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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 3-1 | 다르질링(Darjeeling) 가는 길 셋째 날 | 2년만에 다시 찾은 콜카타(Kolkata) | 작은 소동
Olivia올리비아 2021. 12. 2. 13:37
인도 남부 Bangalore(뱅갈로르)에서 Darjeeling(다르질링)으로 가고 있는 3일 째. 우리 셋은 기차 좌석이 없는 3AC waiting list로 표를 끊었지만, 기차를 탄 그제 저녁에 주어진 자리는 감사하게도 2개의 침대.
자면서 새벽에 계속 깼다. J랑 SL(Side Lower), 한 침대에서 자면서 비좁은 자리에서 구부려 자니 무릎이 아팠다.
새벽에 Kolkata(콜카타)의 Howrah Junction(하우라 정션, 콜카타에 있는 기차 역 중 하나)도착이라 그런지, 인도 사람들도 이른 새벽부터 일어나 화장실을 왔다갔다 분주하다.
5시쯤 J를 깨워 기차에서 파는 Rs.5 커피를 사서 빵과 함께 먹고, Howrah(하우라) 역에 언제 도착할까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창 밖을 바라본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기차 연결 통로에 있는 문간에 서서 풍경을 바라본다.
언뜻 보면 우리나라 기차를 타고 달릴 때 볼 수 있는, 우리네 시골 같기도 하지만...
이렇게 이국의 나무들이 지나가니, 이 곳이 '인도구나.' 하고 느끼게 된다.
2008년에 콜카타.. (물론 콜카타에서 좀 떨어진 시골 마을이었지만..)를 찾았을 때도.. 마을 특징 중 인상 깊었던 것이, 사람들 사는 집들과 아주 근접하게 밀집해 있는 물 웅덩이였는데, 확실히 콜카타에 다가올수록 물 웅덩이가 많이 보였다.
아니, 물 웅덩이가 점점 많아지는 풍경은 나로 하여금, '아.. 이제 콜카타가 가까워지는구나.' 하고 짐작케 한다.
인도는 정말 물이 없는 건조하고 황량한 지역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물이 정말 풍부한 지역도 있다.
큰 땅덩어리, 다양한 풍경들... 인도는 알면 알수록 더 깊이 빠져들게 만드는.. 더 공부하고 싶고 배우게 만드는 매혹의 나라이다.
Kolkta(콜카타)가 다가올수록 확실히 우중충한 도시 분위기가 연출된다. 길가의 거지들.. 철도의 거지들.. 천막촌.. 빈민촌... 까마귀.... 나에게 있어 콜카타는 '회색'의 도시로 기억된다.
이 정돈되지 않은 풍경들.. 길가의 오물들... 그러나 이걸 보고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반갑다고 해야 하나..
남들은 인도의 '인'자만 들어도, "아! 거기 정말 더러운 나라", "거기 위험하지 않아요?", "종교인들이 많아서 무서워요." 라는 말들을 쏟아내는데.. 인도의 아무리 더러운 모습까지도 사랑하는 스스로를 보면.. 내가 인도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느끼게 된다.
왜, 그렇다고들 하지 않는가. 진정한 사랑이란 상대의 추한 모습까지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고...
오전 8시에 Kolkata(콜카타)에 도착했다. 약 2시간이 연착 되었지만, '왜 이렇게 기차가 늦게 도착해?' 하는 불평이나 불만 따위는 없었다. 인도인들도 초조해 하거나 불안해 하는 기색이 전혀 없다. 그냥 창 밖을 바라보고 있다보니 어느새 예상 도착 시간보다 2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을 뿐이었다. 오히려 인도 기차가 연착하기로 명성이 자자하다고 해서.. 2시간'밖에' 연착이 안 됐어? 하는 느낌마저 들었다. 그냥.. 이렇게 또 다시 Kolkata에 발을 딛게 된다는 것이 감사하기도 했고.. 내가 정말 이곳에 온게 맞나.. 싶게 얼떨떨하기도 했다.
우리가 탔던 3AC의 B3 객차.
역은 이른 아침임에도 수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8시면 인도인들에게는 이른 아침은 아닌가.. ㅎㅎ;
누군가에게는 도착지가 되는 이곳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여행을 시작하는 출발점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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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lkata(콜카타)의 Howrah(하우라) 역에 도착. 입구를 잘 찾아서 나가니 노란 택시들이 즐비하다. 역시나 인도 택시 기사나 릭샤꾼들이 우리에게 흥정을 하려 다가온다. 우린 초짜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여 당하지 않으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고 위풍당당하게 걷는다.
