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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Almora(알모라)를 떠나는 날. 어제 Kailas International Hotel의 할아버지로 인해 당황스러운 일을 겪었던터라.. 이 도시를 떠나는 것이 시원하고 홀가분한 느낌마저도 든다. 지금까지 이곳에서 지내는 동안 알모라는 정말 날씨 좋고 아름다운 곳이라고 극찬하며 잘 지내왔건만.. 어제 저녁의 찰나의 사건 때문에 이 도시의 인상은 회색빛으로 변하고 말았다. 얼른 빨리 이곳을 벗어나고 싶다.

 

이곳을 떠나는 나의 최종 목적지는 요가와 명상의 고장이라는 Rishikesh(리시케시). 내일 아침이면 난 리시께시에 도착하게 될 것이다.

 

 

 

알모라에서 리시께시에 가기 위한 여정은 이렇다.

 

Almora(알모라) → (Bowali 보왈리) → Nainital(나이니탈)까지 버스를 타고 이동,

 

나이니탈에서 다시 버스를 갈아타고 → Kathgodam(카트고담).

 

카트고담에서 저녁 기차를 타고 → Haridwar(하리드와르) 도착.

 

하리드와르에서 다시 자정 기차를 갈아타고 → 내일 아침 Rishikesh(리시케시) 도착!

 

헉헉... 밤중에도 기차를 타고 달려가야만 하는.. 꼬박 하루가 걸리는 여정.. 정말 긴 긴 여정이다. 인도 땅 정말 넓다..>_<

 

나는 이렇게 긴 여정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샤워를 하고, 가방을 쌌다. 그리고 호텔 리셉션에서조차 카일라스 할아버지를 마주하기 싫어 할아버지에게 대해 당황과 유감을 담은 편지와 그간의 숙박료를 방에 남겨놓고 호텔을 조용히 떠날 심산이었다. 방 키를 리셉션에 두고 조용히 나오려는데 할아버지를 만났다. 할아버지는 내게 떠나냐면서 숙박료에 대해 물으려는 눈치였지만 난 할아버지가 말하기도 전에, "숙박료는 방에 뒀어요." 라면서 그곳을 급히 빠져나왔다. 아마 할아버지는 조바심이 났을 것이다. 혹여 내가 5일치의 숙박료를 안내고 그냥 나가는걸까봐 말이다.

 

 

 

 

 

아침을 안 먹어서 city heart restaurant에서 그동안 맛있게 먹었던 veg. burger와 black coffee를 마지막으로 먹고 씩씩하게 알모라 버스 정류장으로 가서 버스 근처에 서 있는 아저씨들한테 Nainital(나이니탈)로 가는 버스편을 물었다. 그런데 나이니딸로 가는 버스가 없단다. 헉.. 오늘 카트고담 역에서 기차를 타야 하는데.. 완전 당황스럽기도 했고.. 혹시 내 영어를 사람들이 못 알아들었을까 싶어.. 아무래도 버스에 대해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버스 정류장의 매점 아저씨일 터.. 매점 아저씨께 나이니딸 버스에 대해 물어보니, 여기서 나이니탈까지 direct bus는 없고 Bowali(보왈리)에서 내려 다시 나이니탈 버스로 갈아타야 한단다. (아저씨는 영어를 하셨다.) 그래서 보왈리 버스가 언제 있냐고 물어보니, 한 30분 후에 버스가 올 것이라면서 아저씨는 내게 매점 근처 벤치에 무거운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서 기다리라고 손짓을 했다.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내게 친절을 베풀어주는 아저씨가 참 고마웠다. ^^

 

 

잠시 후 보왈리행 버스가 와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는 온통 남성들 뿐이고 그들의 시선은 낯선 이방인인 내게 향해 있었다. 젊은 청년들은 이따금씩 자기네들끼리 뭐라 소곤거리며 웃곤 하는데.. 난 그저 iPod을 꺼내 음악을 들으며 차창 밖으로 정류장 풍경을 구경하였다.

