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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rjeeling(다르질링)에 온 지 벌써 여섯째 날

 

처음엔 Telugu(텔루구어)가 막 튀어나오더니.. (텔루구어 지역도 아닌데 물건 살 때 '옌따?(how much?)' 라던가, Taxi 아저씨한테는 '이끄라(here).' ㅋ) 이젠 너무 자연스럽게 입에서 영어가 나오고 있다.

 

오늘은 몸 상태가 안 좋아 그림 좀 그리고, 편지 쓰면서 쉴 예정이다.

 

 

 

 

오늘은 Kalden cafe & restaurant 가서 cheese ve. burger로 늦은 아침을 먹었다. 안에 potato croquette도 들었고 치즈가 특히 맛있다. bun도 꽤 맛있었다.

 

아이들이 시킨 butter & jam toast는 가격은 저렴했지만 상태가 바갈래두(bad).. 아이들은 토스트를 뚝딱 금방 다 먹더니 뭔가 허전한 눈치다.

 

 

 

 

한편, 식당 곳곳에 이렇게 물 넣은 비닐이 걸려 있는 것을 보았다. 이게 대체 뭘까.. 이리저리 추측해 보다가 주인 아주머니께 여쭤 봤더니, 파리를 쫓기 위해 달아놓은 거란다. 와.. 이걸로 파리가 쫓아진다니! 아주머니의 번득이는 지혜에 감탄~

 

그런데 생각해보니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하다.. 한국이었던가..? 같은 이유로 위생비닐 장갑 안에 이렇게 물을 넣어 식당에 걸어둔 것을 어디선가 본 것도 같다.

 

 

식후엔 숙소 근처의 영화관도 딸린 큰 쇼핑몰인 Big Bazaar에 갔다. 아이들이 방학 중이라 일탈을 꿈 꾸는지 이곳에서 염색을 하고 싶다고 했다. 빨간색으로 염색을 해보고 싶다며 두 아이는 붉은색 계통의 염색약을 샀는데, 나중에 어른들한테 혼나면 어쩌냐고 그래도 막무가내였던 두 아이. 그래, 여행 때 이런걸 해보지.. 그 시골에서 아이들이 얼마나 이 청소년 시기에 답답함을 느낄까.. 그게 이해가 안 되는 바도 아니어서 강하게 말릴 수는 없었다. 

 

난 여유롭게 stationery와 food 코너를 둘러보고 싶었는데, S가 처음 염색해 본다며 내 도움을 요청해서 그냥 숙소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있던 한 패션 가게. 이곳에서는 한국 이대 뒷골목 스타일의 옷과 가방, 구두, 파티 드레스, 각종 헤어 악세사리, 귀걸이 등등을 팔고 있었다.

 

 

 

 

이렇게 한국 글자가 들어간 소품도 발견했다. '쉬어' 라는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안 그래도 오늘 피곤해서 쉬려고 했는데.. 이런 글자를 다 만나다니~ ㅎㅎ 재밌다.

 

 

 

이건 아이들이 가게에서 찍은 사진 같은데.. 우리나라 아이돌인가..? 싶기도 하고.. 동방신기인가..? 어쨌든 우리 숙소에 있던 어떤 잡지 책에도 슈퍼주니어인가, 동방신기가 잡지 모델로 있어서 완전 깜짝 놀랐다. 이제 인도에서도 한류인 것인가...ㅋㅋ;;

 

 

염색약은 한국 염색약과 완전 비슷했다. 인도 여성들로 이런걸로 염색을 하는구나..

 

염색약을 미리 섞어놓는데 냄새가 나서 창문을 잠시 열었다. 약간 쌀쌀한 봄날씨 같은 기운이 느껴졌다.

 

S가 J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준다.

 

S는 오늘 아침에도 계속 앞장서려 하고.. 처음 이곳에 왔을 때보다 순한 표정과 말투도 줄고.. 계속 뭔가를 아는 체 하려 들어 정말 걱정이다. 센터에서 H 언니가 T 머리 염색해 주면서 자칭, 'H 살롱' 이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 생각나 우스갯소리로, "H 살롱 알아?" 했더니, 이대 뒷쪽에 있는 살롱 아니냐며 또.. 아는 척을 했다. 휴.. S...ㅠ.ㅠ

 

 

G가 아침에 이어 2번째로 전화하여 무슨 일 있냐고 물으셔서.. 계속 고민 중이던 S 문제를 아이들을 피해 바깥에서 통화하며 이야기 했다.

