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인도 델리의 레드 포트(Red Fort) = 랄 킬라(Lal Qila) 관람

 

Jama masjid(자마 마스지드) 근처에서 일하던 아저씨들에게서 자마 마스지드 2번 게이트 쪽에 Meena bazar(미나 바자르)가 있고.. 그곳에서 쭉 가면 Red Fort(레드 포트)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얼마 안 걸어가니 정말로 붉은 성이 보였다. Lonely planet에서 이 붉은 성의 성벽이 2km 길이라는 글을 봤는데.. 정말 길긴 길었다. 높이는 강변 18m부터 도시 방향 33m까지 다양하다고 했다.

 

 

 

 

델리에서 한때 영화를 누렸던 무갈 제국의 모습을 떠올리게 하는 최고의 장소라는 RED FORT 표지판 드디어 발견! 이곳은 명소인 만큼 붉은 성 앞은 사람도 많고, 이곳을 지나다니는 버스 종류도 참 많았다.

 

 

 

 

 

두근두근...! 드디어 성으로 다가간다.

 

무갈 제국의 제5대 황제 Shah Jahan(샤 자한)이 Agra(아그라)에서 Delhi(델리)로 수도를 이전하고, 새로이 자신의 이름을 따서 델리의 7번째 신도시인 '샤 자하나바드(Shah Jahanabad)'를 건설, (Shah Jahan 자신의 이름 + '도시'라는 뜻의 bad 합성어 : 샤 자한의 도시) 이것이 현재의 올드 델리이고 그 중심인 Lal Qila(랄 킬라, '붉은 성(Red Fort)'라는 뜻)는 1639~1948년에 건설했다고 한다. 건축광이라고 불렸던 샤 자한은 Taj Mahal(타지마할)의 공사 시작 이후 Lal Qila를 짓기 시작했지만 Lal Qila를 5년 앞서 완공했다고 한다. 

 

 

 

델리의 8번째 신도시는 현재 인도의 수도인 'New Delhi(뉴 델리)'

 

델리에 들어선 8번째 신도시는 영국 식민지 시절인 영국인 건축가 Edwin Lutyens(에드윈 루텐스)에 의해 완성된 작품인 New Delhi(뉴 델리)이다.

 

Yamuna(야무나) 강을 동쪽에 끼고 위치한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Old Delhi와 New Delhi 크게 두 지역으로 나뉜다. 

올드 델리는 이미 1세기 때부터 발달했던 지역으로 좁은 골목길들과 대형 시장(Bazaar), 그리고 수많은 인파가 뒤섞여 인도의 진풍경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뉴델리는 1931년 수도를 Calcutta(캘커타)에서 델리로 정한 영국에 의해 계획적으로 만들어진 곳으로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이다. Connaught place(꼰노뜨 플레이스)를 중심으로 넓게 뻗은 도로와 커다란 건물들이 들어서 있는 현대화된 지역으로 대부분의 행정 관청들은 영국에서 사용하려고 지었던 당시의 관공서 건물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 뉴델리의 건물 대부분은 Edwin Lutyens(에드윈 루텐스)와 Herbert Baker(허버트 베이커) 두 영국인 건축가에 의해 지어졌다.

 

그동안은 인도 자체적으로도 델리의 표기를 뉴델리라고 했었지만 90년 '인도 방문의 해' 이후에는 델리라는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와.. 정말 붉은 사암으로 지어진 붉은 성벽.. Shah Jahan(샤 자한)은 왜 ‘붉은’ 성벽을 만들었을까.. 왜 하필이면 붉은.. 갑자기 일명 blue city(블루 시티)라고 불리는 Jodhpur(조드푸르).. pink city(핑크 시티)라고 불리는 Jaipur(자이푸르)도 가보고 싶어졌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제국의 위엄이 느껴지는 듯... 와.. 거대 규모에 정말 놀랐다! 유적지 관광보다는 사람 만나는 여행을 더 선호하는 나지만, 이걸 보는 순간 인도의 역사에 대해서 좀 더 알고 싶고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위에 사진 보고 있자니 갑자기 생각나는 이것.