 

 

 

 

그런데 차창 밖으로 사과 박스가 보였다. 사과 산지로 유명한 Himachal Pradesh(히마찰 프라데쉬 주(州)) 사과이다. 히마찰이 Uttarkhand(우타르칸드) 옆에 있는 州이다 보니 이곳까지 사과가 오나보다. 히마찰 프라데쉬 가면 꼭 사과를 먹어봐야지~ㅎㅎ

 

 

 

 

한편, 버스 정류장에 쇼윈도에 있던 알모라의 특산품 Bal Mithai(볼 미타이 - 슈가볼로 코팅한 초코 퍼지).

 

보왈리로 가는 버스는 사람들을 가득 태워서 11시가 살짝 넘은 시각에 출발했다. 버스 안에서 버스 요금을 받는 차장 아저씨는 정말 친절했다. 내 무거운 가방을 버스 천장 위에 올려주었고, 나와 눈이 마주칠 때마다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주었으며, 내게 이런저런 것들을 물어보며 말도 건네왔다.

 

버스는 Panchachuli weaver's factory(판차출리 직물 공장) 쪽으로 가더니 큰 커브를 틀어 방향을 돌려 언덕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시골 마을 같은 이 언덕 아래에도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양이었다. 버스에 타는 사람들을 보니 참 소박하고 정직한 사람들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그리고 Bowali(보왈리)로 가는 산길은 산그늘 덕분에 시원했고 공기는 상쾌했다. 지나가는 마을 풍경은 마치 스리랑카의 Nuwara Eliya(누와라 엘리야) 가는 길을 연상시켰다. 작고 아기자기한 산길...

 

한편, 버스의 차장 아저씨가 앉는 문 쪽 좌석에 앉은 나는 차장 아저씨의 일하는 모습을 바로 앞에서 볼 수 있었는데 그 모습이 참 인상적이었다. 참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손님들이 버스에서 타고 내릴 때마다 문을 열어주고 요금을 받는 것이 이 아저씨의 임무인데 정말 열심히 일한다. 직업에 사명을 가지고 있는 것도 같고.. 무엇보다 즐기면서 한다는 느낌이 들어 인상적이었다. 외모로 평가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못생긴 외모에 허름한 옷을 입고 너덜너덜한 슬리퍼를 끌고 있는 이 아저씨에게 나는 왠지 모르게 마음이 갔다. 이런 일을 하면서 행복할까..? 싶었는데.. 이 아저씨가 생계를 위해 어쩔 수 없이 일을 하는 것이든.. 이왕 일하는거 즐기면서 하자고 생각했든.. 어쨌든 이 사람은 진정 자신의 일을 감사함으로 받고 행복을 느낄 줄 아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저렇게 무슨 일을 하든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며 감사하게 살 수 있을까... 하는 질문도 스스로에게 던져 보았다.

 

 

내가 보왈리에서 내리리란 것을 알고 있었던 차장 아저씨는 버스가 보왈리에 서자 내게 내리라고 급히 손짓을 했다. 이 버스는 보왈리가 종착지가 아니었기 때문에 갈 길이 바쁜 듯 보였다. 그런데 내 무거운 배낭이 선반 위에 있었고, 내 힘으로는 그것을 도저히 꺼낼 수 없는 것이 문제였다. 내가 선반 위의 가방을 가리키며 도와달라고 구조 요청을 하자 차장 아저씨와 다른 아저씨들은 힘을 합쳐 내 가방을 내려 주었고, 나는 아저씨들에게 감사하다는 인사를 하고 턱 높은 버스에서 풀쩍 뛰어 내렸다.

 

알모라에서 타고 온 버스가 그렇게 떠나고 혼자 남겨진 나. 나이니탈까지 어떤 버스를 타야 할지 여기서 새로 알아봐야 했다. 사람들에게 물어물어 나이니딸 가는 버스를 탔다. 그 버스는 에어컨이 나오는 새로운 신식 버스였다. (정부에서 운영하는 듯한 버스였다.) 버스에는 금방 짖궂은 어린 소녀들과 아줌마, 아저씨.. 남녀노소 다양한 사람들로 가득 찼다.

