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캄보디아 이야기 84 | 분별없이 들이대는 미국 -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불안한 미얀마 방문 | 미국의 캄보디아 대규모 폭격 사실(1965년)
Olivia올리비아 2022. 1. 7. 19:35분별없이 들이대는 미국 - 오바마 미 대통령의 불안한 미얀마 방문
이병진 교수
기사 입력: 2012/11/13 [15:57] 최종 편집: ⓒ 자주민보
이 글은 인도 유학시절 이북을 다녀왔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국가보안법 위반)를 받고 전주교도소에 수감 중인 이병진 교수가 편지로 보내온 기사입니다. _ 편집자
4년 전 미국의 대통령에 당선된 오바마는 “핵 없는 세상을 만들겠다"라며 사기를 쳐서 노벨 평화상까지 받고는 오히려 아시아 지역의 핵 확산 공포와 긴장을 고조시켰다. 재선에 성공한 오바마는 이번에는 그의 미얀마 방문을 놓고 미국이 무슨 대단한 아시아의 정치 발전에 기여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고 있다.
백악관의 언론 비서인 제이 카네이(Jay Carney)는 오바마는 “진행되고 있는 버마의 민주적 이행을 고무하기 위해서 시민사회에게 말하려는 것이다"라며 미국이 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국가처럼 보이게 하려고 분칠까지 하고 있다(Washington <AP, "Obama to make historic Myanmar visit, The Korea Herald, Saturday, November, 10, 2012).
그러나 핵 없는 세상이 공허한 말장난이었듯이 민주주의를 들먹이며 미얀마 방문을 외치는 소리는 공허하기만 하다. 그저 힘자랑만 할 줄 알았지 머릿속이 텅 비어서 똥, 오줌도 가리지 못하고 들이대는 미국의 앞날이 불안하기만 할 뿐이다.
미얀마, 7년 전부터 민주 정부 이양을 준비하다.
인도의 맘 모한 싱 수상은 펀잡 대학교의 경제학과 교수 출신이다. 싱 수상의 측근들은 2006년 11월에 펀잡 주도인 찬디가르에 있는 싱 수상이 의장으로 있는 싱크탱크인 ‘농업과 산업발전연구소중심(Centre for Research in Rural and Industrial Development)'에서 국제 학술대회를 열었다. (The Fifth Haksar Memorial Seminar-cum-Lecture Series on Peace and Development, from 4-11 November 2006) 필자도 한국의 외교통상부를 통해 초청을 받고 그 국제 학술대회에 참석하였다.
이때, 필자는 미얀마 외교부 대표 단장인 파우 리윈 세인(Paw Lwin Sein)과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에 따르면 미얀마 정부는 민간에게 정권을 이양하기 위해 5개년 계획을 세워 진행할 거라고 했다. 미얀마의 고위급 관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민주 정부 이양 계획을 갖고 인도의 고위 관료들과 협의를 하고 있었다.
인도 입장에서도 앗삼, 마니뿌르 같은 소수민족 독립운동이 끼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미얀마의 정치 안정에 관심이 크다. 이런 배경에서 인도가 방글라데시-미얀마-태국-싱가포르를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했다. 중국 역시 변화를 바라는 미얀마 정부의 의중을 읽고 미얀마-중국-라오스-베트남을 연결하는 고속도로 건설을 제안했다.
이처럼 미얀마는 2005년경부터 나날이 사회가 변화하고 경제가 발전하는 동남아 국가들에 자극을 받아 내부적으로 변화를 준비하였다. 그런 일들을 주변 국가들과 긴밀히 협의를 하였다. 그러니까 최근의 미얀마의 변화하는 모습은 미국이 미얀마의 경제봉쇄를 풀고 민주주의 발전을 도와주어서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다.
오히려 미얀마가 발전을 위해서 적극적으로 여러 국가들과 협력해 나가는 동력은 내부에 있었던 것이다. 미국은 별 의미도 없고 무용지물이 된 미얀마의 경제봉쇄를 풀고 생색을 내려는 것이다.
미얀마의 변화를 환영하고 적극적으로 도운 것은 동남아시아 국가연합(ASEAN's) 이었다. 동남아시아 국가들은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지역에서의 협력을 강화시킬 필요성을 느꼈다. 이런 맥락에서 미얀마의 동남아시아국가연합 참여와 협력을 독려하고 도왔다.
이와 같은 노력의 결과로 2012년 11월 5일 라오스의 비엔티안에서 개최된 아시아-유럽 정상 만남(The Asia-Europe Meeting : ASEM)에서 경제 위기에 놓인 유럽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안보와 금융협력 강화 방안을 심도 있게 논의하여 성과를 내었다. 이런 흐름을 확대 발전시키기 위해서 유럽 국가들이 미얀마의 경제봉쇄를 풀기로 결정했다.(Editorial, "ASEM forum is a chance to foster Cooperation", The Nation, Thailand, The Korea Herald 2012년 11월 9일에서 재인용)
그러니까 오바마 대통령이 11월 17~20일 미얀마에 가서 ‘최고의 외교정책 업적(a marquee foreign policy achievement)'이라고 떠들어봐야 뒷북치는 일이다.
또한 11월 5일 라오스에서 개최된 아시아-유럽 정상 만남(ASEM)에 참석한 러시아의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총리는 “아시아 태평양 지역에서 자국 진지를 강화하기 위해서 모든 것을 다 할 것”이라고 하여 동남아시아에서 러시아의 영향력을 과시하였다. (러시아의 소리, “러시아는 아태지역서 자국진지 강화예상”, 2012년 11월 5일).
