지만, 개인적으로는 Soler의 Fandango가 단연 으뜸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원래 이 곡은 오르간 음악이지만 피아노 특유의 음색으로 듣는 느낌이 참 색달랐고, 테크닉적으로 무척 어려운 곡이어서 연주자가 좀 힘들어보이기는 했지만, 연주자가 Fandango에 대한 구조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연주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이 날은 연주 프로그램이 일부 변경되어서 그토록 고대하고 있었던 라벨의 '쿠프랭의 무덤'을 들을 수 없어 참 아쉬웠지만, 대학 시절 [피아노 문헌] 수업에서나 접할 수 있었던 쿠프랭의 Les Barricades Mystérieuses 와 Le Tic Toc Choc, 그리고 Soler의 Fandango를 실황으로 들을 수 있어서 어찌나 행복했던지! 

 

서양음악에 대해 프랑스 아저씨, 서양인들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듣고 있다보니, 내가 좋아하던 [피아노 문헌] 수업 시간과 그 수업을 담당했던 강사님 생각이 났다. 한국의 서양음악 교육은 '연주'에 너무나 많은 비중이 실려있다 보니, 음악을 전공했다고 하는 사람들도 정작 서양음악에 대한 개념 및 지식이 부족한 경우가 허다하다. 난 음악에 대한 지식적 허기와 갈증을 느끼고 있는데, 우리학교를 포함한 타 음악대학들의 커리큘럼은 예술고등학교에서나 배울법한 음악의 기초적 수준에 그쳐있는 경우가 허다하여 실망감을 느꼈었다. 생각있는 음대 학장님들에 의해 'music business', 'music therapy' 등의 과목이 개설되어 있는 학교들도 있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입문' 정도일 뿐. 새롭고 혁신적인 과목의 도입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음악을 이끌어나갈 차세대 음악 전문인 양성의 측면에서 기본적인 수업을 하더라도 좀 더 질적인 수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난 4학년이 되어서 바뀐 레슨 선생님께 이런 이야기를 드렸었다.

 

"선생님. 저는 음악의 역사적 배경의 이해를 바탕으로 한 [피아노 문헌]과 같은 수업이 너무나 재밌어요. 레슨 시간 때에도 선생님과 함께 그런 음악적인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배우고 싶어요."

 

그러나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 하셨지.

 

"그래. 나도 그런 것을 너무나 좋아하지만, 레슨만 하기에도 시간이 부족하단다."

 

휴휴.. 한숨 한숨...

 

예술고등학교를 다닐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연주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는 강사들의 레슨에 난 허기를 느꼈었고, 그 허기를, '피아노 음악', '월간 객석', 'string' 등의 잡지, 국악이 나오는 한 두시간을 제외하고는 24시 내내 클래식 음악이 방송되는 KBS FM 93.1, 그리고 '사람들이 클래식 음악을 좀 더 쉽게 이해하고 친근하게 접했으면 좋겠어.'라는 생각으로 중학생 때부터 스스로 운영해오던 인터넷 음악 동호회로 달랬었다. 허기를 달래기 위해선 이렇게라도 독학 아닌 독학을 했어야만 했다.

 

어쨌든 이런 갈증을 느끼던 나에게 대학에서 유일하게 그 목마름을 해결해 주었던 것이 [피아노 문헌] 수업이었고, 그 수업은 테크닉 위주의 레슨으로 한동안 방황하고 있던 나의 마음에 신선한 바람을 불러 일으켰다. 나는 이 수업을 통해 음악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는 것이 연주자에게 얼마나 필수적인 것이며, 그것이 또한 음악공부를 얼마나 더 한층 풍요롭게 만드는지를 느끼고 깨달을 수 있었다. 음악대학의 커리큘럼은 실력 있는 전문 연주자 양성뿐만이 아닌, '음악적 지식과 교양을 갖춘' 연주자 양성에 좀 더 비중이 실려야 하며, 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더 많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야기가 길었는데, 서양음악을 감상하면서 서양음악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보니 갑자기 또 음악적 허기가 물 밀듯 밀려왔다. [피아노 문헌] 수업을 들으면서 꿈 꾸기도 했었던 서양 음악사 공부를 위한 유학이 또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공부라는 것이 무척이나 그리운 요즈음이다. 공부, 공부, 또 공부하고 싶다. 공부하고 연구하면서 사는 인생. 또 그 연구가 옳고 합당한 일에 쓰인다면 얼마나 보람차고 값질까!

 

프놈펜 국제음악제 참석이 계기가 되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11 Nov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