 

 

지난 8월 15일 인도 독립 기념일 날 Google에 떴던 로고. ㅎㅎ 당연한 말이지만 똑같다, 똑같아! 

 


 

 

랄 킬라의 문양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다. 근데 여긴 올라갈 수도 있는 건가..?

 

 

 

 

레드 포트의 오른쪽 측면. 정면에 보이는 곳이 입장하는 곳인 Lahore gate(라호르 문)이다. 내가 서 있는 쪽 오른쪽 지하에 매표소가 있다.

 

 

 

 

 

표를 끊었다.

 

레드 포트.. 인도 자국민은 only Rs.10.. 외국인은 Rs.250에다가.. 카메라 소지료 Rs.25.. 박물관 Rs.5를 내야 했는데.. 250루피짜리 표를 끊으면서 카메라와 박물관을 물어보니 250루피 표에 모든 것이 다 포함되어 있다고 했다. 인도 정부가 외국인에게 너무 과하게 돈을 받는 걸 스스로 인식하고 있긴 한 건가..? 그 죄책감에 제도를 바꿨나 싶기도 했다. Taj Mahal(타지마할)도 자국민은 10루피, 외국인은 750루피라던데.. 2배도 아니고 5배도 아니고 몇십 배나 되는 입장료.. 정말로 인도 정부는 외국인을 통해서 이 유적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도 보인다. 비싸도 너무 비싸고, 차이가 나도 너무 차이가 난다.

 

 

 

 

붉은 사암의 성벽이 초록 풀과 조화를 이루어 참 아름다웠다.

 

 

 

 

저 다리 같은 곳을 통해서 랄 낄라에 들어간다. 저 입구의 이름은...

 

 

 

 

 

 

Lahore Gate(라호르 게이트).

 

요새의 서쪽 벽에 위치하고 있는 이 문은 현재 파키스탄 지역인 라호르로 향하고 있어 이런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이 문은 인도 독립전쟁 기간에 인도 국기가 문 너머로 휘날리는 모습을 보려 했던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이 담긴 곳이라 현대 인도의 중요한 상징이 되고 있다고 한다.

 

 

 

 

민족주의자들의 열망은 1947년 비로소 현실이 되었다. 인도가 독립하였을 때 1947년 8월 14일 밤, 초대 인도 총리인 Jawaharlal Nehru(자와할랄 네루)가 독립 선언을 하고 인도의 삼색 국기를 처음으로 게양한 곳이 바로 아까 레드 포트로 처음 들어올 때 봤던 이곳이라고 한다. 그 해는, 1857년 델리의 마지막 인도 지배자였던 무갈의 황제가 소위 '세포이 난'으로 레드 포트를 내어준 지 90년 되는 시기였다고. 그만큼 이 붉은 성은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장소라 독립 이후 기념비적인 정치 연설이 이곳에서 여러 차례 행해졌고, 해마다 독립 기념일(8월 15일로 한국과 같다.)에는 총리의 대국민 연설이 있다고 한다.

 

아무튼.. 지금 위의 사진.. 초록 잔디 저 너머에 있는 문이 원래 Shah Jahan(샤 자한)이 만든 정문인데...

 

 

 

 

Shah Jahan(샤 자한)의 셋째 아들 Aurangzeb(아우랑제브)는 나중에 정면의 정문을 감싸고 이렇게 측면에 라호르 문을 축성했다고 한다.

 

 

 

(사진 출처 : http://sa8104.wordpress.com)

 

 

 

아우랑제브는 성곽의 앞쪽에 출입구를 두지 않고, 코끼리의 정면 공격을 저지하기 위해서 출입구를 이렇게 옆에다 만들었다고 하는데.. 아우랑제브는 이렇게 외부에 보호 성채를 추가함으로써 갇혀 있는 아버지 샤 자한을 화나게 했다고 한다.