<인도 100배 즐기기> 책에서 봤던 pre-paid Taxi ticket을 끊는 부스가 다행히 바로 보인다. 그래서 일단 중심가인 central metro station까지 티켓을 끊는데... 가이드 북에서 봤던 것보다 약간 요금이 더 비쌌다. 이거 우리가 바가지 쓰는건 아닌가 싶어서 pre-paid 부스에 대고 여러 번 이 가격이 맞냐고, 아니지 않냐면서 옥신각신(이라고 할 것까진 없었지만..ㅎㅎ) 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조합의 정해진 요금이 틀림 없다는 확신이 서서 노란 택시에 올라탔다.
그렇게 택시를 타고 Howrah(하우라) 철교를 건너는데... 도시 분위기는 정말 혼돈 그 자체...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정신이 없고 시끄러웠다. 신호등이 있어도.. 차선이 있어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여기 빵빵- 저기서 빵빵- 오토바이, 릭샤, 자전거.. 택시.. 그 사이를 비집고 걸어다니는 사람들... 정신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안에서도 분명 질서가 있다는 것이다. 차선과 신호등을 안 지키는 것 같아도, 어느 곳 하나 사고 나는 곳이 없고, 어느 누구도 먼저 가려고 안달 나 있지 않다.
혼돈 속의 질서.... 그리고 조화... 이 수많은 풍경들의 이미지는 마치 Collage 꼴라쥬처럼 내 머리와 가슴 속에 각인된다. 나는 이 정신 없고 우중충해 보이는 도시가, New york이나 Tokyo 같은 깔끔하고 정갈한 도시보다 어쩐지 더 마음에 든다. 정신이 없고 혼잡하지만, 그 속에 에너지가 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물씬 풍기는 이 도시.
택시가 잠시 섰다. 문득 차창 밖으로 거리의 음식 노점상들이 보인다. 이렇게 매연 가득한 길가에서 음식이 참 비위생적이게도 보이지만... 그러나 사람들의 주린 배를 채워주는 Chapati(차파티)와 따뜻한 Chai(짜이) 한 잔은... 오늘 하루도 기적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 주는 힘과 원동력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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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를 타고 우린 그렇게 Central metro(센트럴) 역에 도착했다. 우린 Darjeeling에 가기 위해, Kolkata의 또 다른 기차역인 Sealdah Railway statin에서 오늘 밤 11시 기차를 타야 했다. 그래서 하루 정도 콜카타에서 시내 관광이 가능했고, 무거운 배낭을 메고 다닐수는 없었으므로 배낭을 맡길 수 있는 곳이 필요했다.
그러나 센트럴 역은 생각보다 작았고, 배낭 맡길 사물함이 안 보였다. 그래서 metro를 순회하는 경찰이나.. 직원들한테 사물함이 있는 곳을 물어봤지만.. 사물함이 없다는 대답도 대답이지만.. 더 답답했던 것은 통하지 않는 언어였다. 아.. 대도시라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많을거라 생각했는데.. 그들의 신분이 낮았던 것일까?
Paul 오빠의 말에 의하면 배낭 맡기는 곳은 어디에나 있다고 했었는데.. 센트럴 역에는 배낭을 맡길 곳이 없어, 혹시 다른 역에는 사물함이 있을까 싶어 지하철을 타고 Park street station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곳에도 역시 짐 맡길 곳은 없었다. 그래서 Indian Museum 쪽으로 나가서 여행자 거리인 Sudder street(서더 스트리트)로 이동, 서더 스트리트가 시작되는 그 모퉁이에서 경찰 초소 같은 것을 발견했다. 그래서 그 안에서 근무를 하는 아저씨한테 luggage room 시설이 근처에 있냐고 묻자.. 역시 영어를 못 하시는지.. 뭐라뭐라 자기만의 언어로 하긴 하는데... 나도 못 알아듣겠다..ㅠ.ㅠ
(인도 사람들은 참 독특한 것이.. 꼭 어딜 가서 뭘 물어보면 모른다면서 고개를 휙 돌리는 사람은 없었다는 것이다. 다들 도와주지 못해 안달이었다고 해야 할까나. ^^ 때로는 잘못된 정보로 인해 낭패를 보는 경우도 있었지만, 이렇게 누군가가 도움을 요청하면 거짓 정보를 주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도우려 하는 그들의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시점(2011년)에서, 최근 읽고 있는 네덜란드에 관한 책 <루르몬트의 정원>을 보면, 위에 언급한 것에 관련하여 '직설화법'으로 유명한 네덜란드인들의 생각이 나온다. 책을 잠시 발췌해 보자면...