 

신식 버스를 타고 나이니탈로 가는 길~ 기분 참 상쾌했다. 가는 길에는 여러가지 road sign들이 보였다. 그 사인들이 인상적이어서 기억해 두었다가 메모해 두었다.

 

*If Married - Devorce speed.

*we like you but not your speed.

*If you sleep, your family sweep.

*use dipper at night.

*drive slowly - reach safely.

 

이곳은 산길이고 커브가 급한 위험한 곳이라서 그런지 여러가지 경고 표지판들이 많았는데 그 문구들이 다 하나 같이 재치 있고 재밌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나이니딸에 도착했다. 다시 도착한 나이니탈.. 습했던 숙소에서의 기억은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지만 와봤던 도시라서 그런지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점심이 늦어져서 Sonam Chowmein corner에 가서 veg. chowmein half plate를 먹고 버스 타기까지 빈 시간을 메꾸기 위해 caffe coffee day(카페 커피 데이)에 갔다.

 

 

 

 

 

cold sparkle을 시켜 먹으며 공부하듯 론리 플래닛을 꼼꼼히 봤다. 앞으로 여행할 곳에 대한 정보.. 그리고 인도라는 나라에 대해 읽고 또 읽었다.

 

 

 

 

카페 커피 데이의 모토랄까.. a lot can happen over coffee. 상상력을 불러 일으키는 참 잘 지은 문구 같다.

 

 

Kathgodam(카트고담) 역으로 가기 위해서 이제 버스를 타야 한다. Tallital(딸리딸) 버스 정류장에 가서 사람들에게 까뜨고담 행 버스를 물으려는데 한 버스가 도착하자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가서 버스를 탔다. 그래서 굳이 묻지 않아도 그 버스가 까뜨고담 행 버스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ㅋ 그런데 그 버스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타서 어차피 탈 수 없기도 했고.. 정시에 온 버스가 아니라서 정말 까뜨고담행이 맞는지 의아하기도 했다. 그 순간 또 다른 빈 버스가 정류장으로 들어왔다. 와~ 이번에는 깨끗한 새 버스다!

 

사람들은 이번에도 버스로 우르르 몰려가서 정신 없이 버스에 오르기 시작했다. 나도 그 정신 없는 틈 속에 끼어 이 버스가 까뜨고담 가는 버스가 맞냐고 사람들에게 물으며 가까스로 버스에 올랐다. 버스에 오르니 이미 경험 많은 현지인들은 자리를 다 차지하고 앉았고.. 앉을 자리가 없었다.나는 의자는 없었지만 버스 기사 아저씨 옆의 틈을 빌어 그 자리에 앉았다. 덕분에 난 버스의 커다란 창으로 누구의 방해도 없이 나이니딸의 아름다운 산 경관을 정면으로 감상하며 내려갈 수 있었다. ㅎㅎ

 

급한 커브를 여러 번 틀어서 돌아 내려가야 하는.. 거의 1차선 도로인 까뜨고담으로 내려가는 산길의 풍경은 정말 바다와도 같은 진풍경을 이루어냈다. 어쩜 그렇게 산들이 푸르고 깊은지... 정말 이 산의 바다에 풍덩 빠져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아름다운 장관이었고.. 때마침 해가 서서히 서산 너머로 질 무렵이여서 산을 비추는 아름다운 태양 빛도 감상할 수 있었다. ^^ 정말 황홀하고 행복했던 순간... 세상이 온통 다 내 것 같았던 잊을 수 없는 정말정말 행복했던 순간. ^^ 인도가 더더욱 좋아졌던 순간. ^^

 