 

S가 먹을 데에 돈 쓰는 것을 제어하지 못하는 것.. 앞장 서서 주도적으로 가는 것은 좋은데 너무 독단적인 것.. 앞서려 하는 것.. 생각하는 것들이 사실이 아닐수도 있는데 본인 생각으로 사실로 믿는 것.. 여기 올 때보다 표정, 말투가 순함에서 좀 터프하게 변한 것.. 등을 이야기 하니 G도 이미 알고 있는 부분이라며, "미리 말했어야 했는데... " 하며 기도하겠다고 하셨다. 그리고 이런 이야기들을 S와 이야기를 해야 할지.. 다른 방법으로 풀어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더니.. G가 S에게 직접 말해 보겠다고 하셨다.

 

 

S가 걱정이 되기도 하면서.. 가끔은 밉게 굴어도.. 그래도 머리 만져주며 염색약을 발라주다 보니 그냥 내 기분도 어느 정도 정돈이 된다. 그냥 포커스를 나한테 맞추기로 한다. 내가 기대하고 고대했던 이 Darjeeling(다르질링)에 이렇게 와 있는데.. 아이들 문제로 자꾸만 침체될 수는 없지! 그냥 현재의 나를 즐기고 즐거워 하자!

 

J랑은 그래도 많이 관계가 풀어졌지만 아직도 좀 서먹한 기운은 남아 있었다. 그러나 J의 머리 또한 염색을 해주다 보니.. J에게도 정이 느껴지면서 내 마음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 세상에 '잘못' 된 사람은 없지.. 그저 각자의 입장이 다를 뿐이고.. 삶의 환경에 따라 만들어진 생각의 패턴과 사고 방식의 차이에서.. 사람들은 갈등을 느낄 뿐. 행동이 어리고 철이 없어 보이는 것은 어쩌면 무지해서 그럴 뿐... 어쨌든 오늘만큼은 쉬면서 내 시간을 보내고 싶었지만.. 그래도 아이들 염색을 해 주면서 아이들과 조금은 더 친밀해질 수 있었고, 간만에 세 여자가 호텔에서 'Lyla 살롱'으로 즐거운 오후를 보냈다. (아이들의 머리가 완전 새빨갛게 변할까봐 걱정했는데.. 햇빛을 받으면 붉은색이 감돌 정도로만 약하게 염색이 되었다. Lyal 살롱 사진을 못 찍은 것이 아쉽...)

 

 

오늘따라 비바람이 무섭게 분다. 낮엔 해가 쨍쨍하여 빨래 널기에 최고라고 생각했는데, 오후엔 천둥이 치더니, 비가 내리더니.. 그 빗줄기가 굵었다, 가늘었다를 반복한다.

 

커다란 thunder와 함께 비바람이 무섭게 창문과 건물을 치고 있고.. 밖에서는 토이 트레인(Toy train)의 경적이 비바람 속에서 처절하게.. 구슬프게 운다.

 

 

 

 

밖이 추우니 난방 기구가 없는 실내도 당연히 춥다. 한국 가서 쓰려고 산 울목도리를 두르니 그래도 따뜻하다. 목감기인지 목도 아프고 가래도 있다. 추우면서 머리도 띵하고 으슬으슬하다. 그래도 울목도리 덕분에 기분이 좋다. 한국에 가서 겨울에 쓰려고 산 목도리인데.. 그냥 여기서 써도 될 정도로 이곳 날씨는 춥다. 남인도는 지금이 가장 더울 날씨인데.. 난 북인도에서 감기에 걸려 있다니..! 역시 나라가 이렇게 크고도 넓은 인도다.

 

오늘 차밭 갔으면 큰일 났을 뻔! 날씨와 관광은 역시 타이밍이다.

 

 

배는 점점 고파왔짐나 너무 추워서 이불 속에서 Mensa test book을 풀었다. 그런데 바깥에서 <세계테마기행> 다르질링 편에서 나왔던 노래가 들린다!! 와... 다큐멘터리 속에서 토이 토레인을 타고, 그 안에서 현지인들과 어떤 인도 노래를 부르던 유성용이 그렇게 멋지고 부러워서.. 나도 저 장소에서 저 음악을 꼭 들으리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현실이 되는 순간이 이렇게 오다니... 정말 놀랍고, 놀랍고, 또 놀라웠다. (그 노래는 나중에 알고보니 인도영화 <Kal ho naa ho>의 'Kal ho naa ho' 라는 노래였다.) 어디서 들려오는 노래인지는 모르겠지만.. 나중에 이 호텔 주인 아저씨나, '가람 파니' 할아버지한테 이 노래 제목과 가사를 물어봐야지!