 

어쨌든.. security guard의 왠지 모를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죄도 안 지었는데 괜히;;) 보안 검색대 통과하여 아우랑제브가 축성했다는 이 라호르 문을 통과하면...

 

 

 

 

왼편에 샤 자한이 만든 원래의 정문이 이렇게 보인다.

 

 

 

 

 

 

그리고 크나큰 레드 포트 전체 안내가 이렇게 간략하게 되어 있다.

 

 

 

 

라호르 문 앞엔 왠지 사람들의 기를 죽게 만드는 군인들도 서 있었다.

 

랄 낄라는 영국 식민지 시절 때에는 군 병영지로 쓰였고, 독립 후에는 2003년까지 인도 군대가 성채 안에 주둔해 있었다고 한다.

 


 

성채 안에 인도군이 주둔해 있었던 사연

 

성채 안에 주둔해 있었던 인도군 이야기를 하자면... 델리에서 무굴제국의 생명은 짧았고, Aurangzeb(아우랑제브)가 델리에서 나라를 통치한 처음이자 마지막 황제였다. 내란으로 권력이 약해진 이후 통치자들은 요새를 유지할 능력이 없었고. 성 안 빈민가는 피폐한 제국의 후예들로 넘쳐났다. 19세기에 이르러 도시는 많이 황폐해졌다. 

 

북부 인도인들은 1857년 영국의 동인도 회사의 지배에 맞서 봉기했는데, 영국의 압도적인 화력에 의해 결국 그해 9월 14일 델리를 빼앗기면서 독립투쟁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승자인 영국은 이를 '세포이의 난'이라고 부르고, 인도는 '제1차 독립 전쟁'이라고 한다. (세포이(sepoy)는 병사를 뜻하는 페르시아어. 영국 동인도 회사는 이슬람교도와 힌두교도 중에서 인도인 용병을 뽑아 배치했는데 이들을 세포이라고 한다. 세포이 용병은 세포이 항쟁 전까지 인도에 주둔하고 있던 영국군의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국은 당시 인도 세포이들이 농성하던 이 Lal Qila를 공격해 빼앗았고, Lal Qila는 곧 영국군의 본부가 되었다. 그리고 영국 식민지 군이 주둔하던 곳에 독립 인도 군도 그대로 주저앉아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Lal Qila 안에 2003년까지 인도군이 주둔해 있었던 것은 식민 시대의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군은 1857년 제1차 독립전쟁 당시 도시를 쓸어버렸지만, 중요한 건물들은 흉물스러운 막사와 군 사무실로 사용했다고 한다. Lal Qila 안의 건물들 역시 이 당시에 일대 변화가 일어났었고, 독립 이후에는 구조 변형과 보수에 따라 상당 부분이 교체되었다고.

 

 

 

 

자, 이제 샤 자한이 만들었다는 랄 낄라 원래의 정문을 통과해 볼까!

 

 

 

 

문을 통해 요새로 들어가면 곧바로 이런 아치형 아케이드, Chatta Chowk(차타 초크 : 지붕이 있는 시장)가 펼쳐진다. 꼭 생긴 것이 이탈리아 Milano(밀라노)에서 봤던 'Galleria Vittorio Emanuele ll(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 갈레리아)'와 닮았다고 생각했다.

 

차타 촉은 현재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하는 기념품샵이 늘어서 있는데, 예전에는 궁정 여성들을 위한 쇼핑가였으며 한때 실크, 보석, 금 등 왕실 물품을 독점했다고 한다.

 

 

(글 쓰며 참고한 곳들 : Wikipedia, Lonely planet INDIA 2010, 인도 100배 즐기기 2010, chosun.com 블로그)

 

(to be continued...)

 

7 Dec 2010

 


(여행 다녀온 지 1년이 넘은 지금 글을 쓰자니 좀 막막한 감도 있고, 시간이 많이 걸리고 지치고 힘들기도 하지만, 여행 당시 몰랐던 정보들을 공부해가며 글을 쓰는 재미가 쏠쏠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