나이니탈에서 카트고담까지는 택시로 1시간이면 충분히 갈 수 있는 거리인데, 돈을 아끼고자 버스를 탔기에 가는 시간이 좀 더 걸리긴 했다. 버스가 몸체가 크다보니 산의 급한 커브길을 안전 운전 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버스는 중간에 한 Dhaba(다바 - 인도의 길거리 식당(cheap restaurant))에서 잠시 쉬어갔다. 남자들은 대부분 다바에서 Chai(짜이)를 한 잔씩 하거나, 근처 자연(!)에서 볼 일을 봤고 몇몇 사람들은 Puri(뿌리) 등 간단한 스낵을 먹기도 했다. 이 풍경이 정말 보기 좋았다. 눈 앞에는 내 눈을 맑게 씻어줄만한 초록의 자연이 있고.. 나의 마음을 사로잡는 인도인들이 눈 앞에서 움직이고 있다니... 버스에 탄 사람들은 어쩜 그리 이 하나밖에 없는 외국인에게 친절한 것인지.. 버스를 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버스 요금을 치뤄야 할지 몰라 살짝 곤란해 할 때 한 아저씨는 내가 버스 값을 잘 지불할 수 있도록 차장과 의사소통을 해주었고 (물론 그 분도 영어를 잘 못하긴 했지만 내가 카트고담 역으로 간다니까 차장한테 정확히 까뜨고담 역이라고 말하면서 내가 괜히 현지인들에게 외국인이라고 돈이 떼이지 않게 도와주었다. 대부분의 차장들은 다 정직할테지만 가끔씩 외국인이라고 표값을 더 받는 사람들이 있다고 들어서 난 버스를 탈 때마다 미리 론리 플래닛을 통해 대략의 버스 요금을 알아보고 타긴 했지만, 그래도 혹시 더 떼이지 않을까 은근히 긴장되긴 했었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거의 없는 이 곳에서 내가 워낙 눈에 띄어서 그런지 사람들은 내가 모르는 것에 대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잘 도와주곤 했다. 이것이 정말 고맙고 감사했다. ^^ 그런데 이곳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지역에서도 이렇게 도와주는 인도인들이 많았다. 장사하는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비싼 요금을 문다는 것을 현지인들도 잘 아는 모양이었는데, 내가 대체 뭐라고.. 남의 나라에서 온 사람이 자기네 나라 사람들한테 사기를 당하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인지.. 정말 이런 친절은 눈물나게 고마운 것이다.) 내가 불편하게 앉아가지 않도록 주위 분들이 배려를 잘 해주셔서 그게 너무 고마웠다.

 

그래.. 어제 저녁에 있었던 알모라에서의 좋지 못한 기억.. 나이니딸의 그 습한 숙소는 잊고.. 좋은 것, 고마운 것만 기억하자^^ 이렇게 좋은 사람들이 가득한 인도인데..^^

 

 

차창 밖의 풍경을 구경하다 보니 어느새 차는 산길을 다 내려와 평지를 달리고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카트고담 역에 도착했다. 이 버스 역시 카트고담 역이 종착지가 아니었고 이 역에서 내리는 사람이 많지 않아 무거운 배낭을 끙끙대며 메고 버스에서 급하게 풀쩍 뛰어내릴 수밖에 없었다.

 

다시 만난 카트고담 역~ 한번 와본 곳은 익숙해서 그런지 아무래도 반갑고 친숙하다. ^^

 

기차표를 꺼내 기차 시간과 flatform number를 확인하고 가방도 내려놓고 얼굴도 씻을 요량으로 ladies waiting room에 들어갔다. 인도 기차역의 waiting room에는 sleeper class와 first class waiting room이 따로 있는데 난 외국인이므로 그들이 알게 뭐야~ sleeper class 기차표를 끊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냥 first class waiting room으로 들어갔다. (솔직히 현지인들이라면 옷차림과 생김새에서 벌써 신분 차이가 나기 때문에 아무나 이곳에 들어오지 않는다. 들어갈 수 없다고 법으로 금지된 것은 아니지만.. 그냥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sleeper class waiting room으로 간다. 인도인들은 자신의 신분과 그 현실을 철저히 잘 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first class retire room이 훨씬 깔끔하고 넓고 깨끗하기 때문이다.