오케스트라에서 지휘자로 일하는 마르셀은 얼마 전 중국 상하이 공연을 하고 돌아왔는데, 초고층 건물, 네온사인과 매연으로 뒤덮인 도시가 흉물 같았다는 인상을 들려주었다. 좋지 않은 경험이 있었던 것인지, 아시아인들은 가식적이라는 뜬금없는 말도 한다. 거리에서 길을 물으면 모른다고 솔직히 답하지 않고, 꼭 아는 것처럼 시간을 끌다가 결국은 엉터리 정보를 준다는 것이다. 마르셀의 불만에 대한 태국에서 온 아란과 티키의 변론은, 그건 그들이 외국인에게 길을 모른다 말하기가 미안하고 어쨌거나 도와주려는 마음 때문이라고 한다. 태국에서도 쉽게 "난 몰라요." 하며 제 갈 길을 가지 않는단다.
"모르면 모른다고 바로 얘기하는 것이 도와주는 일 아닐까? 괜히 아는 척하는 건 친절이 아니라 불필요한 가식이라고." "상대방이 마음 다치지 않게 가능한 한 배려하는 게 예의지. 네가 말하는 건 정직함이 아니라 무람없는 거야."
네덜란드 대 아시아 문화 논쟁이 벌어졌고, 내게도 도와 달라는 눈빛을 보내온다.
"직설과 예의 사이에는 문화권마다 다른 스펙트럼이 있는 것 같아. 그래서 각자 몸담은 문화권에 따라 언 한쪽은 버르장머리 없어 보이기도 하고, 다른 한쪽은 솔직하지 않고 에둘러 말하는 듯 들리니까. 그 스펙트럼에서, 네덜란드는 가장 직설적인 쪽이고, 어떤 문화권은 그 반대편에 있기도 하고 그런 거 아닐까?" ( <루르몬트의 정원> 중에서...)
이 글을 읽다보면 네덜란드인도, 아시안인도 모두 공감이 간다. 문화적인 스펙트럼이라는 측면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인도인들이 낯선 이들에게 길 가르쳐 주는 데에 인색하지 않은 이유는, 그들이 지닌 독특한 종교관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특히 무슬림들은 단 한번 만난 인연에도 그 손님 접대가 참 극진한데, 인도 여행 중 만난 무슬림 친구에게 그렇게 아무 조건과 이유 없이 방문자들을 친절하게 맞는 이유를 물어보자, 자신의 집에 들어오는, 또는 자신에게 다가오는 모든 사람들을 '신'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네덜란드들의 또렷함과 명료함을 중시하는 직설화법.. 네덜란드에서 높게 친다는 덕목인 '다위데레이크'에 관하여도 말을 하고 싶지만, 인도 여행기를 쓰고 있는 이 와중에, 너무 먼 길을 가는 것 같으니 이 이야기는 다음에 더 하기로 하고... 오늘은 이쯤 해두기로 하자.)
어쨌든 서더 스트리트의 그 초입의 그 모퉁이에서 우리가 그렇게 뭔가를 묻고 있으니, 수많은 인도인들이 우리를 중심으로 모여들었다. 우리에게 아주 호감을 보이며 자꾸 "뭘 도와줄까? 뭐 찾아?" 하길래.. 처음에는 장사꾼들이 다가와서 장사하려는 수작을 부리는줄 알았는데, 대화를 나누면 나눌수록.. 이 거대 도시의 한복판에서 갈 길 몰라하고 있는 우리에게 순수한 의도로 다가오고 있는 인도인들의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어떤 한 사람이 호텔에 짐만 맡길 수 있는 곳이 있다고 하여.. 에어컨 빵빵 돌아가는 어느 호텔에 들어가서 물어보니.. 짐만 맡기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허름한 곳이나, 특급 호텔이나.. 어느 곳이나 짐만 맡기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그리고 지금이 아무래도 성수기는 성수기인지 대부분의 방들은 손님들로 꽉 들어차 있었다.) 무거운 가방을 메고.. 계속 발품을 팔다보니 'Hotel Maria'라는 곳을 가게 되었다. 가이드 북에도 나와 있는 꽤 이름 있는 곳인 것 같았는데, 이 곳에 우리 사정을 설명하니 Rs.150에 방 한 칸을 내어주고 짐을 맡길 수 있게 해준단다. (간단한 샤워도 허용) 그러나 막상 소개해 준 2개의 침대가 들어찬 방을 보니.. 호텔 건물 외부에 나와 있는.. 무슨 관리자가 사는 듯한 방으로 보였는데, 그래도 이렇게나마 짐을 맡길 수 있어서 어디냐. 싶은 심정으로 그냥 짐을 내려놓고 시내 관광을 하기로 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우린 G의 걱정으로 'real' 여권은 안전하게 센터에 놓고 오고, 여권 복사본만 여러 장 챙겨서 길을 떠났던 것이다! "진짜 여권 원본이 없어도 괜찮을까요?" 라고 연신 물었었지만.. 아이들이 여권을 잃어버리면 큰일이라며.. 복사본만 가지고 떠날 것을 주장하셨던 것.. 그렇게 G 말 철썩 믿고 떠난 여행이었는데... 