그러면서 러시아는 실제로 라오스의 경제발전과 군사교류를 강화하기로 했다. (RIA Novosti, "메드베데프, 러시아와 라오스 관계가 성공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2012년 11월 5일) 이와 함께 러시아는 미국이 꺼려 하는 베트남의 원자력 발전소 건설과 베트남과의 경제협력을 강화하기로 하였다. (김권용 특파원, “베트남·러시아, 원전 등 에너지 협력 확대, 연합뉴스, 하노이 2012년 11월 7일). 이와 같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위상이 높아지자 아시아-유럽 정상 만남(ASEM)에 노르웨이와 스위스랜드, 방글라데시가 새롭게 가입하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11월 17~20일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미국이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정상을 불러 모아 개최하는 동아시아 정상회담은 공허할 뿐이다.
미국, 캄보디아에서 60만~80만 명을 죽이다.
미국은 베트남 전쟁이 있었던 무렵에 캄보디아(캄푸치아)가 베트남 공산주의자들에게 캄푸치아 동부지역에서 활동 공간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1965년 5월 대규모 폭격을 하였다. 미국은 1969년~1973년 사이에 B-52폭격기로 총 3,630회 출격하여 54만 톤의 폭탄을 쏟아부었다. 이는 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이 일본에 투하한 폭탄의 3배나 되는 어마어마한 양이다. 이런 미군의 폭격에 사망한 캄보디아 사람들은 최소 60만~80만 명이 될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은 1970년 4월 2만 명의 미군을 캄보디아에 보내 미국의 꼭두각시인 론놀 장군의 쿠데타를 도와 시아누크 정권을 전복시키고 크메르 공화국을 세웠다. 이런 미국의 군사적 지배는 크메르 민족의 저항을 불러일으켜 크메르루주(캄푸치아 공산당) 혁명의 토대가 되었다. 그러나 크메르루주의 집권 기간은 1975년 4월부터 1978년 12월 베트남 공산군이 침공하여 밀림으로 쫓겨날 때까지 3년 8개월에 불과했다.
그 후 베트남군이 1989년 10월 철수하였지만 캄보디아의 내전은 계속되었고 1991년 10월 종식되었다. 그리고 1992년 3월 45개국 22,000명으로 구성된 유엔 평화유지군이 파병되었다. 1993년에는 입헌군주제로 부활되어 캄보디아 왕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1998년 4월 폴 포트가 사망함으로써 크메르주가 완전히 와해되었고, 그 해 1998년 7월 총선거를 하여 훈센 총리가 현재까지 장기집권을 하고 있다.
이처럼 크메르 민족은 1960년대에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무자비한 폭격과 학살로 생지옥에서 살고 있다. 미국이 B-52폭격기로 폭격하여 무려 최소 60~80만 명에 이르는 크메르 민족을 학살하였음에도 보상은커녕 사과 한 마디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도적이 매를 드는 것처럼 자신들이 저지른 학살과 만행을 크메르루주(캄푸치아 공산당)에 뒤집어씌우고 있다. 그래서 미국은 유엔을 이용하여 2006년 7월 ‘캄보디아 크메르루주 국제 법정’을 만들어 양민 학살의 모든 책임을 폴 포트가 이끄는 크메르루주에게 뒤집어씌운 채 교묘하게 빠져나가려 하고 있다.
2012년 11월 17~20일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은 그런 미국의 속셈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얼마 전에 미국의 군사 쿠데타로 갖은 수난과 수모를 당한 노르돔 시아누크 전 캄보디아 국왕이 서거했다. 미국은 자신들과 껄끄러운 관계였던 시아누크 전 국왕의 서거에 환호하며 11월 17일 캄보디아에 달려갈 것이다. 그러나 전 국왕의 서거에 깊이 슬퍼하고 애도하고 전 국왕을 그리워하는 캄보디아 대중들의 가슴속에는 미국의 만행들이 각인되어 있다.
캄보디아 대중들은 미국 때문에 불행한 삶을 살았던 전 국왕과 자신들의 삶을 동일시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들과 똑같이 외세에게 핍박받은 시아누크 전 국왕의 서거를 슬퍼하고 있다.
미국은 이렇게 전 국왕의 서거를 슬퍼하는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진심 어린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치부를 캄보디아 사람들에게 모두 떠넘기려고 오바마가 캄보디아를 방문하려고 하는 것이다. 과연 캄보디아 사람 가운데 어느 누가 그의 캄보디아 방문을 환영하겠는가?
캄보디아에서 최소 60~80만 명을 죽이고 친미정권을 세우기 위해서 군사 쿠데타를 지원했던 미국이, 이제 와서 미얀마 군사독재 정권을 비판하면서 민주주의 운운한다면 지나가는 소가 웃을 것이다.
자신의 앉을 자리 설 자리도 분별하지 못하는 미국이 오바마가 재선했다고 막 들이대는 첫 외교 행보가 불안한 이유이다.
지금, 민주주의는 미국에 의해서 조롱당하고 있다. <끝>
대통령 취임 제2기를 맞이한 미국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의 아시아로의 첫 외교 순방을 두고 이러한 해석도 있을 수 있구나. 새롭다. 역시 세계사를 공부하고 알아야 현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한 현상을 다각도로 바라보며 세계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안목을 가져야겠다.
그런데 오바마의 캄보디아 방문을 통해 나라의 병든 부분이 치유되길 바랐던 캄보디아 사람들은 이런 캄보디아와 미국 사이의 정치적 배경에 대해 사실적으로 알고 있는 걸까? 크메르 루즈 정권과 현 정권에 대한 불만과 불신이 깊은 캄보디아 사람들인데, 이런 정권들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제대로 알았더라면 과연 그래도 미국 대통령의 캄보디아 방문을 환영했을지 새삼 궁금해진다.
27 Nov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