 

난 waiting room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간단한 세면도구를 꺼내 옆에 딸린 화장실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매만졌다. Rishikesh(리시케시)까지 sleeper class 밤기차를 타고 가려면 얼굴이 꼬질꼬질해질 것이기 때문에 인도 기차 여행을 할 때에는 씻을 수 있을 때마다 씻어주는 것이 좋다. ㅎㅎ

 

얼굴을 씻고 상쾌해진 마음으로 잠시 책상에 앉아 그림을 그렸다. 색연필을 꺼내놓고 이것저것 그리는 동양 여자아이가 신기했는지, 처음에는 나를 경계하던.. 손녀를 안고 있던 한 할머니와 며느리인지.. 딸은 경계를 풀고 점차 나의 그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런 그들에게 미소로 화답하고. ㅎㅎ^^

 

 

얼마 지나지 않아 기차가 플랫폼에 도착했다. 출발 시각보다 훨씬 이른 시각에 미리 온 기차에 타려고 내가 탈 칸을 확인하고.. 기차 안에서 먹을 저녁을 사기 위해 이곳저곳 매점을 둘러보는데.. 참 부실한 까뜨고담 매점들..ㅠ.ㅠ 매점도 별로 없고 음식들도 부실했다. 입맛도 없고...

 

한 매점에 들러서 칠리 소스를 뿌려주는 pastry를 살까 말까.. 고민을 하다가 결국 Rs.3짜리 parle-G biscuit과 coca cola를 샀다.

 

그렇게 기차에 올랐고.. 내 자리는 내가 선호하는 SL(side lower)였다. 난 평소 습관대로 기차 의자 아래에 배낭을 집어넣고 쇠줄과 가방을 엮어 자물쇠로 단단히 맸다. 

 

기차는 선선한 저녁 길을 달리기 시작했고.. 차창 밖으로는 노란 불이 몇 개씩 켜져 있는 컴컴한 시골 들판 길.. 창문 밖에서 불어 들어오는 시원한 저녁 바람... 참 행복했다.

 

한편, 사람들이 그리 꽉 차지 않아 한적한 기차 안. 내 대각선으로 연한 풀색이랄까.. 그런 색의 제복을 입은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서투르지만 그래도 영어를 했던 그 사람은 자신이 군인이라고 했는데 업무를 끝나고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던가.. 아무튼 짐을 바리바리 들고 타는 다른 사람들과는 달리 깔고 누울 담요도, 손에는 가방 하나 없는 참 심플한 군인이었다. 침대에 누울 때도(이 사람은 middle berth였다.) 신발과 양말만 덜렁 벗고 얼마나 편하게 눕던지. ㅎㅎ 무거운 배낭을 메고 여행을 하는 나와는 달리 참 free해 보이는 사람이었다.

 

기차는 선선한 저녁 길을 달려 다음 역에 섰다. 사람들이 꽤 많이 서 있는 역이었는데 역이 정전이 되서 주위가 깜깜했다. 이곳에서 기차는 꽤 오랫동안 멈춰 서 있었다. 정전이 되니 주위가 참 고요했다. 주위가 고요하고 주위가 잘 보이지 않으니 자연히 멍..해지기도 하고 공기와 바람을 느끼기가 참 좋았다.

 

아.. 인도의 밤길... 인도의 이 고요하고 적막한 밤의 분위기.. 기차 역에 서 있는 사리 입은 여인들.. 기차의 침대가 마치 제 집인양 엄마, 아빠 품에서 재롱을 부리는 어린 아이.. 이 밤의 적막 속에서 내 마음도, 머리도 잠시 쉼을 얻었다. 기차 역에 다시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영원히 지속될 것만 같았던 고요했던 순간.. 왠지 모르겠지만 잊혀지지 않는 순간이다. 그냥... 기억해 두고 싶은 순간이다.

 

3 Aug 2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