이것이 발목을 잡을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다. (스스로가 하는 여행으로는 초짜였던터라.. '진짜' 여권 안 가지고 다니는 것이 얼마나 바보스러운 일인지 이때 깨달았다.) real passport가 없어서 우린 check in을 할 수가 없었고.. 또 다시 배낭을 메고 이곳저곳을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땐 정말 아무것도 몰랐다. 모든 기차역에는 cloak room 이라는 것이 있는데.. metro에 가서 cloak room을 찾았었으니.. 번지수 틀려도 한참 틀렸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서더 스트리트에 있는 한 여행사에 들어가게 되었다. 짐 맡길 곳이 근처에 있는지 물어봤는데.. 역시나 호텔을 언급하였다. 그래서 다시 Hotel Hilson 이라는 곳을 가 보니.. 그곳도 짐만 맡기는 것은 안 된다고 했다. 다시 여행사에 가서, 방법이 없겠냐고 물어보려는데.. 등산모자를 쓴 어떤 한국인을 만났다. 양산시에 거주하는 남자 분이었는데.. 태국으로 가는 비행기를 알아보고 계셨다. 그 분이 쓰는 영어를 들으며 혹시 한국인이 아닐까.. 생각하긴 했었는데 한국인이 맞았고, 우리 사정을 들은 그 분은 감사하게도 저녁 때까지 그 분 방에 우리 짐을 맡겨 준신다고 해서.. 그 분이 묵고 있던 Hotel Paragon에 가게 되었다.
그런데 여기서도 문제가 발생했다. 호텔 주인이 그 분 방에 우리 짐만 맡기는 것도 허락을 안 하는 것이었다. 아.. 남자분이 도와주신다고 해서.. 신세 지는 것이 미안하기도 하면서 기뻤었는데.. 또 방법이 없는 것인가... 그 남자분은.. 날도 덥고, 자신의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여러 번 매니저를 설득하셨다. 그래서 마침내 정말 어렵게 방법이 생겼다. Dormitory fee를 내면 짐을 맡길 수 있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몸도 없고 짐만 맡길 뿐인데.. 돈을 내라니.. 솔직히 비용이 비싸다고는 생각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으므로 그리 하려는데.. 이번에도 여권이 우리 발목을 잡았다.
양산시에 산다는 그 분도 당황을 하셨다. 아니, 여행을 하면서 기본인 여권도 안 들고 어떻게 다질링까지 가려 하냐면서 말이다.
여권이 없어 호텔에 짐도 못 맡기는 상황인데, 정작 3박 4일 걸려 도착한 다질링에서 여권이 없어 호텔에 묵을 수 없다면....? 하.. 일이 참 커지는 듯 느껴졌다. 우리는 우리가 인도에 불법 체류 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합법적으로 들어와 있음을 증명하려고, 호텔 매니저에게, 센터에 있는 pastor L과 통화하게 해주겠다, 센터에 있는 우리 여권을 당장 팩스로 요청해서 보여주면 믿겠냐 등등.. 별의별 방법을 다 생각해 봤지만, 호텔에서는 묵묵부답이었다. 다 안 된다는 것이었다. 오로지 'real passport'만 된다는 것이었다.
답답했던 아이들. 결국 S가 센터에 전화해서, 여권 복사본만 들고 가라던 G때문에 이렇게 됐다면서 엄청나게 G 원망을 했다. pastor L은 이 상황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라는 말씀 밖에는... 뭐, 센터 쪽에서도 얼마나 황당했을까 싶다. ㅎㅎ 여행 잘 보내놨더니 여권 때문에 문제 생겼다고 이렇게 징징대고 있으니 말이다.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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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월 15일 인도 땅을 밟기까지 우여곡절도 참 많았고, 뭐 하나 'normal'한 일이 없었는데.. 인도 여행을 함에 있어서도 역시.. 평범하지가 않다... ㅎㅎㅎ 그래서 더더욱 내게 특별한 기억으로 각인되는 인도. 인도가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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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다 보니 여행 기억이 새록새록~ 일기장에 적지 않은 내용들까지 다 선명하게 기억이 난다. 참 신기하기도 하지... 그래서 길이 너무 길어지고 있으므로.. 오늘은 여기까지!! to be continued.....)
28 Apr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