 

 

밖엔 비가 무섭게 오고.. Kalden 식당 간다던 S가 chicken burger 2개와 cheese veg. burger 1개를 사가지고 왔다. S가 호텔로 돌아오면 안 그래도 Kalden 가려고 했는데, 이런 surprise에 완전 고마움! 그래서 버거랑 함께 Lay's 과자 처음으로 조금 먹어봤는데.. 이 감자칩 과자는 맛있긴 한데 짰다. 아이들은 Lay's 감자칩 과자를 엄청나게 먹었다. 이 날만 Rs.20짜리 큰 봉지로 7개...

 

내가 S에게 뮤지컬 Notredame de Paris 음악이 너무 좋다고 하니, S는 그 뮤지컬을 지쌤 댁에 있을 때 할 일이 없어 비디오로 50번도 넘게 봤다면서, 주인공들 춤까지 기억하고 있었다. 질릴 법도 한데, 내가 그 음악이 좋다고 하니 자신도 들어보고 싶다며 내 iPod을 귀에 꽂고 팬픽을 읽었다. 난 shading 노트에 colouring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피곤하여 저녁 무렵, iPod을 들으면서 자고 있었다. 아이들이 빗속에서 Lay's와 사모사 처트니를 고맙게도 사다주어서 먹는데, 열이 나고 춥고 아팠다. 그래도 사모사를 먹으니 기운이 좀 나서 아이들이랑 이야기.

 

S가 자꾸 자신을 드러내려 해서.. J가 어젠가, 그제 이야기 했던.. 약한 사람이 자신을 많이 드러낸다는 이야기를 한다. 자존감과 자존심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데 S가 움찔, 찔려하며 무어라 항변하지만.. S야, 넌 자신을 너무 많이 드러내려고 노력한단다.

 

S는 자신의 출생에 대한 이야기, 산 이야기.. 등등 많은 이야기들을 했는데, 이야기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자기 중심적이었다. S는 타로점 보러 갔을 때, 자신이 고집 센 사람이라는게 얼굴에 씌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단다. 본인도 자신이 고집 센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센터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봤던 S와.. 여행 와서의 S는 확실히 180도 다른 모습이었다. 게스트 하우스에서는 겸손하고.. 무엇인가 이야기 하면 놀라고.. 여튼 그런 순수함이 보였었는데.. 지금은 뭔가 정서가 불안한 것인지, 자꾸만 자신을 드러내려 하고... 지식으로 아는 체 하려 하고.. 정확하지 않은 지식을 자기 생각대로 해석하고.. 그 생각을 사실이라 믿어 버리고...

 

어쩌다가 Paul 오빠랑 처음 만나 1시간 반 동안 끊임 없이 쉬지 않고 했던 공동체 이야기.. 서로가 지향하는 삶에 대한 이야기 한 것을 이야기 하게 되었다. (Paul 오빠와의 대화 시간은 언제나 never ending story였다. ㅋㅋ) 그런데 그때 Paul 오빠가 부엌에 들어왔네, 말았네 이야기를 하면서.. 마치 그 자리에 계속 있었던 양.. 있지도 않았던 사실을 사실인 양 이야기를 해서.. 정말 오늘은 하는 이야기들마다 너무.. 뭔가 몽상에 빠져 있달까.. 그런 느낌이 들고 이젠 정말 한계에 다다른 듯 하여, S에게 한소리 했다.

 

내가 널 정말 생각해서 이야기 하는데, 넌 사실이 아닐지도 모르는 일에 대해 사실인 양 믿고 말한다고.. '그럴지도 몰라.'와 '그래.'는 다른 거라고 가르쳐주니, S가 명심하겠다고 하고 옆에 있던 J는 고개를 끄덕였다. J도 아마 S의 이런 점을 느꼈었나 보다.

 

어쨌든 드디어 이야기 했다! 아! 속 시원해라! 완전 지금까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였어...ㅠ.ㅠ 계속 이곳에서 걸렸던 일인데 타이밍이 잘 맞았다. 아니, 내가 어쩌면 용기를 내어 기회를 포착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이들이 나쁘게 듣지 않고 수긍하고 잘 받아들여서 얼마나 착한지!! 좋은 대화였다. 그리고 다행이었다.

 

우린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무서운 이야기 등등을 나누다 스르르 잠이 들었다.

 

4 May 2010